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권일영 옮김 / 검은숲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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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얘기를 해달라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이런 얘기는 어떨까요?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당신에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그의 작품은 추리/미스터리소설로 분류가 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해서 그의 작품은 그렇게 규정하긴 어렵다는 것. 이렇게 보자면 호러에 가깝고, 또 저렇게 보자면 심리 스릴러에 가깝고, 한 마디로 이상하기 그지없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에 질려 뭔가 새로운,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바로 그때 제일 먼저 당신의 머릿속에서 고려해야 할 작가의 리스트 가장 상위에 있어야 할 작가가 바로 에도가와 란포라는 말이다.

 

 

<란포지옥>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정말 '지옥 같은' 작품이었다. 4명의 감독이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 중에 4작품을 선정해 각자의 방식으로 각색한 옴니버스 영화였는데, 매우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작품이었다. 란포의 원작만큼이나 말이다. 이 작품을 보며 새삼 에도가와 란포가 얼마나 특별한 작가인지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의 독특한 그 상상력이 영상화되어 책보다 더 대중적인 매체로 등장하고 보니, 반대로 얼마나 비현실적이고도 음울하고 끔찍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할까.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거장 에도가와 란포의 본명은 히라이 다로, 그의 필명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가 창조한 아케치 고고로는 일본 최초의 사립탐정으로, 그의 작품들은 일본 추리소설의 초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역사상 최초의 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탄생시켰듯, 란포 또한 이 작품들 속에서 아케치 고고로라는 일본 최초의 명탐정을 낳은 것이다. 아케츠 고고로를 비롯해서 소년 탐정단, 괴도 이십면상 시리즈로 캐릭터를 단단하게 구축했지만, 명탐정 코난에서도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탄생된 인물이 등장할 정도이니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추리 만화로 어린이부터 누구나 좋아하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바로 에도가와 코난아닌가.

다가 그는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딴 '에드거 상'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에도가와 란포 상'을 통해 신인작가를 발굴하고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요코미조 세이시, 시마다 소지 등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들이 모두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일단 분위기부터 남다른데, 뭔가 낯설고 기괴하고, 어둡고 음울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또 마냥 그렇기만 하면 책장 넘기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는데 그의 작품은 그런 와중에도 본연의 미스터리에 매우 충실한 플롯으로 움직이고, 무거운데도 발랄함이 어딘가 있고, 심각한데도 위트를 잃지 않고 있어 이야기에 몰입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준다. 그래서 지금 읽기에는 너무도 낯선 화자의 방식에도, 전혀 어색함 없이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그의 작품은 평범한 추리 소설이 아니라 그로테스크한 악마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 인간의 심연에 자리한 어둠까지 맛보게 할 정도의 오싹함을 함께 가지고 있어 공포 소설의 느낌마저 준다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란포가 사인을 할 때 써주곤 했다는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는 유명한 문구는 이러한 몽상가적인 작품 성향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작가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고뇌와 고독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작품들 속에서 변신과 광기, 동성애, 에로티시즘, 거울, 미궁 등 현실에서는 닿을 수 없는 공포와 수치심이 뒤얽힌 아름다움에 집착했는데 이런 성향이 그를 더욱 특별한 작가로 만들었다.

 

국내에도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인 <음울한 짐승> <외딴섬의 악마>는 일본에서 발표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의 최고 걸작 들이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그다지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에 그의 단편집이 3권짜리로 출간되기도 했지만, 보다 화제가 된건 이번에 출간된 <에도가와란포 결정판>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이번에는 단편뿐만 아니라 기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장편도 함께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마존 저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 전집의 수만 해도 무려 30권이나 되니, 앞으로 검은숲에서 소개될 결정판에 어떤 작품이 담길지 벌써부터 설레 인다.

특히나 이번 작품집은 초판 한정판으로 '누드사철'로 불리는 제본방식을 채택해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책에게 '내용과 상관없이' 아름답다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누드사철 제본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정말 아름답다. 고전작품임을 드러내는 옛스러운 느낌이면서도, 어딘지 세련된 느낌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묘한 제본방식이다. 두꺼운 커버 없이 표지와 본문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분량을 나눠 분권해야 했다고 하는데, 사실 책이 분권이 되어 있어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엔 더욱 좋다. 장편인 거미남이 두 권으로, 나머지 단편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애벌레, 천장위의 산책자가 한 권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펼쳐서 볼 때 너무 잘 펴져서 책상 위에 두고 읽기에도 참 좋다. 대부분의 책은 읽다가 페이지를 펼쳐두려면 양쪽에 뭔가 고정하는 것이 필요하니 말이다. 세 권이지만 하드 케이스에 커버와 함께 넣어두면, 전체 한 권처럼 보여 책장에 꽂아 둘 때도 튀지 않아 좋다.

 

초판 한정판 판매가 종료되면 일반판으로 하드커버로 제작된 책이 나온다고 하는데, 내가 당신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초판 한정판으로 책을 살 것이다. 누드사철이 예쁘기도 하고, 분권되어 읽기도 편하고, 케이스가 있어 오래도록 보관하기에도 용이하니 말이다. 놓치지 마시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리고 이 작품집에는 유족과 평론가가 인정한 정본 텍스트에 작가 본인 및 여러 평론가들의 작품 후기, 분석 및 해제가 실려 있으니, 에도가와 란포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그의 작품 세계에 입문할 수 있을 것이다. 무려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오마주해서 쓰는 작가 아닌가. 그 이름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길.

이번 결정판 1권에 실린 작품은 장편 한 편과 단편 세 편인데, 그 중에서도 장편 <거미남>은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라 더욱 중요하다. 여러 차례 영화화, 드라마화 되기도 한 작품이고, 란포를 대중에게 사랑 받는 히트작가로 부상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우 재미있다. 이 시대에 벌써, 이렇게나 현대적인 사이코 패스가 등장할 수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마치 변사가 관객에게 이야기를 하듯 작가가 독자들에게 직접 사건과 인물을 서술하는 것 또한 친근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단편 <애벌레>는 반전소설로 알려져 판매금지되었던 문제작으로 란포 특유의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이 잔뜩 묻어나는 작품이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는 란포가 선택한 최고작 중 하나로 환상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고, <천장 위의 산책자>는 모든 걸작선마다 반드시 소개된 작가의 대표 작품으로 <거미남>보다 더 많이 영화화, 드라마화 된 유명한 작품이다.

추리 소설에서 트릭과 기교만큼 중요한 것이 인물의 심리적 동기와 내면 묘사라고 생각한다면, 공포 소설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유혈이 낭자한 것이 아니라 스물스물 어둠을 잠식하는 분위기라고 생각한다면, 미스터리 소설에서 서사에 방점을 찍는 것이 반전이 아니라 독특한 매력의 캐릭터라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에도가와 란포를 읽어보아야 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 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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