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기다릴게
스와티 아바스티 지음, 신선해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엄마는 오로지 자신의 두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남편의 학대를 참고 견딘다. 아들은 그럴 때마다 나서서 아빠에게 말대꾸를 하고 화를 돋운다. 오로지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빠의 화가 엄마가 아닌 자신에게 향하기를, 그래서 자신이 아빠의 손찌검과 폭력을 대신 견디기 위해서. 왜냐하면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열한 살이었기 때문이다. 철없는 동생은 여섯 살, 자신의 키는 이제 겨우 아빠의 어깨에 닿을 정도였고,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가정폭력에 관한 이 끔찍한 이야기가 정말 무서운 것은, 이것이 비단 허구의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12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40대 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그를 살해하자, 징역 4년이 선고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당시 그녀는 친정 집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주먹과 발로 온몸을 때리던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범행을 저질렀으나, 비록 피고인이 가정폭력에 의한 희생자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이라는 가장 존귀한 가치를 침해하는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 점에서 그 죄질이 무겁다며, 이는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로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잦은 폭행, 폭언 등 가정폭력을 당해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왔고, 범행 또한 우발적으로 벌어졌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장기간 지속된 가정폭력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 무슨 개뼉다귀 뜯어먹는 소리인지. 정말 이 나라의 사법 체계는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님을,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친애하는 아버지.

어차피 당신도 내가 원하던 아버지는 아니에요.

그 집에서 내쫓아줘서 고마워요.

스와티 아바스티의 (무려) 데뷔작인 <엄마를 기다릴게>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얼룩진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열여섯 소년 제이스가 오 년 동안 연락 한번 없었던 형 크리스천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린 자신의 기억 속에서 늘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야 했던 형, 그런데 어느 날 형은 자신과 엄마를 내버려 둔 채 홀로 집을 뛰쳐 나오고 말았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한 엄마, 그리고 그런 폭력의 위험 속에 자신을 버려두고 혼자 달아나 버린 형. 물론 그들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다. 엄마는 자신이 남편을 떠날 경우 그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올 거라는 걸, 그리고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그 해꼬지를 할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고, 형은 아버지가 동생에게만은 손찌검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했었지만 결국 혼자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집을 떠나왔던 그 기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동생은 찢어진 입술에 부어 오른 턱에, 이마를 가로지른 시뻘건 상처자국을 한 채 자신을 찾아온다.

그리고 제이스는 몇 평 남짓한 형의 작은 아파트에서 새로운 학교에 다니고,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시카고의 집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행복할 수 없다. 그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외모도, 성격도 아버지를 꼭 빼 닮은 자신이 바로 그 끔찍한 폭력적인 부분 또한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 여자친구인 로런에게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폭력을 가했던 그것을 지울 수 없었던 그는, 일상에서도 불쑥불쑥 자신 안에서 마구 분출하려고 하는 그 욕망을 내리 눌러야 했다. 사실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이가 자신이 부모가 되어 다시 그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당사자는 그것을 범죄의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끔찍한 것인데, 극중 제이스는 좀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후회하고, 고민하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노려보면서, 도대체 내가 엄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곱씹어본다. 추수감사절에 희망을 거는 내가 잘못된 것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하는 것보다 그렇게 갇혀 사는 게 더 나쁘다는 것은 확실한데.

하늘에서 시커먼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는 달리러 나간다. 지평선에 시선을 두고 나의 맥박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박자에 맞춰 주문을 외워본다.

엄마는 온다. 엄마는 반드시 온다.

형제는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엄마가 과연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집을 탈출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의 이야기는 가정폭력이라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매우 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정폭력이야기에 웬 감성적인 부분이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지만 내내 아버지가 자신을 쫓아올 지도 모른다는 (실제로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공포에 시달려야 했던 크리스천, 형이 집을 떠난 후 엄마에 대한 아빠의 폭력을 내내 견디다 결국 그에게 반항할 수밖에 없었던, 게다가 자신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그것을 자신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로운 제이스, 그리고 이들 주변에서 형제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인 크리스천의 여자 친구 미리엄과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제이스의 전 여자친구 로런과 그의 새 여자친구인 다코타. 이들 형제가 무사히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아빠의 폭력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제이스는 아빠를 닮은 자신의 폭력적인 성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이 작품은 두 형제가 스스로 일어서며 성장하는 스토리와 함께 그들 주변의 여러 인물들이 내뿜는 따뜻함이 함께 어우러져 단단한 서사를 이루고 있다. 마치 청소년 성장 드라마인 것처럼 진행되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묵직해지고, 또 어느 순간 먹먹한 감정을 선사하는 이유 또한 바로 이들 인물들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라도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체 어떤 인간이 자신의 아들을 죽을 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걸까.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르고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던 아이는 아빠가 자신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온 몸으로 느끼고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요즘 한창 화제인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들이 밝혀져 한 동안 떠들썩했었다. 장기결석 초등생이 아버지에게 맞아 숨진 사실이 3년여 만에 드러났고 가출신고 된 여중생이 11개월 만에 백골상태로 발견돼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최근에는 딸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까지 한 어머니가 붙잡혔단다. 대체 이놈의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과연 이들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학대, 폭행 등을 당해도 신고는커녕 파악조차 쉽지 않았던 아동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정폭력은 완전히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이다.

엄마가 왜 아빠 곁을 떠나지 않는지는 틀린 질문이다. 도대체 우리 아빠는 왜 아내를 때리는 걸까? 내 의문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아빠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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