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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레이얼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산다는 건 놀라움의 연속이다. 공인회계사인 로빈은 모로코 여행에서 자신이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겪게 된다. 믿었던 남편의 배신에 당황하고, 그의 숨겨졌던 과거에 경악하고, 낯선 남자에게 강간을 당할 뻔하기도 하고, 경찰에 쫓기다, 사막에서 쓰러져 사경을 헤매기도 한다. 단어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삶이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만 같은 기분, 발 밑이 아득한 낭떠러지 같은 기분이었을 거다. 사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 너무도 평안하고 탄탄대로 삶이 흘러갔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굴곡을 겪으며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가까운 친구의 배신일 수도, 연인과의 이별일 수도, 가족과의 트러블 일수도 있고, 재정적인 타격이나 커리어의 바닥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말처럼 행복한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불행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불행이 닥쳤을 때 대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것처럼 말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 속에서는 언제나 아무 걱정 없이 잘나가던 우리의 주인공이 삶의 바닥 끝까지 추락하고는 한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의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와는 달리 북아프리카의 모로코가 주 배경이라 그런지 더욱 주인공의 모험과 변화의 기폭이 커서 마치 거대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폴이 책임감이 크게 결여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껏 저는 한 가지 믿음으로 살아왔어요. 폴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죠. 저의 미래에 대한 계획 속에는 언제나 폴이 포함돼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폴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게 큰 실수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이 세상에서 더없이 끔찍한 남자와 결혼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우리가 연애를 할 때 가장 많이들 갖게 되는 착각이 바로 이것 아닐까. 바로 내가 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 사람은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도 수십 년 넘게 구축된 성격이나 취향, 사고방식, 자아 등은 절대로 바뀔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착각을 하곤 한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나로 인해 이 사람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질 거야. 라고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믿음이 결국에는 관계가 파탄이 되는 시발점이 되고는 한다. 우리의 주인공 로빈도 그렇다.
결혼 4년차에 접어든 로빈과 폴은 현재 카사블랑카로 향하는 중이다. 회계사인 로빈은 자신의 엉망인 재정 상태를 수습하기 위해 회계사무실에 찾아온 화가 폴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천편일률적인 일상에서 탈피해 다른 인생을 모색해보고 싶었기에, 자신과는 다른 예술가의 삶을 동경했고 매력적이지만 재정적으로는 한없이 무능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 그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이루어줄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결혼 후 폴은 자신의 소비습관을 고치겠다고 약속했지만 빚은 오히려 더 늘어나기만 했고, 결국 채무 징수 대행회사에서 사람이 찾아오기에 이른다. 아무리 예술적인 감성이 뛰어나고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낭비벽이 심각하다면 그건 배우자로서는 정말 최악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부채가 결국 그들의 결혼생활 자체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미 한 번 실패한 결혼의 경험을 갖고 있는 로빈은 자신과 폴의 아이를 갖고 싶었다. 게다가 전 남편과의 원활하지 못했던 섹스에 비해 폴과의 섹스는 항상 원활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 올해 마흔인데, 아직도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재정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겼고, 잠시 일상을 벗어나보기로 결정해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가 말하길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별들이 내 귀에 대고 다른 의미의 말을 속삭였다.
거대한 우주에 빗대어 인간이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사실 억지에 불과해요.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모두 모여 거대한 우주를 형성하니까 각각의 존재들은 다 나름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죠.
각각의 존재, 각각의 삶, 각각의 이야기를 빼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
굉장히 이국적인 풍경만큼이나 카사블랑카에서의 생활은 멋들어진 나날로 시작된다. 폴은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하고, 로빈은 호텔에 머무는 동안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낯설지만 규칙적인 여행의 여유를 즐기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로빈은 남편의 충격적인 배신을 마주하게 된다. 함께 아이를 갖도록 노력하자고 얼마 전까지 약속했건만, 그가 몇 달 전에 자신 모르게 정관수술을 했다는 증거를 찾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던 삶이 온갖 거짓이었다니?
그녀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기분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만다. 처음부터 폴이 책임감이 없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보헤미안 같은 매력과 로맨틱함, 환상적인 섹스를 놓치기 싫어 그에 대한 모든 의심을 모른 척 해왔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을 만나 바뀔 수도 있을 거라는 제멋대로의 환상은 그렇게 무참하게 깨어지고, 이제는 자신이 그에 대해 뭘 안다고 자신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그녀가 그곳에서 겪게 되는 정말 파란만장한 그 모든 일들에 비하면 말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고 (무려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게 되기까지 하며) 그 모든 고통을 견디고 살아남을까. 배신한 뒤로 갑자기 행방을 감춘 그녀의 남편 폴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이며 그들은 결국 만나게 될까.
인생이 바뀌는 것은 사실 한 순간이다. 굉장히 사소한 일로도 달라질 수 있고, 극한의 상황에 처해서 죽도록 고생하면서 변하게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도 못할 만큼 엄청난 어드벤처를 느끼게 만들어준 화려한 스토리만큼이나, 매혹적이고 이국적인 풍경 묘사가 기억에 남지만,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장에 이르면 내 삶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내가 과거에 했던 선택들은 옳았던 건지,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내 삶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건지 말이다.
꿈은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행복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