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6개월이 된 아이에게 매일같이 책을 읽어 주느라 본의 아니게 요즘 유아용 그림책과 동화책들을 즐겨 읽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새삼 느끼게 된 건데, 아이들을 위한 대부분의 책은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나, 가끔은 사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뽀로로도 그렇고, 폴리도 그렇고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에서도 언제나 사람은 그들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친다. 그러니 어릴 때는 자연스레 동물도 말을 하고 생각을 하며, 사물에게도 의지와 감성이 있다고, 믿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분명 그랬던 시기가 있을 테고 말이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각박하게 살아내다 보니, 마음의 문을 닫고, 동심의 세계와는 멀어지게 되었지만. 아이덕분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네코마키의 <콩고양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동안에도 고양이나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이나 만화가 있었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의 행동과 생각이 스토리의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동물을 키우는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곤 하니 말이다. 하지만 <콩고양이> 시리즈에서는 전적으로 콩알이와 팥알이의 행동과 생각으로 모든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그들과 함께 사는 주인의 식구들은 그저 조연일 뿐, 진짜 주인공은 고양이라는 점이 마치 유아용 그림책을 읽을 때처럼 우리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나 이번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등장 인물(?) 덕분에 더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전개되는데,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마담 북슬씨와의 바로 이 장면이었다. 평소에 고양이를 너무 싫어해 틈만 나면 팥알이와 콩알이를 내보내려고 하거나, 아예 무시하거나 호통만 치던 그녀였는데, 어느날 개인기가 가능한 고양이를 티비에서 보고는 샘이나서 팥알이와 콩알이에게도 개인기를 마스터해보겠다고 도전하게 된 것이다. 티비에 나온 고양이가 할 줄 아는 것은 손! 반대쪽! 했을 때 자신의 손을 내밀고, 음식 앞에서 애교~ 그리고 빵~ 하면 꽈당 넘어지는 시늉을 하는 것인데, 과연 우리 팥알이와 콩알이가 그걸 따라할 것인지.. 아 진짜 이들의 반응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볼때마다 너무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사고뭉치 팥알이와 콩알이가 벌집을 건드리는 바람에 벌의 공격을 받게 되었을 때, 내복씨가 마치 자신의 목숨이라도 던질듯이 팥알이와 콩알이를 데리고 도망가는 장면은 웃기지만 뭉클하기도 했다. 뭐 비장했던 내복씨에 비패 결과는 마담 북슬이 신문지로 타악, 쳐서 벌을 간단하게 무찌르는 걸로 끝나 버리지만. 내복씨와의 에피소드는 언제나 이렇게 웃기지만, 감동적이다. 꼭 말썽꾸러기 손자들을 혼내려는 부모를 피해서 몰래 응원하는 진짜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새롭게 등장한 식구인 '아기 참새' 덕분에 색다른 이야기 거리들이 풍부해졌는데, 무려 다음 네 번째 시리즈에서는 강아지가 등장한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고양이인 줄 아는 시바견 '두식'이 새로운 식구인데, 고양이와 개가 만나면 늘 투닥 거린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지,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 덕분에 항상 철부지처럼 보였던 팥알이와 콩알이가 자신들의 엄마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이었다.
있지, 밥 주는 사람이 엄마인 거냐옹?
그건 그렇지 않나?
그럼 우리 엄마는....? 근데 왜 하나도 안 닮았냐옹?
비둘기도 참새도 다 엄마랑 자식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왜 우리는 엄마랑 안 닮았을까. 에서 시작한 그들의 고민은, 그렇다면 우리도 어른이 되면 '사람처럼' 다리가 두개, 털은 머리에만 있는 그런 모습이 되는 걸까. 로 발전해 사실은 살짝 기억하는데 진짜 엄마는 폭신폭신하고 진짜진짜 좋은 냄새가 났다며... 다들 어떻게 지내려나 보고 싶다고 말이다.
강아지를 십여 년 넘게 키우면서 거의 식구가 되어 버렸지만, 가끔은 나도 우리집 강아지가 자신의 진짜 엄마를 그리워하진 않을까. 기억은 하고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기에, 마지막 이 장면은 정말 뭉클했다. 그들이라고 왜 자신의 진짜 엄마를 떠올리지 않겠는가. 다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갈 뿐이지.
꽤 길었던 설 연휴가 끝나고,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 봄이 되려면 한참 멀었고, 날은 아직도 너무 너무 춥다. 연휴가 끝나고 회사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도 무겁다면, 혹은 으슬으슬한 추위에 외출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면, 이렇게 따뜻 발랄한 만화책과 함께 해본다면 어떨까. 이 책은 답답한 지하철 속에서 킥킥 거릴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줄 것이다. 그리고 팥알이와 콩알이 덕분에 남은 겨울은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