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인 파리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임 옮김 / 살림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당신이 내 그림을 그리고, 또 아무도 나를 당신처럼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당신 사람이었어요. 당신은 나의 가장 좋은 면만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 아는 나보다 더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닐까. 당신으로 인해, 내가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는 그 느낌. 나밖에 모르던 내가 당신 덕분에 부모님을 챙기게 되고, 집에서는 설거지 한번 하지 않던 내가 당신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요리를 하게 되고, 맨날 비슷한 옷차림에 유니폼이냐는 우스갯소리를 듣던 내가 난생 처음 하늘하늘한 원피스도 입어보고, 무뚝뚝한 전화 목소리 덕에 화난 거냐는 오해를 받던 내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평소에는 꿈도 꾸지 않던 상냥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고 말이다. 사랑은 이렇게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감정이다. 얼마나 근사한가. 누군가로 인해 내가 미처 몰랐던 나 자신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것이 영원 불멸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그 어떤 단점도 모두 사랑하고 포옹해줄 것만 같은 이 사람이 영원히 내 곁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위대한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결혼'이 사실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결혼 후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실망을 하기도 하고, 사랑은 변하는 거였다며 자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과 결혼은 너무도 다른 세계이다. 물론 나도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조조 모예스 2015년 신작 <허니문 인 파리> 2002년의 파리와 1912년의 파리에서 각각 허니문을 보내고 있는, 이제 갓 결혼한 신혼 부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우 담백하게, 어쩌면 평범하게, 그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를.

"아무 이유 없이 파리의 작은 술집들을 어슬렁거리다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싶었어요. 당신이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했어요. 우리가 만나기 전에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었어요. 내가 세운, 우리가 함께 지내게 될 인생 계획을 당신에게 다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섹스도 많이 하고 싶었어요. 많이요. 혼자서 갤러리를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고, 모르는 남자들과 커피를 마시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말이에요."

2002년의 파리, 신혼여행 둘째 날, 건축가 데이비드는 일 관계로 잠깐 만날 사람이 있다며 한 시간만 혼자 다녀오겠다고 리브에게 양해를 구한다. 중요한 일이라고. 그러나 신혼 부부에게 신혼여행이란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특별한 순간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니, 리브는 남편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혼자 파리를 돌아다니며 리브는 생각한다. 친구들이 그녀에게 서둘러 결혼했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농담 삼아 했던 그 말을. 왜냐하면 리브는 데이비드와 알고 지낸 지 석 달하고 열 하루 만에 결혼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녀는 데이비드가 일주일간의 파리여행을 제안한 순간부터 로맨틱한 신혼여행을 꿈꿨었지만, 그의 업무 미팅 때문에 일주일은 5일이 되고, 5일은 이틀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서운하고, 외로워 마음이 점점 멀어져만 간다.

1912년의 파리, 부부가 된 지 이제 3주가 된 에두아르와 소피는 따끈따끈한 신혼 분위기로 알콩달콩해야 하지만, 당장 돈 걱정 없이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없는 형편이다. 돈보다 우정이 더 중요하다는 에두아르는 자신의 그림들을 쉽게 팔았지만, 소위 친구라는 이들이 그에게 돈을 주겠다고 약속만 하고 주지 않았기에 그들은 늘 경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신혼 기간은 한 달간 계속돼야 한다고, 한 달간 오직 사랑만 해야 한다는 그에게 소피는 자신이 남편의 친구들을 찾아가서 우리에게 빚진 돈을 달라고 잘 말해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녀를 촌뜨기 점원 아가씨 아니냐며 먹고 사는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것을 무시한다. 그것보다 더 문제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 남편 주위에 있는 수많은 여인들이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작품의 모델이 되어 주는 멋진 여인들과 초라한 자신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건 당신과 결혼한 거예요. 당신이 도대체 왜 신경이 쓰였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소피, 어쨌든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2000년대와 1900년대 파리에서 허니문을 보내고 있는 두 부부의 일상을 통해 이제 막 결혼한 여자들의 심리 변화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인 백 년 전이든, 언제든 결혼이라는 것을 통과한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특히나 전작에 비해서 마치 단편처럼 느껴질 정도로 짧은 분량의 이 작품이 국내에서는 한국어판 스페셜 에디션으로 본문에 100컷이 넘는 파리 스냅 사진이 편집되어 있는 것이 멋지다. 실제 파리에서 허니문을 보낸 부부들의 추억들이 담긴 사진들은 데이비드와 리브, 에두아르와 소피의 이야기가 묘하게 잘 어우러져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층 돋궈 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기 전이라면 자신의 '이상'을 확인할 수도, 결혼을 한 후라면 자신의 '현실'을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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