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에 읽었던 제임스 에이지의 <가족의 죽음> 또한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가 죽고 나서 남겨진 가족들이 슬픔을 견디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있는 작품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너무도 다른 색깔로 그린 두 작품을 비슷한 시기에 만나게 되어 비교하면서 읽는 맛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자연을 누비며 매잡이가 되려는 꿈을 키웠던 저자가 아버지가 갑자기 죽고 나서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견뎌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빠는 반은 언짢고 반은 재미있어 하는 심정으로 날 내려다보며인내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뭔가 아주 간절히 보고 싶어서 때로 가만히 있어야 할 때는,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할 때는, 그것이 얼마나 보고 싶은지를 기억하고 참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신문에 실어야 할 사진을 촬영할 때면, 가끔 내가 원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시간씩 차 안에 앉아 있어야 하는 때가 있단다. 차를 마시러 가거나 심지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날 수도 없지. 그냥 인내해야 되는 거야. 매를 보고 싶으면 너도 참아야 해.”

가족이 죽는 경험은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상실의 슬픔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을 견디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말이다. 제임스 에이지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며칠 동안 가족들의 심리 묘사에 치중했다면, 헬렌 맥도널드는 야생 참매를 길들이는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논픽션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새뮤얼존슨상을 수상한 것만 보아도, 이 작품이 진행되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표지 조차 참매가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고, 제목 또한 헬렌이 매에게 붙여준 이름인 '메이블'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허구화된 '픽션'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있는 '논픽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이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고, 감동적이었다. 매를 통해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은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무언가를 남겨 주었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 중에 '사별'과 관련된 단어는 모두 '없다, 빼앗다, 훔치다, 강탈하다'라는 뜻의 고대 영어에서 나온 거라고 한다. 죽음을 통한 이별은 마치 무언가를 강탈당한 것처럼, 혹은 빼앗긴 것 같은 감정이라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러나 남들과 공유하거나 나눌 수는 없는, 오로지 개인적인 감정이고 말이다. 헬렌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세상이 여전히 전과 같이 돌아간다는 것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몇 주간 나는 둔하게 달궈진 쇳덩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꼭 그런 느낌이었다. 달군 쇳덩이 같아서, 오히려 몸은 차디찬데도 침대나 의자에 몸을 눕히면 온몸이 곧바로 활활 타 버릴 것만 같았다.>라는 표현은 그녀의 상태를 마치 눈으로 보는 것만큼 체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 가족을 잃어 버린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이렇게 세상 자체가 슬픔에 젖어 버리고, 나라는 존재가 그 속에 빠져서 정상이 아닌 상태가 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나에게도 언젠가 닥쳐올 그 순간이 두려워지기 까지 했다.

나는 엄마가 아기에게 밥을 먹이듯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매와 함께 꿩의 털을 뽑기 시작한다. 매를 위해서. 메이블이 먹기 시작하자, 나는 쭈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본다. 찬찬히 살핀다. 깃털이 날려 산울타리 밑으로 떠다니다가 거미집과 가시 돋은 가지에 걸린다. 발톱의 붉은 피가 마르고 굳는다. 시간이 흐른다. 햇빛의 축복. 바람이 엉겅퀴 줄기를 흔들다 잦아든다. 그리고 나는 울기 시작한다. 소리 죽여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꿩 때문에, 매 때문에, 아버지와 그의 인내심 때문에, 울타리 옆에 서서 매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 어린 여자애 때문에 운다.

어릴 때부터 사진 저널리스트인 아버지와 함께 자연을 누비며 매잡이가 되려는 꿈을 키워온 헬렌은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참매를 분양 받고, 그 매에게 '메이블'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그녀는 참매를 훈련시키면서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치유하고, 절망감에서 벗어나 서서히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참매는 개나 말처럼 사교적인 동물이 아니어서 강압이나 체벌을 이해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매를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먹이를 선물하는 긍정적인 강화를 통하는 길뿐이라고. 야생의 두 눈, 줄에 매인 매가 분노와 공포로 인해 거칠게 몸부림 치는 몸짓, 어린 매가 그녀의 손에 앉아 원색적이고 방어적인 공포 속에서 먹이를 발치에 두고 있는 그 순간, 매를 길들이려는 주인은 그 순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의 상태여야 한다. 움직이는 앉는 매는 최대한 잡아당긴 새총처럼 긴장하고 흥분한 상태, 공포와 먹이 사이의 공간, 마비되고 꼼짝 못하는 둘의 마음을 어떻게든 끈으로 이으려고 하는 순간은 너무도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고, 어느 순간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저자인 헬렌 맥도널드는 역사학자이자 동물학자이기도 하고, 전문적인 매 조련사로 유라시아 전역에서 펼쳐진 맹금류 연구와 보존 활동에도 참여했다.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이 책은 야생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야생 참매 따위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우와. 싶은 순간이 꽤 많이 있었으니 말이다. 동물과 인간의 교감, 자연 속의 어우러짐, 죽음과 애도, 그리고 상실과 치유... 어떻게 야생 참매를 길들이는 순간을 슬픔을 다스리는 과정으로 그려낼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탁월한 은유와 상징이 넘쳐난다.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각별히 가깝고, 누군가는 남처럼 무관심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애틋하게 가슴에 돌처럼 박혀 있기도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가진 이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