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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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다. 누군가 아주 우연히,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집을 발견하게 된다. , 미래로, 과거로 원하는 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대가는 '더 하우스'가 지정하는 여자들을 죽여야만 한다. 그래서 그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 빛나는 소녀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는데, 자유롭게 시간대를 넘나드는 그이기에 절대 발각될 염려는 없기에 그는 점점 더 살인 행각에 중독이 된다. 그 와중에 그가 살해했다고 생각했던 한 소녀가 극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그녀는 몇 년 뒤 자신의 사건을 취재했던 신문사의 기자가 되어 그를 쫓기 시작하고, 우연히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그의 반격이 시작된다. 정말 너무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타임 리프라는 장르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빛나는 독창성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깨달음. 마치 어떤 문이 속에서 열리는 듯했다. 열이 최고조에 달했고, 무언가가 목 놓아 울부짖으며 그를 통과해갔다. 그 소리는 경멸과 진노와 불로 가득했다. 그는 빛나는 소녀들의 얼굴을 보았고, 그들이 어떻게 죽어야만 하는지 알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녀를 죽여. 그녀를 막아.

타임리프 스릴러라는 읽기도 전부터 구미가 확 당길만한 소재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책 날개 뒤쪽에 소개된 정보가 미리 없었다면, 아마도 그 여정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대가 너무 뒤죽박죽 섞여 있는데다, 짧은 이야기로 자꾸만 화자가 바뀌는 이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하기란 너무 복잡했으니 말이다. 100여 페이지가 지나서야 주인공 하퍼가 가지게 된 정확한 능력(?)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더 하우스'는 머릿속에 어느 시간만 생각하면 문이 그때로 열리는 시간의 블랙홀 과도 같은 장소였다. , 그는 이곳 '더 하우스'를 통해서 미래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마룻바닥이 피로 젖어 있고, 시체가 복도에 널부러져 있는 걸 보다가 문지방 너머로 몸을 다시 빼고, 손을 넣어 문을 닫은 다음 다른 시간대의 날짜에 집중하고 나서 다시 문을 열면 시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그런 식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왜 다른 시간대로 가서 소녀들을 죽여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74년의 하퍼는 여섯 살이던 커비를 만나 모든 것을 한데 연결해주는 '그 물건들' 중 하나인 조랑말을 선물로 준다. 언젠가 너에게 돌아올 테니 그때 다시 만나자고. 나중에 조랑말을 가지러 오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89년에 커비의 개와 그녀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우리는 이 장면이 올 때까지 하퍼가 왜 빛나는(?) 소녀들을 찾아가 죽여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저 시간대를 넘나들며 벌이는 살인의 배경에 '더 하우스'가 어떤 힘을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92년의 카비는 신문사에 들어가 자신이 겪은 사건을 추적해 살인자를 찾으려고 하는 중이다. 스토리는 막판에 가서야 긴장감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를 더 하우스로 이끌었던 것과 똑같은 인력이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으로 향해 갈 때의 그 날이 퍼렇게 선 인식, 그러고서는 '그 방'의 부적들 중 하나를 알아보면 그만이었다. 그것은 게임이었다.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를 거치며 여자들을 찾아내는 일은 게임이었다. 그들은 그가 그들을 위해 써 내려가고 있는 운명을 기다리며, 준비를 갖추고 그의 장단에 맞추어주었다.

 

시간을 여행하는 살인마라는 매력적인 소재는 어쩌면 영상으로 재 탄생했을 때 더 빛을 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작으로 미국에서 TV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좀 더 정돈된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훨씬 더 몰입도가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는데, 아무래도 영상으로 보여진다면 뒤죽박죽 스토리를 정리하기가 더 쉬울 테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연쇄살인마가 되어 버린 하퍼도, 끔찍한 공격에서 살아남은 소녀 카비도 아니고 바로 '더 하우스'라는 장소 자체이다. 시간 여행을 하는 다양한 시대 별로 다양한 소녀들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아는 것은 바로 그것을 지시하는 '더 하우스' 뿐이니까. 빛나는 소녀들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더 하우스'라는 사실은 이 작품을 스릴러라기 보다 공포로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다. 얼핏 예전에 한참 유명했던 미드 '로스트 룸'이 떠오르기도 한다. 모텔의 열쇠를 통해서 세계 어느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었던 그 드라마의 주인공 또한 초능력이 깃들어 있었던 '물건'들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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