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제자들 밀리언셀러 클럽 140
이노우에 유메히토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특정 장르의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어느 정도는 내용의 전개가 짐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소재와 간단한 플롯 정도만 알아도, 혹은 첫 문장을 읽거나, 첫 단락만 지나가도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따라 잡느라 두툼한 두께의 페이지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후다닥 읽어버린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독특한 제목과 바이러스라는 소재 덕분에 과학 소설처럼 이야기가 풀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웬걸 스릴러였다가, SF였다가, 호러 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있고, 막판에는 액션 스릴러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 등은 기존에 다른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장치이다. 그런데 이노우에 유메히토는 이것을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말 그대로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넘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너무도 매력적인 작품이

애당초 교스케는 초자연 현상이니 초능력 따위와는 관련 없이 살아왔다. 불가사의한 일은 이 세상에 엄청 많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당장 믿을 수 없는 일이 때론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런 불가사의한 일을 단순히 ''라든가 ''이라는 단어를 붙여 결론짓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그래서야 사태를 피하기만 하는 게 아닌가. 설명이 안 되는 걸 전부 한 상자 속에 던져 넣는 셈이었다....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걸 직면하면 자신들을 넘어선 존재나 힘을 탓한다. 그건 결국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에 오고 나서 그런 불가해한 일이 자기 몸에서 벌어져 버렸다.

주간지 기자인 나카야 교스케는 대학병원에서 원내감염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를 하려 하지만, 시설 내 통행허가증이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다며 길은 막혀 있고, 병원은 완전히 봉쇄된 상태이다. 주변에 몰린 보도차량의 수도 엄청났고, 노란색 가드펜스가 도로를 가로 질러 세워져 있고, 흰 방호복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병원 사이를 오가고 있는 등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보고 있는 듯 현실감이 없는 모습에 당황한다. 현재 격리된 류오 대학병원에는 환자, 방문객, 의사, 간호사 등 약 450명이 있고,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6명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그는 병원에 들어갈 수 없으니 뭐라도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시청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의대생 약혼자와 연락이 두절되어 걱정하던 메구미라는 여성을 알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쪽으로 급변한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병원으로, 본의 아니게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바이러스 연구소의 연구생이던 약혼자 고바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메구미에게서 열이 나고, 빨갛게 부풀어 오른 발진, 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응급차를 호출하고, 카페에 다른 손님이 없었기에 카페 주인과 교스케, 메구미 세 명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중 카페 주인은 이틀 후에 사망해버린다. 이후 교스케는 열흘 동안 의식불명상태가 된다. 그로부터 두 달 동안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372명에 달했고, 어느 정도 유효한 백신이 만들어져 사망률을 조금 낮추고, 세간에서는 이 신종 전염병을 '용뇌염'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 근저에는 자신이 믿어 온 상식이 뒤집히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초능력 같은 건 거짓말, 우화일 뿐이라는 상식 말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초능력에 대해서는 저희도 상식파였죠.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아니, 그런 바보 같은 얘기엔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나카야 씨와 연결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저도 초능력과 관계되는 게 생기고 말았습니다.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 그로 인한 전염병 사태는 금방 진정이 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였다. 초기 감염자 중에 의식이 돌아온 것은 교스케와 메구미, 그리고 메구미와 고바타가 병문안을 했던 노인 오키쓰, 이렇게 세 사람이었는데 문제는 이후 그들에게 나타나는 말도 안 되는 증상들이었다. 우선 93세의 오키쓰는 의사소통도 잘 안 되던 노망난 노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이가 실감 나지 않는 활기찬 할아버지로, 게다가 외모가 하루가 다르게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교스케는 갑자기 환각을 보기 시작했고, 메구미는 물체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회춘, 예지력, 염력이라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세상과 소통하려 매스컴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이야기는 점점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간다.

바이러스라는 소재와 '마법사의 제자들'이라는 제목이 잘 매칭되지 않아 읽기 전부터 더욱 궁금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이 만들어진 계기를 들으니 꽤나 그럴 듯하고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프랑스 작곡가 폴 뒤카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들'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하는데, 마법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의 제자가 어설픈 마법으로 물바다 소동을 일으키고 만다는 내용이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세상을 초토화시키고, 이후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초능력이 등장해 더욱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책의 내용과 기묘하게 부합되어 제목의 특별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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