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최혁곤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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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일명 바리캉 맨으로 불리는 범인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하던 시기였다. 석 달 사이에 젊은 여자 넷이 죽어나갔는데 희생자들의 머리 한 부분이 바리캉으로 밀린 채 발견되어, 일명 바리캉 맨으로 불린다는 어쩐지 다소 우스운(?) 설정의 범인덕분에 사회부 기자들도, 경찰 들도 비상근무에 수사에 애를 먹고 있던 참이었다. 한국기자대상을 수상하고 꽤나 잘나가는 기자인 박희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옛 애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자신을 구해달라고. 게다가 그녀는 지금 얼굴만 봐도 다들 알 만한 인기 탤런트 채연수였다.

농담인 듯

소문 하나에 죽고 사는 연예인이니 경찰에 신고하기는 부담스럽고, 하지만 납치 임에 분명하니 뭔가 조치는 취해야겠고, 박희윤은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의 카페 '이기적인 갈 사장'을 찾아간다. 그곳의 사장 갈호테는 피의자와의 스캔들로 인해 쫓겨난 전직 강력계 형사다. 하지만 그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채연수는 얼굴 없는 시체로 발견되고, 이후 바리캉 맨과 채연수, 그리고 박희윤에 대한 루머성 기사로 한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가 바리캉 맨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만다. 그리고 카페 '이기적인 갈 사장'에서 빈둥거리며 갈호테와 기자 시절 동료이자 후배 홍예리와 함께 수상쩍은 사건, 사고 조사에 뛰어들게 된다.

“그나저나 우리가 이 짓 해서 남는 게 뭐지? 오지랖 넓은 것도 어느 정도라야지. 용감한 시민상 받을 것도 아니고 사립탐정처럼 의뢰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카페는 손님이 없어 망하기 직전인데. 그냥 대책 없이 본능에 막 끌려가는 기분이야.”

문제는 극중 이들의 말처럼, 목숨을 걸고 범인을 쫓고, 수상한 일을 따라다니며 조사하는 것이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거다. 누군가 그들에게 의뢰한 것도, 그렇다고 전직 기자, 전직 형사의 신분이니 투철한 사명감으로 정의를 밝혀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농담 아닌

표면적인 스토리는 본격 미스터리 물이지만, 실제 진행되는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가볍게 흘러간다. 실없는 농담과 단순한 유머들은 지방경찰청장까지 지내고 퇴직한 갈호테의 전 상사가 너무도 진지하게 사라진 개를 찾아달라고 의뢰를 하는 순간에 이르면 정점이 된다. 아니 무슨 중동의 테러리스트를 쫓다가 하마 영감이 애지중지 키웠던 개 덕식이를 찾는 것까지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그러니까 의뢰 내용인즉슨, 집 나간 개를 찾아달라는 거였다. 입안의 커피를 뿜을 뻔했다. 화가 끓어올라 귓구멍과 콧구멍에서 압력밥솥 스팀 같은 게 나올 것만 같았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친구 체면을 생각해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그저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이주 노동자 불법체류, 전직 탈레반의 사제폭탄, 등록금 인하와 취업 대책을 촉구하는 대학생 시위 등등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내용을 진지하게 전달하는 것보다는 가볍게 풀어내는 것이 오히려 사태의 심각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기도 하니 말이다. 마지막 종막에 이르면 그 동안 벌어졌던 사건들이 하나 둘 씩 그 연계성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바리캉 맨과 박희윤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 그리고 박희윤의 주변 인물들에게 생겼던 일들이 동기를 가지고 연결되기 시작한다.

농담같은

하지만 여전히 이 작품을 누군가에게 추천해도 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일부러 그런 거겠지만) 이런 대목들 때문이다. <따로 놀던 의문점들이 자기장에 끌리듯 일직선에 모이기 시작했다>, <..한순간 모든 퍼즐 조각들이 빈틈없이 들어맞았다. 차가운 전율이 등줄기를 핥었다> 등등 사건의 해결을 너무 쉽게 '이지 고잉'하려는 대목들 말이다. 흩어져있던 단서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퍼즐을 맞추는 것은 이렇게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빠져 '읽고 있는' 독자들이 스스로 깨닫게 해야 그 재미가 더 할 텐데 말이다. 어딘가 나사 빠진 것 같은 인물들이 사건 해결을 너무 편하게, 쉽게 해버리니 단편임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야기의 깊이는 물론 추리 소설로서의 긴장감이 확실히 떨어지긴 하는 것 같다.

매년 새로 출간되는 미스터리 소설만 이백여 종, 그 중에 반 이상을 읽어대는 추리 소설 마니아인 나에게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대략 난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함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이상한' 두 캐릭터부터 연작 단편으로 이어지는 스토리 또한 깃털처럼 가볍기 그지 없는데, 설렁설렁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무심코 지나갈 수만은 없는 묵직함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무거워지려고 하면 우리의 주인공 두 캐릭터가 분위기를 또 확 깨버리는 무슨 농담 같은 소설이라고나 할까. 이 무슨 진지하지 않은 추리 소설이란 말인가. 재미있는 건, 읽는 내내 투덜대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따라갔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이들의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진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두 명의 아주 명확한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명력을 얻기 시작했다는 뜻일 것이다. 장르 소설에서 매력적인 캐릭터야말로 사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그러니 '탐정이 아닌' 이 두 남자가 어떻게 진짜 '탐정'이 되어 가는지 앞으로의 이야기를 고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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