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59살 오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삿대질을 하고, 다그치고, 노려보는 남자. 평생 자명종 없이 6 15분 전에 눈을 떴고, 40년 가까이 매일 아침마다 정확히 똑같은 양의 커피를 내려 마시고, 항상 동네 시찰을 하러 거리로 나가는 남자. 뭐든 간에 발길질을 하면서 물건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쓰레기통을 차며 욕설을 내뱉는 남자. 그렇게 까칠한 그는 여느 때처럼 동네 시찰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고 전화국 가입과 신문 구독을 취소한다. 수도꼭지며, 문손잡이를 수리하고, 다락방과 헛간에 있는 도구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라디에이터, 커피 여과기, 전등을 모두 꺼버린다. 그는 지금 자살을 하려는 중이다.

"여유를 좀 가지세요." 그들은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컴퓨터로 일을 하고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길 거부하는, 건방이나 떨고 앉아 있는 수많은 서른한 살짜리들이. 아무도 트레일러를 후진시킬 줄 모르는 이 사회 전체가. 그러더니 자기한테 더 이상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왜냐하면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보낸 그는 며칠 전 조금 느긋하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친구이자, 그의 편이었던 아내가 죽은 지 벌써 6개월이 지난 참이었다. 사실 아내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죽음을 실행했었어야 하지만, 그 당시 그에게는 챙겨야 할 직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살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사방에서 출근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어떤 꼴이 되겠냐고 생각한 그는, 아내가 금요일에 죽고, 일요일에 장례를 치르고, 바로 다음 월요일에 출근했던 것이다. 고지식하게 보일 정도로 그렇게 세상에 성실했던 그지만, 결국 나이에 밀려 직장에서 해고 당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물론 그도 그의 인생이 이렇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가 자신보다 먼저 죽어 그의 삶이 다 멈춰 버릴 거라고, 그 와중에도 직장에 출근했지만 나이가 많다고 해고 당할 거라고는 몰랐을 것이다.

이제 그는 책임져야 할 일도 없고, 자신이 보살펴야 할 가족도 없고, 세상에 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장의사에게 돈도 내고, 교회 묘지에 묻힌 아내 옆에 자기 묏자리를 만드는 것도 동의하고, 변호사를 불러 유언장도 쓰고, 청구서도 다 지불하고, 융자도 빚도 없고, 집에 이사올 누군가를 위해 집 수리도 끝냈고, 신문 구독도 끊고, 하물며 설거지 거리들도 모두 다 씻어놨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평화롭게 죽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진지하게 자살을 하려던 그 순간, 뭔가 길게 찌익하고 긁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머저리가 자동차를 몰다가 오베의 집 외벽을 긁어 버린 것이다. 화가 나서 커튼을 열어 젖히자, 키 크고 비쩍 마른 금발의 사내와 검은 단발 머리의 임산부를 발견한다. 그의 집 맞은편에 위치한 오베의 집과 똑같이 생긴 주택에 이사온 아이가 딸린 외국인 가족이었던 것이다.

"아저씨 웃겨요!" 세 살배기가 웃었다.

오베는 세 살배기를 보고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 저기, 자기를 너무 못되게 보이려 하진 마세요."

그렇게 이웃집에 이사온 이상한 외국인 가족 덕분에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오베. 그는 매번 그들에게 휘말려 자신의 자살을 하루 뒤로, 그 다음 날로 계속 미루게 된다. 독특한 이웃들과 성가신 고양이와 그가 계속 싸워온 하얀 셔츠들은 그가 아내 곁으로 가는 것을 매번 방해한다. 항상 규칙적이고, 변하지 않는 일상을 사랑했던 그인데 새로운 이웃이 이사온 뒤로 단 한 순간도 평화롭지 못하게 시끌 벅적 어수선해지고 만다. 오베가 6개월 동안 준비했던 그 계획은 그가 시도할 때마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방해하는 덕분에 번번이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한다.

매 순간 세상 전부와 싸우고 있는 듯한 오베는 동네에서 지나가다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까칠한 이웃이다 가도, 아내를 잃어버리고 종일 그녀를 그리워하는 외로운 노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 라는 식으로 버럭버럭 아무한테나 소리 지르고 화를 내지만, 그 모습이 마냥 미워 보이지 만은 않아 더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이야기는 자살을 하려는 오베와 그를 방해하는 이웃들의 현재와 그가 아내를 만나게 되고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과거와 교차되어 진행된다. 아내를 비롯해 사람들은 그를 보며 세상 모든 것에 시비를 건다 말하지만, 하지만 그는 시비 따위를 거는 게 아니라 그저 옳은 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세상은 흑과 백. 자신이 정의라고 믿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내가 챙겨줘야 할 사람과 상관없는 사람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과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날 속이면 안 돼요, 여보.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오베의 죽은 아내 또한 오베 만큼이나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사람들이 오베와 오베의 아내가 밤과 낮 같다고 말할 정도로, 그들은 전혀 다른, 상반된 사람들이었다. 오베 조차 그녀가 왜 자기를 택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오베의 아내는 음악이나 책이나 이상한 단어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사랑했고, 오베는 드라이버와 기름 여과기처럼 손에 쥘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 남자 였다. 따라서 오베의 친구들 또한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는데, 왜 오베 처럼 심술 궂은 사람을 만난 건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오베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했듯이 그렇게 서로는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오베와 그의 아내가 만나게 된 사연, 그리고 그의 아내에게 사고가 생기고, 이후 오베가 세상 전체와 싸워야 했던 이야기들은 현재의 까칠하고 독불 장군 같은 그의 성격에 설득력과 타당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밉지만 짠한, 무섭지만 뭉클한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렇게 유쾌하면서도 울컥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은 너무 오랜만이라 어느 연령대의 독자라도 모두 만족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데뷔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노련한 스토리, 그리고 입에 척척 달라붙는 음식처럼 눈에 쏙쏙 들어오는 문장들은 잠시도 한 눈을 팔 수 없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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