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평범한 여인이 살해당하고, 그녀의 남편이 살인자로 지목된다. 문제는 사체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범인은 지문은 물론이고 머리카락조차 남기지 않았다. 몇 년 전에 개봉했었던 영화 의뢰인의 줄거리이다. 이야기는 그를 변호하는 변호인과 그를 구속하려는 검사 쪽의 대결구도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흥미로웠던 건 검사 쪽의 계획이었다. 살인자로 지목된 남자는 그 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수사팀은 범인이라고 확신했지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상태, 즉 기소할 수 없는 상태로 어쩔 수 없이 그를 풀어줘야 했던 검사는 이후 비공식적으로 그를 주시해왔다는 것이다. 모든 정황으로 미뤄볼 때 명백한 범인임에도 그저 정황증거만으로 범인에게 처벌을 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해주었던 영화였다.

시즈쿠이 슈스케는 거기에 아직까지도 존폐논란이 끊이지 않는 '공소시효'라는 사법계의 영원한 숙제를 추가한다. 지난 달에 일명 태완이법이라 불리는 공소시효 폐지에 관한 개정안이 법사위 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999년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의 피해 아동이었던 김태완 군이 숨지고 나서 지난 2014년 공소시효가 끝날 예정이었으나 제정신청을 통해 공소시효가 정지된 상태이다. 원래 공소시효라는 것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라면 25,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이다. 하지만 수많은 살인 사건들이 공소시효라는 걸림돌 덕분에 미제 사건으로 남겨졌고, 그 사건들은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활용되어 왔다. 몽타주, 아이들, 그 놈 목소리, 내가 살인범이다, 공범 등등...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 사건의 범인을 처벌하기 위해 부단히 뛰어다니는 스토리는 무엇보다 감정이입을 끌어내고, 제한된 시간이라는 긴장감 또한 부여하기 때문에 영화적인 소재로 자주 이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측은 이것이 사건의 피해자에게 불리한 법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공소시효가 지난 뒤 범인이 밝혀진다면 그에 대한 형벌권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고, 따라서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유유자적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공소시효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측은 공소시효 기간 동안 범죄자의 고통은 형벌을 받는 것과 맞먹기 때문에 처벌의 필요성이 낮아지고, 검찰과 경찰의 업무가 한 사건에만 인력과 시간을 쏟아붓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측 모두 각각의 이유가 합리적이어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는 사실 매우 어렵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관련해서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 작품의 질문은 사실 간단하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의 범인을 처벌하기 위해, 현재 벌어진 다른 사건의 범인으로 그 사람을 몰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것을 과연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아오토의 설명을 흘려 들으며 모가미는 단 한 가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마쓰쿠라가 진범이기를 바란다는 생각.

어떤 사건이든 범인이 특정 인물이기를 바라며 수사에 임한 적은 없었다. 이 녀석은 결백할지도 모른다, 이 녀석은 범인이 틀림없다 뭔가에 근거한 판단 말고, 이를테면 희망이 포함된 사심을 검찰 수사에 개입시킨 적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 모가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각 속에 있었다.

이 흉악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아직 부각되지 않았다. 마쓰쿠라가 범인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 한 점에 기대를 걸었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23년 전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사람을, 현재 다른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다가 발견했다면, 그렇다면 누구라도 내심 바라게 되지 않을까. 그가 이번 살인 사건의 범인이었으면. 그래서 지난 살인 사건의 피해자의 못다한 한이라도 풀 수 있기를, 분하게도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 없었던 법의 정당한 심판을 받을 수 있기를 말이다.

70대 노부부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아마도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이고, 돈까지 얽혀 있는 걸로 조사되어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용의자가 추려진다.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해 용의자 범위를 압축하는 작업 중에 베테랑 검사 모가미는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하나 발견한다. 바로 자신이 대학 시절 하숙을 했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 살해 사건에서 마지막까지 범인으로 지목됐었던 남자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무려 23년이 지나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나버렸지만,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관리인 부부의 외동딸 유키가 만약 아직 살아 있다면 벌써 결혼해 아이도 있을 지 모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녀의 미래를 잔인하게 빼앗아 버린 범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며 살.... 것이다. 당연히 모가미는 그가 이번 노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이었으면 하고 바랄 수밖에 없다. 설령 지금 그가 과거의 죄를 인정한다고 해도 아무런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지만, 그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면 그 동안 미뤄졌던 법의 심판을 받아 죗값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오키노 역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과가의 죄를 청산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취조할 때 서슴없이 폭언을 퍼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의 죄까지 덮어씌워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야 거의 사적 제재의 영역이다....원죄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정말로 심판 받아야 할 사람이 심판 받지 않고 법망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단추를 하나 잘못 끼우면 이치에 어긋나는 결과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과거의 살인 사건을 저질렀지만 시효가 성립되어 처벌받지 않았다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는 죄를 뒤집어씌워도 상관없는 것일까? 범인상을 미리 정해놓고 철저히 억측으로 수사를 하더라도,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던 살인자를 벌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세상의 정의를 지키는 것일까? 만약 이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공소시효를 빌미로 아무런 제재 없이 빠져 나가버린 범죄자를 심판하는 일은 누가 할 수 있을까? 피해자는 그저 단순히 운이 나빴을 뿐이고, 범인은 그저 운이 너무 좋았을 뿐이라고 치부해야 하는 건가? 세상에 이런 정의가 어디 있단 말인가.

베테랑 검사 모가미의 정의는 "죄를 저지른 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에게 다른 죄를 뒤집어씌우게 되더라도, 어차피 그가 과거에 저지른 원래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모가미의 제자이자 새내기 검사인 오키노의 정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법은 지켜져야 한다"이다. 원죄를 만드는 것은 수사 측이 저지르는 죄이므로,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설사 그것이 과거의 살인을 저지른 자일지라도 말이다. 누군가에게 현재의 죄를 뒤집어씌우면, 결국 현재 사건의 범인은 역시나 또 처벌받지 않고 살아 갈테니 말이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모가미의 정의와 오키노의 정의는 극과 극이지만, 사실 어느 한 쪽의 입장을 편들고 싶지는 않다. 모가미의 행동도 이해가 가고 오키노의 생각도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죄를 저지른 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어떤 일이 있어도 법은 지켜져야 한다.

설사 그것이 과거에 살인을 저지른 자를 보호하는 것일지라도.

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질문이 또 있을까 싶다. 시즈쿠이 슈스케는공소시효를 빌미로 달아난 범죄자를 심판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진지한 의문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현직 검사들을 취재해서 작품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그려내어 현행 사법제도의 복잡한 딜레마를 인간적인 드라마로 만들어내고 있다. 애초에 공소시효라는 것만 없었더라도. 라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남겨주는 멋진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