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바야흐로 캐릭터의 시대이다. 올해 말에 크리스마스 특별판이 방송될 BBC의 셜록 시리즈를 떠올려보자.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19세기 명탐정 셜록 홈스를 21세기로 멋지게 소환해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 캐릭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TV와 영화를 통해서 셜록을 연기했던 수많은 배우들이 모두 다 이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아니란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70여명의 배우들이 연기했던 셜록 홈스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가장 큰 매력은 프록코트를 입고 스마트 폰,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엄청나게 빠른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 상대방의 혼을 쏙 빼놓는, 이른바 소시오 패스라는 21세기형 캐릭터라는 점일 것이다. 배우가 가지고 있는 외모적인 개성마저도 정서적으로 코난 도일의 원작 속의 홈즈 처럼 느껴지게 만들 정도이니 말이다. 이렇게 잘 구축된 캐릭터는 스토리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동일한 상황이라도 인물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에, 플롯은 주로 인물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인물이야말로 작품의 인기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그 누구도 절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셜록 홈즈이다.

"셜록 홈즈를 만난 적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경감님은 직접 만난 적 있으신가요?"

".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놀랍게도 내 질문에 기분 나빠하는 눈치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유명한 탐정의 열렬한, 심지어 광적인 팬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뜻밖이었다. "사실은 세 번 만난 적 있죠." 그는 말을 잇다 말고, 계속해도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처럼 잠깐 멈추었다.

그 유명한 셜록 홈즈가 TV와 영화에서처럼 단순히 리바이벌 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나타난다면 어떨까. 전세계의 수많은 셜로키언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마저 깜짤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코넌 도일이 없는데, 대체 새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만든다는 말인가. 영국 작가 앤터니 호로비츠는 코넌 도일의 직계 후손이 운영하는 아서 코넌 도일 재단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홈즈 작가이다. 17살 때 셜록 홈즈 작품집을 읽고서 범죄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니, 일단 기본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나 충성심은 깔고 시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가 쓴 <셜록 홈즈-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무려 8년간의 방대한 자료 조사와 집필 기간을 거쳐 만들어졌기에 코넌 도일의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거의 고...히 살려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번 작품 <셜록 홈즈-모리어티의 죽음>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말 코넌 도일이 살아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새 작품이 발표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작품은 <마지막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원래 코넌 도일이 홈즈가 모리어티와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맞대결한 끝에 추락사하는 것으로 시리즈를 끝내려고 했던 바로 그 작품 말이다. 물론 독자들의 원성으로 셜록 홈즈는 이후에 다시 등장하지만 말이다.

셜록 홈즈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경찰 소관이라 그러면 안 되는데 문을 부수고 들어왔더군요. 그 위대한 탐정을 가까이서 본 것도, 수사에 나선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도착해 보니 벌써 수사를 시작했더군요. 뭐 어쩌겠습니까. 그는 내 기억보다 키가 컸고 심미적인 관점에서 일부러 굶은 사람처럼 비쩍 말랐더군요. 그래서 턱과 광대뼈, 무엇보다 무엇을 보든 그 안에 들어 있는 정보를 죄다 벗겨낼 것만 같은 눈이 인상적이었죠. 다른 사람한테서는 접한 적 없는 에너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런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몸놀림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었어요. 허투루 흘려보낼 시간이 없다는 분위기를 풍겼죠.

홈즈와 모리어티의 맞대결 이후 닷새가 지난 뒤 라이헨바흐를 찾아가는 체이스의 이야기로 이 작품은 시작한다. 프레더릭 체이스는 미국 핑커턴 탐정 사무소 소속으로 모리어티 교수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영국으로 갔다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위스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는 사건의 경위를 알기 위해 찾아간 스위스 산중턱의 경찰서에서 런던 경시청의 애설니 존스 경감을 만나게 된다. 재미있는 건 체이스와 존스의 첫 만남은 마치 홈즈와 왓슨의 만남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의 첫 만남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기에 홈즈와 왓슨 처럼 보일지는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 정말로 셜록 홈즈가 다시 살아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기시감이 드는 순간은 이들의 첫 만남 이후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존스가 셜록처럼, 체이스가 왓슨처럼 여겨지는 이 구도는 작품의 후반부에 가서 밝혀지지만 특별한 그들만의 사정이 숨겨져 있다. 그저 셜록 시리즈를 따라 하기 위해서 주인공 두 명의 구도를 이렇게 설정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인 애설니 존스 경감은 <네 사람의 서명>에 등장했었던 인물이고, 체이스가 소속되어 있는 핑커턴 탐정 사무소 역시 <공포의 계곡>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는 것. 작가인 호로비츠가 인터뷰에서 "코넌 도일이 하지 않았을 법한 일은 나도 할 생각이 없다. 나는 셜록 홈즈는 내게 속한 존재가 아니라, 그와 그가 등장하는 책을 사랑하는 수백만 명의 전 세계 팬들에게 속한 존재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다."라고 한 것처럼 그는 기존에 너무도 탄탄하게 구축된 캐릭터를 전.. 훼손시키지 않고, 그래서 셜로키언들의 분노를 사거나 그들을 정말 실망시키지 않고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들 것이다. 존스와 체이스가 주인공이라면, 홈즈와 모리어티가 죽은 다음에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라면, 그렇다면 대체 이 작품에서 셜록 홈즈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제목에도 셜록 홈즈의 이름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 홈즈가 이 작품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치 홈즈가 작품을 읽는 내내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셜록 홈즈는 이 작품 속에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이 작품의 미스터리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기존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익히 보았던 암호문 해독이나 살인 트릭, 거짓 단서 등 고전 추리소설의 냄새를 폴폴 풍기는데도 불구하고, 스토리는 너무도 현대적이어서 BBC의 드라마 '셜록'처럼 감각적이고, 세련되고, 긴장감 넘치고, 매력적인 반전과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존스와 체이스 이 두 콤비의 다음 시리즈를 또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전작인 <실크 하우스의 비밀>을 읽지 않았다면, 거의 무조건 <모리어티의 죽음> 책장을 덮자마자 전작을 구매하게 될 거라는 사실도 미리 밝혀둔다. 호로비츠는 진정한 셜로키언이자, 대단한 작가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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