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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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했던 일을 라이벌에게 뺏기고, 직장에선 쫓겨나게 생겼고, 건달들에게 몰매를 맞고, 차가 엉망이 되고, 이렇게 재수가 없어도 되나 싶게 안 좋은 일들만 다발로 쏟아져 내린 날, 화가 나서 폭발하기 일보직전에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며, 이 모든 불행이 신의 탓이라며 원망을 했더니, 그의 앞에 자신이 신이라고 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자신의 전지전능한 힘을 며칠간 줄테니, 얼마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보자고 말이다. 이것은 언젠가 보았던 짐 캐리 주연의 코미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스토리이다. 이렇게 우리는 되는 일이 없을 때, 세상의 모든 불행이 다 나에게만 찾아 오는 것 같을 때, 간절히 바랬던 기대가 깨질 때 신을 원망한다. 신이시여,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라며 탄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면 어떨까.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이유는 슬프면서도 아주 간단해.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거지. 나는 힘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느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시간 단위로 점점 약해지는 느낌이야. 게다가 예전만큼 활발하지도 않아. 그래서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인간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생각한다.

"신이 자기가 만든 세상과 더 이상 보조를 맞출 수 없다고?"

이혼한 전처가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며 한밤중에 나타나 상담을 요청한다. 파산 직전의 심리 치료사인 야콥은 질투에 눈이 멀어 쫓아온 전처의 현재 남편인 프로 복서에게 맞아서 코 뼈가 부러지고 만다. 깨어나 보니 구급차 안, 시장통이 따로 없는 병원 응급실에서 야콥은 어릿광대 복장을 한 40대 후반의 남자를 만난다. 그는 야콥에게 심리 상담을 부탁하며, 자신이 신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많이 망가졌으니, 당신이 날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물론 영화 혹 짐 캐리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 남자를 보며 믿지 않았듯, 야콥 역시 그를 믿지 않는다. 왜 안 그러겠는가. 신이라니, 그것도 인간의 모습을 한, 게다가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야콥은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그를 그냥 내칠 수가 없어 상담을 해주기로 한다. 아르바이트로 서커스 광대 일을 하고 있는 아벨은 누가 봐도 신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사실 신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니 뭐 그의 겉모습 자체는 그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와는 크게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벨과 야콥은 심리 상담을 시작하고, 아벨은 자신이 신이라는 걸 야콥에서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정신분열증 광대가 어저면 진짜 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그런데 그가 정말 신이라면 세상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바꿔 버리면 될 것이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신은 말한다. 자신에게 더 이상 그럴 능력이 없다고 말이다. 왜 자신에게 부정맥이 있겠냐며, 왜 자발적으로 심리 치료를 시작 했는지 생각해보라고.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고 싶지만, 손발이 묶인 느낌처럼 전혀 그럴 힘이 없다고. 신에게 힘이 없어진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신을 믿을 때에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며, 아무도 신을 믿지 않는다면 힘을 전혀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무기력증은 믿음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어. 이해하겠어? 나의 탈진은 곧 세상의 탈진이고, 나의 의욕 상실은 곧 세상의 의욕 상실이야!"

그래서 아벨은 야콥에게 인간들이 다시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의 실수가 뭔지 찾아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글쎄, 자기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심리 치료사가 과연 신을 도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도 절대자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 단 하나의 결혼 생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십 억 명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 인간들이 맺는 수조, 수천 조의 관계를?    

야곱은 아벨과 함께 마치 마법과도 같은 크리스마스 여행을 다녀온다. 자신이 생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앞으로도 다시는 맛보지 못할 색다른 시간, 즉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가끔 나도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나도 궁금해 해본 적이 있다.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말이다. 야콥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아벨을 통해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까 마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누군가의 삶을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야콥이 마치 공기인 양 사람들이 그의 옆을 휙 지나가 버린다.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세계의 사람들은 야콥을 볼 수도 없고, 야콥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서로 속해 있는 세계가 다르니 말이다. 그렇게 야콥은 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다. 아버지는 야콥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왜냐하면 야콥의 부모가 결혼한 이유가 바로 어머니가 야콥을 임신했기 때문이었으니, 이 생에선 그들이 결혼하지 않고 그저 복잡한 연인 관계만 유지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할 의무를 느끼지 못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를 붙잡을 결정적인 것이 없었기에 그들은 결혼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 인생이 이런 방향 또는 저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많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 아닐 수가 없다. 야콥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니 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고, 동생은 은행 돈을 빼돌려 도망치지도 않았고, 어머니는 유명한 자선 단체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부모가 진짜 삶에서 불행에 가까운 관계였음은 분명하다. 아버지는 어머니 덕분에 예상치 못한 출세를 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해 알코올 중독이 되고,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자신의 일까지 포기했으니 말이다. 야콥은 사흘 밤의 여행을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어떤 흔적도 세상에 남기지 못할 거라는 걸, 다른 세계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벨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광대든 신이든, 혹은 그가 자신에게 보여 준 것이 진짜 기적이든 눈속임 마술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야콥의 인생은 이제 전과 조금은 달라진다.

결국 심리치료사가 신을 치료한 게 아니라, 신이 그를 도와준 셈이 되었다. 아벨은 말한다. 신을 믿는다는 건 선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그러니 신을 믿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을 이렇게 만든 원인인 사람, 그 중의 하나인 야콥이 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 책은 끝난다. 종횡무진 유쾌하고, 황당하기도 한 에피소드들의 바다를 거쳐 마지막 장면은 뭔가 찡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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