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섀도우
마르크 파스토르 지음, 유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만약 쉽게 흥분하거나, 비위가 약하다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부터 악마 같은 여자의 광기를 드러내는 예를 들 생각이다. 두렵지 않다면 계속 읽어나가기 바란다. 마음 한 귀퉁이에 묻어두었던 그대의 생각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연쇄 살인마, 게다가 여자인 그녀의 이야기는 매우 리얼해서 어떤 대목은 눈살을 찌푸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기도 하다. 오죽하면 해당 대목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독자들에게 경고까지 하겠는가. 게다가 이렇게 주의를 주는 존재는 극의 주인공인 살인마 엔리케타도, 그녀를 잡으려고 하는 형사 모이세스의 목소리도 아니다. 1인칭도, 3인칭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닌 독특한 화자가 중간 중간 극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초반에는 이 독특한 화자의 스토리 전개가 낯설고,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계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너무도 끔찍한 이야기를 마치 신처럼 보이는 이 화자가 들려주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하게 해주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보이지 않는 손, 사악한 무대담당의 짓으로 드러나는 우연한 사건들이 있다. 그들은 늘 술에 취해있고 독특한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다.

마치 무대극의 사회자라도 되는 것처럼. 극이 진행되기 전에 간단한 해설이나 논평이라도 들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에서는 클라이맥스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클라이맥스는 소설에 더 잘 어울린다. 소설은 설정도 쉽고 설명하기도 쉽다. 내가 마음대로 사건을 조종한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아니라고 하진 않겠다.

그리고 엔리케타의 그 많은 악행들을 보아온 독자들이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려고 할 때, 그러니까 이야기가 거의 막판에 치달았을 때는 이런 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모든 일에는 항상 실수가 있고, 실수는 비싼 대가를 치른다.

수많은 범죄, 스릴러 소설들을 읽어왔지만, 이 책은 바로 이 화자의 역할 때문에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야기가 끔찍하고 잔인할 수록 독자들은 감정 이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극의 몰입도를 키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이 실화이고, 거기다 연쇄 살인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거의 형사인 주인공만큼이나 비중이 있으니 독자들의 심리적 불편함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쌓여가니 말이다. 실화라는 것이 주는 다소의 비현실성도 극중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데 한몫을 한다. 사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도 믿기 어려워 더 소설 같은 순간이 종종 있으니 말이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그것을 과시하는 사람이 있다. 오줌 눌 요강 하나 없어 술집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있고, 건강에 좋다는 해수욕을 즐기려고 산 세바스티안으로 떠나는 부자들이 있다. 비밀을 감추기 위해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구를 사귀려고 속내를 전부 털어놓는 사람도 있다. 엔리케타는 이 도시의 경계선을 찾아냈고 경계선을 따라 걸으면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처럼 경계선을 따라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거리가 피로 물든 혼탁한 시대의 바르셀로나, 어느 날부터 매춘부들의 숨겨진 아이들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돈다. 벌써 사라진 애들이 여덟이나 되지만, 엄마들이 매춘부이다 보니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고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이다. 소문은 점점 커져서 어린애들을 잡아다가 그 피를 마신다는 흡혈귀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물론 엔리케타의 실체가 점점 밝혀짐에 따라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왜 이런 소문까지 났는지 납득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연쇄 살인마 캐릭터도 매우 독특하지만, 그녀를 쫓는 형사 캐릭터도 굉장히 이색적이다. 모이세스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 형사이다. 법을 수호하고, 시민들을 악당들로부터 지키는 정의의 사도까지는 되지 못할 망정 ''을 믿지 않는 형사라니. 그의 세상에는 오로지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한다. 자신과 같은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 그래서 그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축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러니까 세상을 더럽히는 범죄자들이 그와 다른 사람이 되겠다. 그는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범죄자들을 저주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그가 만약 범죄자들과 같은 편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안 봐도 훤하다. 게다가 그는 동생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셜록 홈스와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하는 범죄 소설과 공포 소설을 탐독하고, 아내가 있음에도 바르셀로나 사창가의 단골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바르셀로나의 사회가 마치 화면으로 보는 것처럼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농부와 노동자가 넘쳐났으며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도 까지 더해, 빈민과 빈민가는 계속해서 늘어갔다고 한다.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던 가난하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였던 것이다. 가난과 좌절, 부패와 탐욕으로 가득 찬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유괴와 연쇄 살인은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실화'라는 이야기에 더욱 무게를 실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