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죽음
리사 오도넬 지음, 김지현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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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넬리에겐 그런 애정과 온기가 필요하다. 표백제와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집이 아니라. 그러게 진의 시체를 일주일 동안이나 집 안에 방치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늦게나마 나 자신을 단단히 나무랐다. '시체는 바로 바로 묻자.'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자신의 생일에 부모님을 뒤뜰에 묻어야 했던 열다섯 살의 소녀를 떠올려본다. 다섯 살 때 동생의 기저귀를 갈아주었고, 여섯 살 때부터 동생을 유모차에 끌고 다녔으며, 일곱 살 때는 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시작했던 지나치게 조숙한 소녀. 동네 사람들에게 어린 엄마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실제 소녀의 부모였던 진과 이지는 전혀 부모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집에 무슨 일이 있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 덕분에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이든 알아서 해결해야 했던 두 자매는 그러던 어느 날, 쓸모 없긴 했지만 그래도 부모였던 진과 이지 마저 영영 잃어버린다. 아빠인 진이 죽고, 다음 날 엄마인 넬리가 헛간에서 목을 매달아 죽은 것이다. 재미있는 건 언니인 마니는 동생인 넬리가 약에 취한 아빠를 베개로 눌러 죽였다고 알고 있고, 동생인 넬리는 반대로 언니가 그랬다고 믿고 있는 것.

어쨌거나 마니는 아동복지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 자매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다시 위탁 가정 양육 프로그램에 끌려가는 것만은 절대 사양이었기에, 부모의 시체들을 뒤뜰에 파묻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체를 방에 있는 침대 위에서 뒤뜰까지 끌어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부패가 시작된 시체에선 액체가 새어 나왔고, 살점이 떨어져 나오고, 고약한 냄새에다 체액이 사방으로 튀는 바람에 온 집안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시체들 위에 표백제를 뿌리고, 아빠는 땅에 묻고, 엄마는 쓰레기봉투에 옮겨 담아 헛간 밑에다 쑤셔 박는다. 그리고 엄마가 묻힌 땅에 라벤더를 심는다. 무슨 감상적인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아래 묻힌 시체를 최대한 감추려고 말이다.

이 무슨 섬뜩하고 기괴한 이야기란 말인가. 열다섯, 열둘의 두 소녀가 아무리 애정이 없기로서니 그래도 부모인데, 부모의 시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는 광경이라니. 설정만 보자면 무슨 공포물의 서두 같기도 하고, 엽기 잔혹 동화의 시작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 책의 시작 부분에 이런 경고 문구라도 하나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경고. 이 작품은 당신의 정신건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설정만 보자면 이 작품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나 이언 매큐언의 <시멘트 가든>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다소 어두운 두 작품에 비해 이 작품은 일종의 블랙 코미디처럼 이상하게도 무겁고, 칙칙한 분위기를 전혀 자아내지 않는다.

마니는 부모가 죽고, 시체를 묻고 나서의 상황을 이렇게 간단히 정리한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그들 곁에 있어주지 않았고, 필요할 때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그 둘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다.>라고.

넬리에게 마니가, 마니에게 넬리가 있으니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외로운 여정이 되었을 테니. 그래서 나는 자매끼리 비밀을 나누고 간직하도록, 비밀을 통해 둘의 유대가 강해지도록 놔두고 있어. 유대감은 중요한 거야. 그게 있어야 삶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어떻게든 계속 걸어나갈 수 있으니까. 비록 개 한 마리와의 유대감일지라도 말이야.

잉글랜드 여왕처럼 고색창연한 말투. 뛰어난 바이올린 실력. 해리 포터에 푹 빠져 해리 포터가 쓴 거랑 똑같은 동그란 안경까지 쓰고 다니는 약간 괴짜. 친구도 별로 없고, 잘 웃지도 않고. 하지만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저 남들이랑 조금 다른 열두 살의 넬리. 이따금 엑스터시도 하고 마약을 하지만 즐기지는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스크림 노점 차량의 주인 아저씨와 섹스를 하고, 세상만사 다 초월한 것 같은, 유년 시절을 잃어버린 아이 같은 애 어른 열 다섯살 마니.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변태라고 부르는 옆집에 사는 동성애자 할아버지 레니. 이야기는 이렇게 세 인물의 관점에서 번갈아 가면서 진행된다. 두 자매에게 보호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레니는 두 아이를 도와주려고 집으로 불러 음식도 해주고, 보살펴준다. 이제 자매는 레니의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이웃들의 눈에 띄지 않게끔 뒷문으로 몰래 드나드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 하나같이 눈 뜬 장님들이라 부부가 사라진 것도, 그래서 두 아이가 고아가 되었다는 것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가족과 비스 무리한 관계를 맺어가고, 시간이 지날 수록 두 자매의 친구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정부의 관계자들도 그들에게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그들을 속이기 위해 세 사람은 점점 더 거짓말을 거듭하게 되고, 그렇게 증폭되는 이야기는 복잡해지는 상황만큼이나 다채롭게 흘러간다. 우리는 마니가 되었다가, 넬리도 되었다가, 다시 레니가 되어 가면서 그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점점 미스터리의 한 가운데로 빠져 든다. 왜냐하면 1인칭 서술자인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독자인 우리가 그저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속이거나, 오해하더라도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 작품이 팩트로만 볼 때는 어둡고 끔직하고 우울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스토리가 마냥 그렇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엄청난 불행과 비극 속에 있지만, 실제 어린 두 자매가 느끼는 것은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넘어서는 거라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가의 글 솜씨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어린 두 소녀의 눈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체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거칠지만 순수하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당차고, 어둡지만 밝기도 한, 이 매력적인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란다. 세상에나.

아무런 준비 없이 이 작품을 만났다가는 시작부터 당황스런 전개에 정신건강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읽게 된다면 분명 당신은 이 작품을 읽기 전과 조금은 달라질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흡입력 있고, 재기발랄하고, 충격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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