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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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슬플 땐 절대로 날 위로해줄 만한 사람들을 향해 고개 돌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 그래서 우리는 더 슬퍼지지.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해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가, 어느 날 부모님이 나와 함께 있는 걸 썩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지. 어른이 된다는 건 우리가 생각만큼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란다. 힘겨운 일이지.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전작인 <내 욕망의 리스트>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늘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여자와 자고 싶어서 그녀가 예쁘다고 칭찬을 하고, 여자는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내가 필요하다며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진실을 견디지 못하는 허약한 사랑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거짓말을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너는 재능이 있으니 멋진 삶을 살 거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인생을 바꾸는 건 책에서나 가능한 거라는 걸 깨닫게 되면, 그제야 그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삶이 거기서 거기이고, 꿈을 이루지 못하는 평범한 삶이 대부분이라는 걸 아이들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엄마들은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들은 대개 상대를 배려해서이거나, 혹은 마음이 다치지 않게 보호하려는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 <행복만을 보았다>에서는 정반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마음 한편에 연민이나 동정, 인정 같은 것을 놓아둘 자리 없이 냉철하고, 계산적으로 일해온 그는 양쪽 보험회사의 입장에서 셈을 하고 가치를 따져봐야 하는 손해사정사이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하고, 설명되지 않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그는 사고가 나면 신체적 피해, 심리적 피해, 직업적 손해, 의료 비용, 손상된 차량의 가치, 심리적 고통에 대한 보상금 등등을 따져서 계산을 해야 한다. 그 일을 하면서 그는 종종 자신이 타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조사 중에 발견된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어서 누군가를 곤경에서 빠져 나오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누군가의 인생을 끝장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최소한으로 지불하게 만들어서 돈을 받는 사람이에요. 인정도 없고 연민도 없는 사람. 조난자에게 손을 내밀 권리가 없을뿐더러 마음 한편에 친절을 놓아둘 자리도 없어요. 사람들이 날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만들었어도 난 그저 가만히 받아들였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못 본 척해야만 돼요. 그렇지 않나요, 그제스코위악 씨? 당신이 물에 빠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대신 당신은 마음껏 날 욕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복종은 비겁한 사람들의 자존심이죠. 훈장 같은 것 말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자란 앙투완은 스스로를 '결핍'속에서 자랐다고 기억한다. 어머니의 냄새가 나지 않는 곳에서, 어머니의 품이 아닌 곳에서 허전함에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서 말이다. 반면 쌍둥이 여동생 둘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나, 그들 중 한 명이 죽는 바람에 가족의 행복도 끝이 난다. 여동생이 죽자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리고, 남은 여동생 안나는 어머니와 쌍둥이 자매가 곁을 떠난 뒤 말문을 닫아버린다. 그는 아버지를 향한 화를 주체하지 못했고, 매주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그도 어른이 되어 나탈리라는 매력적인 여자와 결혼을 하고 조세핀과 레옹이라는 남매를 둔 가장이 되어 살고 있다. 하지만 한 순간의 연민으로 실직자가 되어, 아내도 잃고, 나중엔 결국 아이들 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그는 아버지한테 느꼈던 증오심을 스스로에게 돌리기로 마음을 먹는다.

저도요, 아빠, 죽고 싶을 때가 있어요.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1부는 주인공 앙투안이 아들 레옹에게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2부에서는 모든 걸 잃어버린 뒤 멕시코로 추방된 이후의 삶과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과정, 3부에서는 그의 딸 조세핀의 시점에서 그녀가 아버지에게 받은 충격과 상처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다.

개 같은 일이 벌어졌던 그 첫해 5 5, 끔질’(끔찍한 질문)이 다시 떠올랐어요.

왜 당신은 날 먼저 쏘았나요?

조세핀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 대체 그는 왜 딸에게 총을 쏘게 된 것일까. 그는 나름 자신의 입장에서 딸을 위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당한 상대방의 입장까지 고려하지는 않았다. 그가 평생 원망하고 서운해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눈이 멀어 아들을 배려하지 않았다. 바람을 피웠던 그의 아내 나탈리도, 오로지 오토바이 때문에 엄마의 새 남자친구 아저씨에게 마음을 연 레옹도, 자신에게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한 아빠라는 존재를 용서하고 인정하기 위해 애쓰는 조세핀도,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복만을 보려 한다.

나의 엄마, 네 친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거짓말도 보이지 않고, 네 엄마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모르는 탓에 네가 생기기 1년 전에 지운 아기도 보이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무한하고 거대하면서도 비극적인 그 사랑도 보이질 않네. 당시에 내가 흘렸던 눈물도, 소파에서 뜬눈으로 지새웠던 무수한 밤도, 되살아난 야수의 모습도 보이질 않네.

그저 행복만을 보았어.

극중 앙투안은 레옹이 태어날 무렵의 사진을 보며 그 속에서 당시의 상처, 비극, 우울함 등은 보이지 않고 행복만 보인다고 쓸쓸하게 말한다. 평범한 어느 집에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단란한 가족 사진 말이다. 사진이란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기 위한 장치이다. 영원히 간직할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 우리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며 단정하게 체크하고, 밝게 웃는 표정을 짓는다. 행복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도 십 여 년 전에 찍은 가족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다. 사진 속에는 몇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도 계시고, 지금보다 많이 정정해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도, 훨씬 어려 보이는 파릇파릇한 나와 동생의 모습도 있다. 물론 되돌아보면 당시에 마냥 행복한 일, 좋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사진 상으로는 누구보다 밝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라도 하면서 행복이라는 것을 붙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들이 사진 속에서 짓고 있는 미소가 거짓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분명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는 다면 그 순간만큼은 진짜처럼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희망이 정말 행복을 불러올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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