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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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센티미터짜리 악마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무슨 소원을 제일 먼저 들어달라고 해볼까. 악마니까 그 대가로 영혼을 팔라고 하지 않겠느냐고? 천만에, 우리의 주인공 아자젤은 영혼이 뭔지도 모른단다. 소원을 말하는 이에게 오히려 영혼이 뭐냐고 묻는 이 깜찍한 악마는 자기 세상에서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라서, 우리 세상에 자신의 무게를 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에 누군가 돕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무슨 악마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은 하냐고 말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이 기상천외한 단편집에서는 이 모든 게 너무도 그럴 듯해 실제로 이런 악마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믿고 싶어질 정도이다.

그날 저녁, 저는 농구 경기를 보러 갔고 아자젤은 제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자젤은 경기를 보려고 계속 주머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아주 이상한 광경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아자젤의 피부는 밝은 빨간색이고, 이마에는 작은 뿔 두 개가 튀어나와 있으니까요. 완전히 주머니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1센티미터 길이의 근육질인 꼬리가 아자젤의 몸에서 가장 눈에 띄면서도 가장 혐오스러운 부분이거든요.

이 작품의 화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가끔 아주 한정적인 능력을 가진 작은 악마를 불러낼 수 있다고 말하는 조지라는 친구가 하나 있다. 각각의 단편은 그가 조지를 만나 아자젤이 했던 선행, 그러니까 누군가의 작은 소원을 들어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걸로 진행된다. 이상한 것은 분명 조지는 아자젤을 소환해 친구들을 도와 주려고 하는데, 항상 그 결과는 끔찍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대체 무슨 소원을 어떻게 들어줬길래 궁금해질 것이다. 이 작품은 악마가 들어준 18가지의 소원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 집 모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가 어찌나 풍자와 독설,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지 무릎을 탁 치며 감탄을 하게 만들고 만다.

2센티미터짜리 악마, 아자젤은 악마이지만 꽤나 상냥하다. 왜냐하면 원래 자신이 사는 곳에서 좀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자기 힘을 이용해 이곳에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안달 중이기 때문이다. 아자젤은 자기 힘이 반드시 다른 이들을 위해 착한 일을 하는 데에만 쓰여야 한다고 말한다. 천사가 아니라 악마인데 착한 일을 한다니? 설정부터 기발하지 않은가. 조지는 자신의 친구들, 주변인들이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해 아자젤을 주로 불러낸다. 그런데 아자젤은 조지가 주문을 외워 불러낼 때마다, 매번 (거의 예외 없이) 짜증을 내며 삑삑거리는 작은 소리로 투덜대곤 한다. 거의 10만 자키니나 되는 돈을 건 운동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제가 불러내는 바람에 그 결과를 볼 수 없게 되어 살짝 골이 나 있거나, 샤워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불려 나온 거라거나, 뭐 이유는 다양하지만 항상 기분이 무척 안 좋은 것처럼 나타나는 분홍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2센티미터짜리 악마라니. 나는 어쩐지 큭큭 웃음이 터질 것 같이 삑삑거리는 이 조그만 악마가 실제로 보고 싶어졌다.

"조지, 지금 하려는 이야기도 설마 자네가 그 친구를 돕겠다는 생각에 아자젤과 합심하여 엉뚱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그 친구를 비참함과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내용인 건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저와 아자젤은 순수한 친절과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뷔페에 대한 다소 구체적인 사랑 때문에 그 친구가 마음속으로부터 원하는 걸 들어줬을 뿐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해드리지요."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나타난 아자젤에게 조지는 매번 이건 꽤 긴급 상황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러면 아자젤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방법으로 모종의 해결을 해주는데, 이상한 건 분명히 소원의 주인공이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 결국에는 그것이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 대체 어떻게 소원을 들어줬기에? 사실 악마니까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 아니냐고 의심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이놈의 악마라는 놈이 악랄하기는커녕 어딘가 어수룩하고, 잘난 척 큰소리 처 놓고도 뭔가 실수를 하곤 하는 인간미(?)를 폴폴 풍기기 때문이다.

항상 아시모프에게 식사를 얻어먹으면서도 불평이고, 그를 작가로서 비난하고 깍아 내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 조지라는 캐릭터 또한 너무도 매력적이다. 친구의 소원을 대신 빌어주며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경우 떨어질 콩고물을 항상 기대하는데 그의 기대는 한 번도 예상을 벗어나질 못한다. 특히나 그의 매력은 아시모프와의 식사 시간에 더욱 빛을 발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음식을 세 접시나 비우면서 요리가 아주 엉망이라고 불평하는 그에게 그러면 왜 그리 많이 먹는 거냐고 묻자, 조지는 도도하게 이렇게 말한다. " 그럼 절 대접하겠다고 한 사람의 음식을 거절해서 그 사람에게 모욕감을 안겨 주란 말입니까" 라고. 게다가 매번 아자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처음 말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시작을 하며, 아시모프가 이미 아자젤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척이라고 하면, 도대체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없다며 오히려 그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곤 한다. 그렇게 아시모프는 그에게 끊임없이 무시를 당하고, 가끔은 몇 달러 돈도 뜯기지만 그럼에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그가 해주는 아자젤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다. (아시모프는 머리말에서도 그렇게 밝힌 바 있다. '조지가 해준 이야기는 그 정도 가치가 있으며, 조지에게 준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조지에게 돈을 준 건 이야기 속에서이니 더욱 문제가 안 된다'고 말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야 워낙 SF, 과학 소설의 최고봉이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판타지를 써낼 줄이야, 새삼 감탄스럽기 그지 없다. 이 책은 <파운데이션> 시리즈나 <로봇> 시리즈 같은 그의 대표적인 SF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색다른 디저트가 될 것 같고,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드는 애피타이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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