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십 대 후반을 넘어서는 나이에 떠밀리듯이 결혼하고 싶지 않았기에, '결혼을 해야 하는 걸까. 결혼하지 않으면 어떨까. 지금 이 사람과 헤어지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었다. 그래서 수짱처럼 '결혼하지 않는다면, 결국 혼자 늙어가는 건 아닐까' 나도 많이 불안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국 사 년의 오랜 연애를 결혼과 연결시켰고, 이어 아기가 태어나고, 엄마가 되고 나니 마이짱처럼 가끔 생각한다. '혹시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엄마가 되고 나니 그전까지의 내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내가 가지고 있던 꿈들이 희미해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엄마랑 함께 지내고 있는 내 동생은 사와코상처럼 자신마저 결혼해서 떠나버리면 혼자 남겨질 엄마를 걱정한다. 워낙 모녀가 친구처럼 시시콜콜 얘기도 많이 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고, 영화도 보러 다녔기에 결혼해서 행복해질 자신보다, 쓸쓸하게 지내게 될 엄마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짱은 결혼 전 내 모습, 마이짱은 결혼 후 내 모습 같고, 사와코상은 마음 여리고 따뜻한 내 동생의 모습 같다. 어쩌면 아마도 세상의 수많은 30대들이 영화를 보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스다 미리의 힘이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한 선택들은 모두 잘못된 걸까?"

수짱은 34살 싱글, 카페에서 근무 중이다. 연애에 서툴어 함께 근무하던 남자에게 제대로 마음 한번 표현해보지 못하고 그를 유부남 대열로 보내버리고 만다. 결혼하지 않고 이대로 혼자 외롭게 늙는다면, 결국 쓸쓸하게 혼자 죽게 되는 걸까 걱정하는 중이다. 요리하는 걸 즐기고, 카페 업무도 열심히 해서 점장이 되고, 소소한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이지만 삼십 대 중반이 되고 보니 연애가 꼭 필요하다기 보다, 나중에 혼자 늙어갈 노후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엄마도 이제 포기했는지 애인 생겼냐는 얘긴 안하고, 저축은 하고 있는지 돈 얘기부터 꺼낸다. 그녀는 때때로 불안하다. 내가 한 선택들은 모두 잘못된 걸까?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나 잘하고 있는 건가?

"가끔은 생각해.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마이짱은 34살 영업사원으로 유부남과 연애 중이다. 남자보다도 영업실적과 구조조정이 훨씬 걱정되는 워커홀릭인 그녀는 직장 스트레스에 점점 지쳐간다. 거기다 유부남과 연애를 하다 보니 툭하면 그의 딸이나 가정사 때문에 자신은 뒷전으로 밀리기만 한다. 어느 날 병원에서 너무 많은 걸 쥐고 있으려 하지 말고, 한 가지는 놓아 버리라는 의사의 얘기를 듣고는, 과감히 자신의 인생을 바꿔보기로 결심한다. 유부남 애인의 연락처를 지워버리고, 조건을 따져 결혼을 하고, 지긋지긋한 회사를 그만두고, 아기를 가지고. 그런데 그녀는 가끔 생각한다.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퇴직도, 결혼도, 임신도 다 자신이 선택한 거지만, 이걸로 괜찮아. 하다가 결국 이렇게 된 건가. 싶기도 하는 것이다. 엄마가 되고 나면 이제까지의 자신은 없어져 버릴 것 같아서 불안해진 것이다.

"내가 결혼하면 엄마 혼자 할머니 병수발 들겠지?"

사와코상은 39살 싱글,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로 엄마와 함께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남자친구를 만나 연애라는 걸 해본 지도 한참이나 되었는데, 어느 새 마흔 살을 앞두고 있다. 자신이 결혼해서 집을 나가면 남겨진 엄마 혼자 할머니 병수발을 하게 되는 것이 걱정이다. 그러다 우연히 음식을 배달해 주러 온 동창생을 만나게 되고,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설레던 나날도 잠시, 결혼을 서둘러 하고 싶어하는 그는 임신가능 진단서를 받아 올 수 있냐고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나이를 먹고 연애를 한다는 것은 이런 수치심까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까. 연애를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다 보면, 그저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로 나이가 들고, 두 번 다시 그 누구와도 섹스를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늙기에는 자신이 너무 아깝고, 불쌍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연애라는 건 상대방을 존중하는 상태로 지속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수짱과 마이짱, 사와코상은 그렇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30대를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는 친구들이기도 하다. 수짱의 요리 실력을 맛볼 수 있는 도시락과 함께 하는 그들의 나들이에서 현실의 그 어떤 고민도, 우울함도 보여지지 않는 것은 이들이 서로에게 그만큼의 커다란 힘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짱은 자신이 일하는 카페 앞 자그마한 칠판에 오늘의 한 마디를 마치 일기처럼 쓰곤 한다. 맛있는 요리가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고, 가끔은 목욕탕에서 심호흡을 해보기도 하라고 말이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이 중요한 이유는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내일은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이다. 미리 앞서서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현재의 나에게 주어진 행복을 감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짱의 선택, 마이짱의 선택, 사와코상의 선택은 누가 틀리고, 맞다는 식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것이다. 그러니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결혼을 반드시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그 해답은 각자 판단해야 한다.

지금의 나는 수짱이 아니라 마이짱의 상황에 놓여있으므로, 내 입장에서 한마디 하자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것 보다는 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지만, 사실 결혼하지 않아도 다른 종류의 행복을 찾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한 집에서 사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누군가를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한다는 건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십 년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타인과 하나의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매 순간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가끔은 무조건 희생해야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공유해야 하는, 사실은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겨우 유지되는 거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그래서 아직 결혼 전인 내 친구들이 회사가 지옥 같다며 결혼으로 도피하고 싶어할 때는 말리고 싶어진다. 결혼 생활도 종류는 다르지만 회사 업무만큼이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거라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결혼이 아니라 내가 가진 걸 더 많이 나눠주는 것이 결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이 나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멋지게 살겠다고 할 때도 말리고 싶어진다. 혼자여서 좋은 점은 둘이 되면 두 배가 아니라 그 몇 배가 되는 거라고, 이 험난한 세상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면 더 행복한 거라고 말이다. 뭐 이랬다 저랬다 어쩌란 말이냐 싶을 것이다. 그럴 때는 마스다 미리의 책이나 영화를 만나보라. 단순하지만 명쾌한 일상의 진리들이 당신을 따뜻하게 위로해 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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