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속의 사람들
마가렛 로렌스 지음, 차윤진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동요의 노랫말이 끔찍하다고 느끼며, 오래된 잠옷을 보며 투덜거리고, 거울을 보며 살을 좀 뺐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두 살배기 젠을 옆집에 맡기면서 고마운 줄도 모르고 또 투덜투덜,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도시의 사람들 삶을 조롱하고, 버스에 앉아서는 아이들 걱정에, 다이어트 걱정이 이어지고, 버스에 앉아서는 교통체증과 차들의 소음에 인상을 쓴다. 그러다 차에서 내려 어린 남자 애가 다친 교통 사고 현장을 보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던 서른 아홉의 네 아이 엄마 스테이시는 집에 돌아와 자신의 딸 케이시에게서 괜찮냐는 소리를 듣고서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자신이 딸을 얼마나 망치고 있는가 하나 하나 점검해보며, 아들인 이안과 덩컨의 다툼을 말리려다 애들의 어깨를 잡아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야 만다. 흠칫 놀라 멈추지만 '의도치 않게 간혹 어쩌다가 세게 때리는 게 좀 어때서? 그런다고 내가 괴물이야? 애 둘 덕분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애들이 날 돌아버리게 만들기도 하잖아. 하나님, 방금 제 행동을 없었던 일로 되돌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다 자책하기에 이른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 맥과 투닥거리다가 잠이 든 그의 옆에서 '저 인간은 어쩜 저렇게 태연하게 코를 골며 자는지, 한 대 걷어차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불만은 좀처럼 멈출 기색이 없다. 책이 시작하고 나서 40여페이지 동안 진행된 이야기라고는 투덜투덜 매사에 불평, 불만 가득한 스테이시의 속마음이 전부이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스테이시는 정서 불안인 걸까?

통곡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내가 정신 나간 여자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뭐지? 아슈르의 과부같이 울부짖고 싶은데 좀 그러면 안 되나? 내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잖아. 이봐, 스테이시. 나이 값을 좀 하라고. 정확히 그러고 있잖아요, 하나님. , 사실 짐이 너무 무거워요. 바로 이 순간에도, 죽을 만큼 어깨가 무거워요. 제가 감당하기에 너무 너무 너무 버겁다고요. 가방에서 짐이 자꾸만 쏟아져 나와서, 플랫폼에 서 있다가 깜짝 놀라고는 당황해요.

마가렛 로렌스의 책을 처음 읽는 나로서는 읽는 내내 굉장히 당혹스럽고,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인물들이 나오는 대화만큼이나 주인공 스테이시의 속마음, 즉 내면의 목소리가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매사 불만투성이에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자신을 혐오하고 자책하는 것밖에 없어서 마음을 무겁게 했다. 평범한 30대 주부에게 마음의 평화라는 것은,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도 생각보다 가지기 어려운 거라는 걸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엄마와 주부, 그리고 아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란 만만치가 않은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 이런 어렵고 힘든 상황을 지문이나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걸로 묘사하는 반면에, 이 작품에서는 오로지 주인공의 속마음으로 토해내고 있어 감정적으로 공감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출판사의 소개 글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라고 느껴지기 보다는 '만족할 줄 모르고 세상에 불만 많은 냉소주의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나빠 보이는 사람도, 아무리 불행해 보이는 사람도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니까. 하면서 나는 책을 마저 읽어 나갔다.

책을 점점 읽어나가면서 불편했던 마음 대신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 넷을 키우는 일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끊임없이 일어나는 하찮은 일들로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스테이시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로지 남편의 아내,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일 뿐, 자기 자신으로서는 아무 곳도 갈 수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그녀가 안쓰럽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졌기 때문이다.

당신 죽여 버릴 수도 있어, . 지금 이 순간 칼로 심장을 찔러버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지난 밤 일도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지금 내 협상력은 가장 낮은 상태다. 나쁜 놈. 나쁜 놈. 내 아이에게서 손 떼. , 하나님, 저도 알아요, 네 저도 알아요. 맥은 하루 종일 토르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바빴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오늘도 어김없이 이안과 덩컨을 바닥에 내동댕이쳤고요. 그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요. 참을 수가 없는데.

맥과 스테이시는 아이의 양육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아이가 악몽을 꿔서 자다 깨어 울면 달려가서 안아주는 스테이시와 그럴 때마다 아이를 너무 오냐 오냐 키우는 건 애한테 좋지 않다고 화를 내는 맥. 사내 아이들은 강하게, 남자답게 커야 한다고 믿는 남편과 아이가 홀로 악몽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는 아내는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덩컨이 못에 찔려 한쪽 손에 피범벅을 해서 우는데, 안쓰러워 토닥이는 스테이시 옆에서 당장 뚝 그치라며 소리지르는 맥을 보며 그를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도 같이 화가 나고 말았다. 눈물이 고인 눈을 뜨고 아빠의 눈치를 보는 어린 아들을 보며 두 주먹을 꽉 쥐는 스테이시의 마음이 너무도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 살면서 상처도 받을 것이고, 얻어 터지기도 할 것이고, 그게 다 인생이니 더 씩씩하게 아이가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맥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내가 스테이시의 상황이었어도 맥의 말에 반감이 생기고, 아이를 먼저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끈했던 스테이시의 내면의 목소리는 또 이렇게 자책한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맥 아니면 나? 우리 둘 다 틀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덩컨이 무섭지 않게 안아주고 싶은 거다. 그게 뭐 잘못인가? 그런데 맥이 하는 말이 옳다면 어떻게 하지? 덩컨이 엄살을 좀 피우긴 했지, 그건 나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아이를 망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라고. , 이 애처로운 여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스테이시는 맥이 그렇게 강한 척을 했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훨씬 강한 사람이라는 걸 그녀는 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지도 모른다. 덩컨도, 그리고 그녀 자신도 말이다. 스테이시는 이런 저건 사건들을 겪으며 결국 사소한 일들이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사소한 일상들이 집중할 거리가 되어 주기도 하고, 그런 것들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니 말이다. 내일이면 마흔 살이니 미뤄뒀던 다이어트를 해야지, 지금은 아이들 걱정 말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지. 하는 그런 작은 다짐들이 내일을 살 수 있게, 미래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작은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몰래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속으로 욕을 해대던 불량 주부 스테이시는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낸다.

아내이자 어머니, 작가라는 1 3역의 한계를 체감하고 남편과 헤어졌다는 작가의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그 동안 우리가 작품 속에서 만나왔던 여타의 주부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엄마와 아내로서 살아가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유쾌한 친구이자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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