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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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월에 있었던 조지 W. 부시의 국정연설도 보수주의적 프레임 구성의 주목할 만한 예입니다. 이 사례는 국정연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놀라운 은유였습니다. 부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서 부모 동의서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동의를 요청하지 않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을 '부모 동의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이 대목은, 우리가 몇 살 때 마지막으로 부모 동의서를 받아와야 했는지 한번 떠올려볼 필요를 만들어준다. 부모 동의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동의서를 발행해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둘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말이다. 저자는 이것을 현대의 정치 담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던져야 하는 질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에 너무도 관심 없는 나 같은 독자가 읽기에도 매우 흥미진진한 책으로 쉽게 읽히는 것이 장점이지만, 다 읽고 나서는 새로운 프레임이 열린다고 할까. 굳이 10년 만에 개정판이 나온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10주년 기념 개정판인 이 책은 프레임을 사회적, 정치적 쟁점을 어떻게 짜고 어떻게 활성화하고, 어떻게 프레임에 넣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민운동가들을 비롯하여 정치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모든 이들을 위한 실용적인 지침서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이 책은 프레임 구성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간결하고도 쉬운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인지언어학을 창시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 레이코프가 언어학을 현실 정치에 적용한 이 책은 정치인이 만들어 내는 프레임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매우 유용한 가이드를 해준다.

 

, 그럼 직접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프레임'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인지과학자들이 '인지적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라고 한다. 인지적 무의식이란 우리 뇌 안에 있는 구조물로서,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지만 그 결과물을 통해 존재를 알 수 있는 걸 말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으면 우리 머릿 속에 그와 관련된 프레임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목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누군가 말하면, 그걸 들은 사람들은 그로 인해 오히려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그 프레임이 더욱 활성화되고, 그렇게 활성화될수록 그 프레임은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프레임이란 정치판에서 가지는 역할은 매우 크다. 정치 담론에서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하게 되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활성화되고 강해진다고 하니 말이다. 그에 따라 저자는 진보는 보수의 언어가 아닌 진보의 언어를 써서 진보의 신념을 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보수가 사용하는 기본적인 프레임을 파악하고, 이것을 바꿀 다른 프레임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정부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 경우에는 이렇게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정부는 납세자의 돈을 가지고 매우 현명하게 투자해왔다. 장거리 고속도로가 그 한 예다. 당신은 세금 환급 금을 가지고 고속도로를 건설할 수 없다. 그것은 정부가 건설한 것이다. 그리고 납세자가 투자한 돈으로 구축한 인터넷도 있다.”

"국가는 사람"이라는 은유가 등장하는 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라크라는 국가를 사담 후세인이라는 한 사람으로 개념화하며 하루에도 수백 번씩 사용된다는 것을 말하며, 이 폭탄들이 은유가 은폐하는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게 될 거라는 사실 말이다. 미국인들 대부분은 이라크 전쟁이 이라크 민중을 구출하고 주변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으나, 과연 현실이 그런가 말이다. 실제로 전쟁은 이라크 민중의 안전과 복지를 위협하지 않나.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장도 매우 흥미로웠다. 매일같이 보는 뉴스에서 보수와 진보의 다툼을 보아서인지, "상대편의 시각에서 프레임이 구성된 질문에는 절대로 대답하지 마라."는 말이 매우 그럴듯하게 생각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총 16장으로 구성된 개정판에서는 절반이 새로운 자료와 분석으로 업데이트됨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하니, 기존에 이 책을 읽었던 이들도 다시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사회 변화를 이루기 위한 프레임의 재구성, 그러기 위해서는 공적 담론이 변화해야 하며 일정한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의견은 매우 설득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다. 인지언어학이 뭔지, 프레임이 뭘 뜻하는지 전혀 몰라도 상관없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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