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 제56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요코제키 다이 지음, 이수미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할아버지의 책장이 좋았다. 할아버지 책장은 동서고금의 미스터리로 꽉 채워져 있었다. 일본 작가는 물론 외국 작가의 미스터리까지 다양했다.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도 할아버지 책장 덕분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마치 걸신들린 듯 미스터리를 탐독했다. 어쩌면 이야기에 굶주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이즈음부터 의식하게 된 것 같다.

매년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완성하여 에도가와 란포 상에 응모한다. 그렇게 결심한 것은 지금부터 8년 전의 일이다. 생각하면 도움닫기가 참 길었던 것 같다. 그러나 멀리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수상소감 중에서

글쓰기는 정해놓은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 앉아서 정해진 분량을 꾸준히 써야 하는 고단한 일이다. 더구나 그것이 아무런 보답도 주어지지 않는 일이라면, 매일같이 혼자 벽보고 앉아 있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매년 응모하는 공모전에 꾸준히, 몇 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낙방한다면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 곳에 정말 길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무작정 돌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을 하면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그저 낭만적인 취미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혹은 회식이다 약속이다 일정 때문에 꾸준히 글을 써나가기도 어려울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다 이겨내고 결국 작가가 된 이가 있다. 내가 56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이 작품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바로 그런 작가의 이력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작가지망생이었던 그는 공무원이 되었지만 작가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그는 란포상에 도전해보고자 마음먹고 퇴근하고 몇 시간 동안 글을 쓰는 생활을 꾸준히 지속한다. 그렇게 8년 동안 연속해서 작품을 응모해서 최종후보에 4번이나 올랐다 떨어지는 동안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떨어진 작품들이 일곱 편이나 되지만, 그는 그 시간을 이겨내고 결국 목적을 이루어낸다. 8년 동안이나 연속해서 응모를 해서 이루어낸 그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정말 대단하다. 일곱 편이나 낙선되면서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쓴다는 건 외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유명한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태에서도, 꿈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그 용기가 멋지고 대단하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말았다. 설마 사쿠마를 죽인 흉기가 타임캡슐에 넣어둔 권총이었을 줄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역시 그 권총을 묻은 건 너무나 경솔한 행동이었다.

후회해도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이 상황에 초조감만이 가슴을 적실 뿐이었다.

헤어 디자이너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마키코는 아들인 열두 살 마사키가 도둑질을 했다는 전화를 받고 근처 슈퍼마켓으로 달려간다. 마사키는 내년 봄부터 명문 사립중학교에 추천을 받아 입학할 예정인데, 대학까지 자동으로 진학할 수 있는 터라 그녀는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입학이 취소될까 고민이다. 전화로 그녀를 호출한 히데유키는 이 일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고 그녀는 전남편 게스케와 상의해 돈을 마련하지만 그의 요구는 계속 된다. 경찰에 알려지더라도 아직 열두 살이라 직접적인 벌을 받게 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내년에 입학할 학교에 미칠 영향이다. 돈을 더 유구하던 히데유키는 급기야 그녀의 몸까지 요구하게 되고, 돈으로 어떻게든 무마하려던 그녀의 전남편은 약속 장소에서 그가 죽어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경찰에 신고하게 되면 그들이 이 장소에 온 이유에 대해서도 추궁을 받을 것이 뻔해 그들은 그대로 도망치기로 한다.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니면서, 마치 범인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하지만 싱글 맘으로 살면서 아들의 미래를 가장 중요시하는 엄마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가나가와현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이 살인사건을 계기로 초등학교 동창생 4명이 재회하게 된다. 어린 시절, 냉정한 리더 게스케, 철부지 나오토, 개구쟁이 준이치. 그리고 말괄량이 마키코. 왠지 마음이 맞았던 네 친구는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였다. 수업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도 함께 놀았고, 방과 후에는 검도 교실에서, 검도를 쉬는 날이면 숲이나 빈 터에서 함께 놀았었다. 이들 네 명중에 게스케와 마키코는 결혼을 했다 이혼을 한 상태이고, 나오토는 프레쉬 사쿠마의 실질적인 경영자이자 히데유키의 배다른 동생이다. 준이치는 형사로 슈퍼마켓 점장 살인사건의 담당자가 된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권총이 23년 전 순직 경관이 분실한 권총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급 물살을 탄다. 순직한 경관은 다름 아닌 게스케의 아버지로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준이치가 사건의 최초 발견자였고, 그들 4 명이 그 권총을 타임 캡슐에 묻었던 것이다. 타임 캡슐을 묻은 장소는 그들 4명만 알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누가 어떤 이유로 타임캡슐을 열었으며, 살인사건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분명히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현재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 과거의 인물들간에 숨겨진 관계를 파헤치는 스토리에다, 오랜만에 만나는 다소 촌스러운 소재 타임캡슐도 매우 흥미롭게 얽혀있다. 불필요한 수식이 많지 않고, 선정적인 사건이 없어도 물 흐르듯 흘러가는 스토리가 묘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작품이다. 타임캡슐을 둘러싼 23년 전의 사건과 네 명의 동창생.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심과 추측, 그리고 밝혀지는 숨겨진 사실은 잘 어우러져 작가의 탄탄한 습작기를 짐작케 할 정도로 흐트러짐이 없다. 란포상에 8번이나 도전한 끝에 당선된 작품이라는 것이 괜히 과장된 홍보문구가 아님을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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