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머스 - 넥센 히어로즈 장외 명물
테드 스미스 지음, 김현성 옮김 / 매직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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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사랑하는 남편을 둔 덕에 어쩌다 보니 나도 야구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야구를 보기 시작한지 겨우 4년째이지만, 가끔은 10여년 넘게 야구를 보아온 남편보다 내가 더 열광할 정도로 이제는 나도 준 전문가 정도. 각종 경기 기록이며, 구단 별 선수며, 최신 뉴스까지 모르는 게 없고, 시즌 중에는 야구가 없는 월요일이 우울하고, 시즌이 끝나고 나면 3~4개월동안 무슨 낙으로 살까 한탄하기도 한다. 내가 넥센의 팬이 된 것도 남편 때문인데, 처음 그와 야구장을 다니면서 왜 넥센을 응원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에 연고지를 둔 팀의 팬들은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해당 구단을 응원하게 되지만, 서울을 연고로 둔 팀은 두산, LG, 넥센.. 이렇게 세 팀이나 되기 때문에 지역과 상관없이 구단을 선택하게 되니 말이다. 그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다. "맨날 꼴찌를 도맡아서 하는 팀이라서." 항상 성적이 꼴찌라서 응원해주고 싶었다는 거였다. 두산, LG야 워낙 팬 층도 두텁고 인기도 많고, 성적도 어느 정도 나오는 팀이었지만, 넥센은 당시 아직 응원하는 팬들도 많지 않았고, 언제나 성적은 하위권에 머물렀을 때였으니 말이다. 암튼.. 그런 넥센이 재작년, 작년을 거치면서 이제는 당당히 우승 후보에 성적도 상위권에 머무는 강 팀이 되었지만, 그들의 꼴찌 시절을 기억하기에 그런 그들의 노력이 더욱 뿌듯하기만 하다.

지는 팀의 응원은 비극적일 정도로 비장하여 나 같은 영문학도가 반길만한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지는 팀에 감정적으로 이입을 하다 보면, 팀이 잘 할 때는 더 기쁘고 못 할 때는 내 감정의 곡선도 더 바닥을 친다. 그 절망감을 더 절실히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우승은 금보다도 더 귀해진다. 가뭄 중의 단비이자 기근 중의 식량인 셈이다. 긴 연패에 빠질 때는 전쟁 포로의 멘탈을 갖게 된다. 겉으로는 단호하고 의연하면서도, 속으로는 다시 자유의 빛을 볼 수 있을지 의심하는 상태 말이다. 한 번만 더 패하면 집어치울 거라고 협박함과 동시에, 영혼을 바쳐서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이기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게 된다.

 

 

, 그런 넥센의 팬이라면, 혹은 목동 야구장에 가본 이들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등판에테드찡이라는 한글 이름 석 자를 선명히 새기고, 응원단 석을 누비며 열렬히 응원하는 외국인이다. 워낙 티비에도 자주 비춰줬고, 인터뷰도 많이 했던 터라 '넥통령' 이라는 명칭처럼 유명해진 넥센의 팬이다. 그는 목동 홈 구장에서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대구 등 지방에 이어 해외에서 치뤄질 때는 그곳에서까지 빠지지 않고 눈에 띈다. 처음에는 대체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길래 저리 모든 경기를 관람할까 신기했을 정도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응원을 한다. 게다가 넥센 응원단장이 없을 때는 직접 단상에 올라 응원을 유도하기도 한다. 마치 구단에 정식 소속된 직원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어쩔 때는 저렇게 열심히 응원해주는데 구단에서 시즌 권을 주거나 월급이라도 줘야 되지 않나 싶을 만큼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걸 자비로, 순수한 애정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열정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모하리만큼 달려드는 것만큼 순수한 사랑은 만나기 어려우니 말이다.

잘나갔던 역사를 가진 별 볼 일 없는 팀에서 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나도 확실히 안다. 홈경기인데 관중석에 홈 팬 보다 원정 팬이 더 많은 광경을 벤치에서 올려다보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안단 말이다. 동시에 단 몇 명의 목소리 큰 팬들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우리 팀 자리에서 정말 한 명이라도 큰 소리로 응원을 해 주고, 깃발을 흔들고, 농담을 하고, 심판에게 야유를 하고, 우리가 점수를 낼 때 마다 일어서 주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오늘 딱 하루만이라도 그런 존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캐나다인인 테드 스미스는 왜 하필 한국의 야구, 그것도 많은 팀 중에서 넥센을 응원하게 된 걸까.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던 그가 한국어 수업을 듣다 재미를 붙였고, 대학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와서 여의도의 고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날 맥주 한 캔을 들고 찾아간 목동 야구장, 단지 여의도에서 목동이 가까웠기 때문에 가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처음부터 애틋한 마음이 들었었다고. 왜냐하면 볼 때마다 항상 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9회 말까지 죽을힘을 다해 뛰는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특히 조용히 관람하는 북미의 관람문화와는 달리 경기 내내 수들의 응원가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한국의 응원 문화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응원 경비를 마련하려 아끼던 외제차도 팔고, 집도 좀 더 작은 평수로 옮기고, 급기야 회사까지 그만두며  거의 모든 시간을 응원하는 팀의 경기에 투자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과해 보일 수도 있을 거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가치관은 다른 법이니까. 중요한 것은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한번쯤은 올인 해봐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직장까지 그만 둘때 주변에서는 그에게 어리석은 결정이 될 거라며 걱정했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입장권은 물론 교통비와 숙박비며 각종 응원관련 의상까지 모두 자비로 충당하느라 경제적으로는 부족할지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풍족한 그의 선택이 멋지게 보인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야구에 대한 애정과 그의 히스토리가 온전히 담겨져 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면 이 남자처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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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5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화 이글스에는 수염 난 루크씨가 유명해요. 저는 삼성팬인데 넥센의 테드찡과 한화의 루크씨를 보면 부러워요. 저렇게 야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열심히 응원하는 외국인이 있어야 사람들도 같이 응원에 동참할 수 있으니까요. ^^

피오나 2015-02-05 16:59   좋아요 0 | URL
맞아요ㅎ 루크씨도 방송에 자주 보이시더라구요ㅋ 삼성팬이시면 코시때마다 행복하시겠어요. 부럽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