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 - 평범한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50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에덤 고프닉.조지 도스 그린.캐서린 번스 엮음, 박종근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바야흐로 스토리텔링의 시대이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과 같이 대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거나 글쓰기를 통해 구축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콘서트 등의 더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스토리텔링'이란 '이야기하기, 만들기, 사건 서술하기 등의 뜻이다. 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어 풀어내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까지 달라질 수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소위 악마의 편집으로 불리는 그것 조차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면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만한 것을 한 편의 감동적인 '스토리'로 만들어내어 화제가 되곤 하니 말이다. 이렇게 일상 곳곳에서 사용되는 스토리텔링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콘서트의 형식으로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이야기와 음악, 연극 등을 함께 어우러지게 꾸며서 일종의 콘서트를 여는가 하면, <모스>처럼 세계 최대 스토리텔링 콘서트를 통해서 평범한 인물들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뉴욕에서 가장 강렬하고 신선한 문학을 만날 수 있는 티켓"이라고 호평했던 <모스>는 스토리텔링의 예술성과 기법을 탐구하는 비영리단체로 소설가 조지 그린에 의해 생겨났다. 뉴욕에 있는 그의 집 거실에서 열린 최초의 모스 공연은 지인들과 매혹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추억을 되살려 시작되었는데, 도시 전역으로 확대된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대본 없이 즉석에서 공연을 펼치는 형식으로, 현재까지 3천 편 이상의 이야기들이 관객들에게 들려졌다. 그렇게 이 책에 실린 50편의 이야기들은 평범한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고백을 들려주기도 한다.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더 가짜 같은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모스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고백(Confessional) 이라는 마술을 사용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 시대의 교회와 성당은 들어주는 의무를 이미 오래 전에 저버렸지만, 사람은 남들에게 자신의 사연과 심정을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모스는 바로 그런 욕구를 채워준다. 모스에서 듣는 최고의 이야기들은 자기 고백이나 사과와 같은 진솔한 이야기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데이미언 에컬스는 겨우 열여덟 살 때 하루아침에 인생이 산산조각 나고 만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고, 아이언 메이든같은 록음악에 빠져 있던 평범한 소년이 어느 순간 사형수 감방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는 교도관들에 의해 18일 동안이나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간수들에 의해 굶고, 고문을 당했다. 그것이 수감자들에 의해 알려져 신부님이 교도소장에게 말해 겨우 일반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별다른 증거도 없이, 그저 집 주변의 정신지체아가 경찰의 강요에 의해 증언한 것을 바탕으로 감옥에 갇혔던 그는 몇 번이나 항소를 요청했고, 그렇게 그의 사건이 대중과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감옥에서 나오게 되지만, 그러기까지 무려 18년이라는 시간이 감옥에서 흘러갔다. 지금도 그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넘어지지 않기 위해 늘 마음을 다잡고, 살아간다. 감옥에서 보낸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싸우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몇 권의 책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매튜 맥고프는 뉴욕 양키스의 열렬한 팬으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매년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가면서 야구를 즐겼던 그는 어느 날 외야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다 한 소년이 1루 쪽에서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우익수와 공을 주고받는 모습을 발견한다. 캐치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배트보이를 보며 그는 내가 운동신경이 특출 나진 않지만 쟤보다는 잘하겠다. 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구단의 문을 두드려 배트보이 면접을 보게 되고, 그 어떤 연줄도 없이 배트보이 일을 맡은 최초의 소년이 된다. 그가 뉴욕 양키스의 선수를 만나고 배트조정기(?)를 진지하게 찾아 다니는 에피소드는 우스꽝스럽지만 뭉클하다. 소년의 순수한 열정이 허황되어 보이는 꿈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집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배트보이:뉴욕 양키스 시대의 도래>라는 책을 썼고, 이후 다른 책들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모든 에세이는 한 편의 이야기이고 모든 이야기는 한 가지 모토를 가진다. 위대한 이야기꾼 프랭크 오코너가 이 부분을 제대로 표현했다. 그는 훌륭한 이야기는 전부 이런 문장으로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로 다시는 똑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 (그는 이 문장을 실제로 딱 한 번 사용했다.) 이것이 이야기의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이라면 이 책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그 기준에 부합한다. 저 문장을 마지막에 덧붙였을 때 어색한 이야기가 이 책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트리스탄 짐머슨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살던 집은 불량주택이어서 불편했고, 낮에는 만화방에서 최저 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밤엔 학교에 다녔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주일간의 봄방학을 기다리는 게 유일한 버팀목이었고, 그것을 위해 6개월 동안 최저 시급으로 번 돈을 모았다. 기말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도미노피자를 시켜먹고 밤새도록 게임을 한 뒤, 집을 꾸리고 은행으로 향했다. 마지막 월급을 계좌에 넣기만 하면 집으로 돌아가 푹 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통장에는 마이너스 536달러가 적혀있었고, 입출금 내역을 확인해보니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돈을 인출하고 사용한 것을 알게 된다. 오로지 여섯 달 내내 기다렸던 것을 위해 힘들게 모았던 돈을 말이다. 은행이나 경찰이나 손 놓고 있을 것이 뻔하니 도둑은 잡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직접 범인을 찾기로 결심하고는 수사에 나선다. 마치 탐정이나 경찰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는 결국 범인을 잡고 돈을 되찾는다. 그는 그 일주일 동안 허약하고 침울한 미대생이 아니라 진정한 사립 탐정이었다. 이렇게 살면서 가장 비현실적인 일이 나를 강타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극복해내면 멋진 추억으로 바뀌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폴 너스, 베스트셀러 저자 말콤 글래드웰, 클린턴 대통령의 대변인 조 록하트, 전설적인 래퍼 DMC, 포커 챔피언 애니 듀크 등 유명인들의 경험담도 기상천외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라는 놀라움부터 나라도 그랬을 거다.는 공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97년 처음 시작한 모스의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에 목말라 있는 분들이라면,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당신도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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