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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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소수의견'이 완성되고도 2년 가까이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용산참사 6주기를 맞이하는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도심 재개발지구의 망루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사건을 두고, 이를 은폐하려는 국가권력과 진실을 밝히려는 변호인단의 공방을 다루었던 '소수의견'의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던 지라 이번 신작에선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내심 궁금했었다.

내가 맡은 학생은 5학년인 남자아이였다. 두 자릿수 곱셈. 아이 엠 어 보이. 그런 것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궁금한 거 있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면 뭐가 좋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일하러 올 수 있어서 좋지."

나는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버스만 타면 언제든지 일하러 올 수 있잖아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실제 손아람 작가 또한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고, 극중 주인공 태의 역시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다닌다. 그는 자신이 입학하고 졸업한 학교, 서울대학교에 대해 당당하게 언급한다. "으스댈 뜻은 없다. 굳이 그 이름을 피하고 싶지 않을 뿐. 이 이야기의 아름다운 면과 지저분한 면을 모두 이해시키려면 반드시 그 괴물 같은 고유명사와 맞닥뜨려야만 한다." 라고. "겸허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어야 하지, 단어를 선택하며 발휘하는 게 아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주인공 태의, 그리고 그가 만난 대석 형, 미쥬, 진우, 담당 교수들과 노동자, 경찰... 들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대우자동차의 부당 정리해고, 한일월드컵, 미선이 효순이 사건, 용산참사, 촛불 시위 , 한미 FTA 협상 타결,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의 시절을 통과하면서 대한민국의 과도기이자 그들 청춘의 과도기를 겪어 나간다.

제목인 디 마이너스는 낙제인 F를 간신히 면한 학점 D-를 뜻한다. 이 작품에 실린 154편의 이야기들은 용산 참사를 비롯해서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10년의 시간을 들려준다. 극중 에피소드 중에 공대학생회장 당선자인 윤구는 학생운동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느라 수업에 거의 들어갈 수가 없었고, 대부분의 과목에 F를 받는다. 다른 교수들은 그의 성적을 D-로 올려주어 낙제에서 복권시킴으로써 정치적 신념을 위해 희생된 제자의 학업 혹은 젊은 날의 추억에 최소한의 존중과 경의를 표시한다. 그런데 단 한 명 재료공학부의 구민용 교수는 수업에 들어온 적도 없는 학생에게 D-를 줄 수 없다며 F를 준다. 여러 번 교수의 방에 찾아가 정중하지만 간곡하게 하소연했지만,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구민용 교수는 그래야 자신의 교수 생활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며 학생의 사정 보다 자신의 경력과 신념을 완성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한다. 결국 문제는 D-를 받느냐, F를 받느냐. 혹은 합격이냐, 낙제냐의 기로인데, 이것은 사실상 지금의 우리들이 처해있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항상 그렇지 않던가, 이것을 포기해야 저것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갖느냐, 모두 잃느냐로 한번쯤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는 것을.

주인공 태의는 이야기의 시작에서 진우에게 받은 청첩장에 대해서 떠올린다. 보고 싶다. 진심으로. 꼭 와줘. 라고 손 글씨로 쓰인 그 청첩장을 현관 앞 협탁 위에 잘 보이게 두고 매일 집을 나서거나 돌아올 때마다 그는 망설인다. 가야 할까? 갈 수 있을 까? 그러다 결혼식 날짜가 훌쩍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렇게 미루다 내심 지나가 버리기를 바랬던 걸 수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위로 삐뚤빼뚤 책들이 쌓이고, 그 책들을 묶어 이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더 큰 집으로 또 이사를 하며 짐이 불어나고. 그렇게 모든 삶에는 이자가 붙는다. 보잘것없는 삶에도 보잘것없는 이자가. 태의는 그렇게 진우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고, 자신의 결혼식에 진우를 초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밤 진우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태의가 진우를 만나는 것은 잃어버린 한 시절에 대한 사죄이자 죄책감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절을 잃어버리면서 어른이 되곤 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이타적이기는 쉬운 걸까? 가까운 사람에게 이기적으로 상처를 입히기 쉬운 만큼.

나는 얼굴도 모르는 노동자들을 위해 싸웠고, 내 친구를 팔아먹는 배신을 저질렀다. 어쩌면 양심이란 스스로 초월적이며 초계급적인 존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고고하게 내려보며 탓하는 말들. ''를 세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면 그런 문장은 입에서 나오는 즉시 논리적 모순을 범한 것이니까. 나는 내가 저지른 짓을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논리적으로 변호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깨우쳤다.

인간은 논리적일 수 있을 때만 논리적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우선 책을 읽기도 전부터 의아했던 것은 이 작품의 형식이다. 분명히 '장편소설'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뒷면에 소개된 글에는 154편의 이야기들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띠지에 적힌 작가의 말에는 '느슨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 의해 쓰였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결코 소설이 아니다'라고 써 있다. 단편이라 하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고, 장편이라 하기에는 각 소제목의 호흡이 짧고 내용이 그저 생각의 편린이나 단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의 전작으로 인한 기대감이 있었기에 그냥 이야기를 읽어나갔고, 중반부쯤 이르러서야 이 책이 왜 여러 명의 이야기이자, 하나의 장편 소설이 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내가 작가와 비슷한 학번으로 대학을 다녔던 나이라 그런지 그가 그려내던 인물들의 대학시절, 청춘의 시간들이 매우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작가가 그리고 있는 시간은 90년대 초반부터이기에 내가 겪지 못한 시대도 많았지만, 직접적으로 겪지 못한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들이 풀어내는 에피소드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의 한 시절이므로 그리 낯설지도 않았고 말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책의 마지막에 '잃어버린 10'에 대한 연표가 정리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무심코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한번씩 되 집어 보면서 기억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는 일종의 순례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작가가 왜 인물들의 지난 시간에 디 마이너스라는 성적을 매겨두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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