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욱의 좋은 사람 행복한 요리 - 특별한 모임을 위한 메뉴 플래닝
우정욱 지음 / 비앤씨월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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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고, 그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 속으로 초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우리는 집에 온 사람들에게 항상 무언가를 대접한다. 커피든, 과일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말이다. 신혼 초에 집들이를 하면서 가족들을 모두 초대했는데, 그때 내가 혼자 차려낸 음식이 14가지였다. 두부전골을 끓이고, 탕수육을 튀기고, 갈비찜을 하며 잡채를 만들었다. 오징어순대를 만들어 쪄내고, 야채를 넣어 무쌈 말이를 하고, 새우를 삶고, 샐러드드레싱을 직접 만들었다. 몸이 좋지 않은 시기였던 데다 일주일 전에 갑자기 생긴 집들이 일정이라 나름 부담도 많이 됐었는데, 도마 위에 채소들을 늘어놓고 일류 요리사라도 된 것처럼 칼질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부엌이 난장판이 되는 동안 나는 나는 신나게 자르고 채치고 다졌다. 동생이며 엄마가 도와주겠다고 걱정스레 말했으나, 나는 기어코 그 요리를 혼자서 차렸었는데, 이유는 우리 집에 초대하는 나의 손님이니 내가 대접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이 많은 요리를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느라 일주일 전부터 계획 세우고, 장보고, 3일 전부터 재료 준비하고, 집들이 당일 날 손님들이 오기 직전까지 땀 뻘뻘 흘리며 요리를 해야 했던 탓에 정신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뿌듯하고, 행복했다. 물론 덕분에 나는 가족들에게 졸지에 음식을 너무 잘하는 사람이 되어 버려서 집안에 무슨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불려 다녀야 했지만 말이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기분 좋아할 사람을 떠올리며 요리를 하는 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물론 맛이 조금 없거나, 간이 잘 맞지 않더라도 정성을 생각해서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이 제일 행복한 것 같다. 새해에는 1월부터 집안 행사며 모임이 있어 집에서 요리를 해서 사람들을 대접해야 할 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제일 중요한 건 메뉴 선정과 플레이팅인데, 그래서 일상식이 아닌 초대음식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우정욱의 좋은 사람, 행복한 요리>라는 책을 만났고, 나는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은 일반적인 레시피 북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특별한 날 손님맞이 상차림이다. 특히 손님맞이 상차림의 최대 고민인 메뉴 플래닝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서 목적과 비용을 고려한 메뉴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알려주는 손님맞이 상차림 팁은 이런 식이다. 손님을 초대할 때는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샐러드는 기본, 고기 요리와 해물 요리가 적절하게 섞이도록 하고,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일품과 밥, 그리고 후식은 별도로 준비한다. 조리할 때는 접시보다 트레이를 많이 사용하고, 조리할 때 토치를 사용하면 음식의 모양을 살리면서 구운 효과와 불 맛도 살릴 수 있다. 샐러드나 냉채를 상에 올릴 때에는 미니 소스 피처를 사용하면 좋고, 큰 접시에 과일을 깎아 올리고 나눠 먹을 수 있게 하는 것보다 개인 접시에 담아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나눠주는 정성이 더 따뜻하다. 등등. 깨알 같은 팁들이 아기자기하게 실려 있다.

 

상황에 맞는 상차림 팁도 있는데, 부모님 생신, 결혼기념일, 외국 손님 초대, 설날 아침상, 포트럭 파티, 와인 테이블 등 특별한 날을 맞이할 때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멋진 상차림이 가슴을 설레게 만들어준다. 소개되어 있는 요리 레시피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으면서도 평범하지 않아, 요리 솜씨를 뽐내고 싶을 때는 제격일 것 같다. 요리를 할 때는 무엇보다 행복해야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기분이 나쁜 날 하는 요리는 이상하게 맛이 없게 마련인데, 아마도 기분이 그대로 재료에 전달이 되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상차림들은 사진만 보아도 요리를 하는 이가 행복한 마음이라는 것이 그대로 전해져서 참 좋았다.

요리는 우리를 잠시나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곤 한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 거리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 또 오늘 같이 반복될 거라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지루한가. 거기다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된다면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가 없다. 깨끗한 재료들과 정확한 레시피, 그리고 발과 프라이팬과 양념들로 정직한 노동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도 참 좋다.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요리들은 내 시린 마음마저 만져주곤 하니 말이다.

 

아이가 생기고 육아에 나의 스물 네 시간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나날이 지속되니,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사랑스런 아이를 보는 것은 좋으나, 책을 제대로 읽을 시간도, 충분히 내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이 그저 아이만 쫓아다니다가 하루가 다 가버리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스트레스는 쌓여갔지만 그걸 풀 데가 없었던 나에게 유일한 위로는 TV요리쇼였다. 요즘은 스타 쉐프들이 많아서인지 공중파, 케이블 할 것 없이 요리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고, 전문 쉐프들이나 할 법한 레시피를 쉽게 집에서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요리 쇼를 보다 보면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을 먹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고, 하루 동안 나를 스트레스 받게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내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생긴다고 할까. 세상에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겠냐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문제도 더 이상 껴안고 있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어찌 됐든 요리는 즐거운 것이라는 걸 잊지 말자. 특히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한 요리는 더욱 행복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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