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출근했던 아버지가 회사에서 갑자기 중앙정보요원에 의해 끌려간다. 그리고 갑자기 들이닥친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하더니, 새로 산 라디오를 집어 들고 남편이 북한 방송을 듣기 위한 것이라고 법정에 간첩 증거로 제출된다. 아마도 책이 있었다면 그것이 증거로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들에겐 뭐든 상관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우리의 아버지, 아들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끌려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인혁당 사건'이라고 알고 있는 그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자들로 잡아들여 무고한 이들에게 형을 집행한 사건으로 이른바 '사법살인'으로 기억된다. 1960년대 당시에 사형되었던 이들은 2007년 재심에서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 받는다. 무려 사십여 년이 지나서야, 이미 죽고 사라진 다음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권여선 작가는 이러한 국가적 폭력 자체보다는 그것이 개인에게 미치는 상처에 주목한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사건 자체의 실체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려지고 정리되었으니 굳이 소설에서 다룰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없던 죄를 만들었던 그들이 그걸 다시 무죄판결 한다고 해서 긴 세월 동안의 상처와 고통도 없었던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여기서, 바로 이런 소설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통성명을 하고 서로가 일곱 살 동갑내기임을 확인했다. 원은 얼마 전에 언니가 보는 만화책을 몰래 훔쳐보고 '스파이'라는 말을 새로 배웠던 터라 그 말이 써먹고 싶어 좀이 쑤셨다.

"그럼 이제 우리 목숨을 바치는 스파이가 되기로 하자."

"스파이?"

..."스파이는 비밀을 알아내는 간첩이야."

토우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뜻이다. 고대의 토우는 장난감이나 주술적인 우상, 혹은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용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토우의 집이라는 것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산다는, 캄캄한 무덤을 뜻한다. 대체 얼마나 커다란 상처와 상실을 겪어야 사람이 흙으로 만든 인형처럼 느껴지는 걸까. 제목에서부터 아릿한 슬픔이 묻어난다. 이야기의 배경은 삼악산 남쪽의 삼벌레 고개이다. 가운데 바위, 양쪽 바위들의 돌출된 모습이 다족류 벌레가 머리를 꼿꼿이 치켜들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삼악동이라는 이름을 놔두고 그렇게 불리었다고 한다. 경사를 끼고 형성된 동네라 삼벌레 고개에서도 재산의 등급이 등고선의 높이에 반비례했다. 아랫동네에는 크고 버젓한 주택들이 있어 대부분 자기 소유의 집에 살았고, 중턱부터는 제집 사는 사람, 전세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윗동네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 전세나 월세도 못 내 일세를 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삼벌레 고개 중턱의 우물 집이라 불리는 김순분의 집에 새 식구가 이사를 온다. 새댁 네 식구는 모두 넷으로 새댁과 남편, 큰딸 영과 작은딸 원이었다. 원은 동갑내기인 주인집 둘째 아들 은철과 친구가 된다.

그렇게 은철과 원은 스파이 놀이를 시작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얘기를 엿들어서 비밀을 알아내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려내기로 한다. 아이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 우물 집 식구들의 이야기,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는 천진난만, 때로는 유머스럽게 보여진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비밀은 때로 모르는 게 약이지만, 그들은 뭐니 뭐니 해도 목숨을 바치는 스파이였으므로' 무슨 일이든 악착같이 알아내고자 했다. 난쟁이식모, 순분네, 통잡 박가, 보험여자, 똥순이 할매, 원의 아버지 안덕규까지.. 두 아이가 관찰하는 모습 그대로 비춰진다.

순분은 두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치면서 원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했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다고 했지.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순분은 그게 마치 사내들에 대한 형용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원의 가족은 가을 단풍 산행을 하기 위해 김밥을 준비하다가 정보부 요원들의 방문을 받는다. 원은 그들을 따라간 아버지를 그 뒤로 볼 수 없었다. 결국 온몸에 푸른 멍이 든 채 죽어서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자주 찾아오던 무리 중에 두 명은 사형을 당하고, 셋은 감옥에 갇혔다. 이제 그들의 집에선 남겨진 이들이 살아 있어도 마치 무덤 같은 침묵이 흐른다. 남자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불안이 마을을 감싸도, 아이들은 커가고 남겨진 이들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삶의 잔인한 진실이다. 어린 소년, 소녀의 장난처럼 담백하고 유쾌하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은철의 사고 이후 어둑하고 무겁게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 탓이 아닌지 죄책감에 시달린다. 사실 그 죄책감은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아닌데 말이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을 생기를 잃은 토우로 만든 것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에 누군가 흥얼거리는 노래는 먹먹한 슬픔을 아릿하게 남겨준다.

오래 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그래 봤자 토우의 집은 캄캄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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