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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평점 :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매일 같이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그 순간에 그곳에 있던 나의 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녀가 그 비행기에 타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전화해서 재촉만 하지 않았더라면.. 한시도 잊을 수가 없는 그 생각과 감정들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이들은 부재의 무게를 이겨내고 살아가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그 순간에 세상이 끝난 것만 같겠지만, 시간은 여전히 째깍째깍 흘러가고 우리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으니 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조회시간, 지각한 기형이의 너스레에 반 친구들 모두 웃고 있을 때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한 통 받는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 "집에 가봐라.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단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빠와 단둘이 살아왔던 태산이는 이제 앞길이 막막하다. 내리막길에 세워둔 트럭의 안전브레이크가 풀려 하필 그곳을 지나가던 아빠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렇다 할 친척도 없고, 다른 형제도 없었던 태산이었기에 아빠가 운영하던 장사 쌀집과 같이 문을 연 떡집 아저씨와 단짝 친구인 기형이밖에 없었다. 아빠가 없는 동네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고, 혼자서는 살 수 없을 거라는 상실감과 공포에 시달리던 어느 날, 우연히 상자 속에서 사진 한 장과 아빠의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해리 미용실이 찍힌 사진과 "태산아. 꼭 여기를 찾아가라."라는 아빠의 남겨진 유언 같은 메세지. 태산은 해리 미용실을 찾아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죽은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죽었다고 인정할 수 없는 마음,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 그래서 십육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간 속에서 여전히 살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알 거 같아요. 하지만 그걸 움켜잡고 있지 않아도 우리에겐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갈 거예요.”
처음에는 청소년 소설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출생의 비밀, 숨겨진 가족사인가 보다 싶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그런 플롯이 등장해서 실망했지만, 다행인 건 자극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담백하고 순수하게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청소년 소설이지만, 충분히 어른스럽고 성숙해지는 느낌이랄까. 아버지가 남긴 유언 속의 해리 미용실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재미는 뜻밖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남겨진 삶에 대한 슬픔으로 이어진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태산과 과거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해리 미용실 주인 남자의 관계는 우연히 참석한 ‘손으로 말해요’ 동아리 엠티에서 만난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실마리를 풀게 된다. 아무래도 청소년 소설이다 보니 단순한 구조와 우연으로 인한 사건 해결로 인해 다소 긴장감은 떨어졌지만, 대신 아빠대신 태산을 보살펴주는 떡집 아저씨, 아줌마와 갑자기 나타난 오촌 아저씨, 그리고 태산을 아들처럼 걱정하는 담임선생님과 엉뚱하지만 속깊은 친구 기형이 같은 유쾌하고, 훈훈한 캐릭터들이 작품 전체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도 9.11 여객기 테러로 아빠를 잃은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어느 날 꽃병 속에서 발견하게 된 봉투 속의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아 6개월에 걸쳐서 뉴욕을 헤매 다닌다. 소년은 봉투 뒤에 적힌 블랙이라는 글자 하나에 의지에 뉴욕에 거주하는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을 다 찾아가서 자신의 아빠를 아느냐고 묻는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기 위해, 더 이상 상상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의 태산이도 마찬가지로 아빠를 잃고 사진 하나에 의지에 부산에 있는 해리 미용실을 찾아가 자신의 아빠를 아느냐고 묻는데, 문득 오스카가 떠올랐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 승무원이었던 친구의 항공기 사고도 역시 9.11 여객기 테러를 자연스레 연상시켰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레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들이 거기서 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남겨진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혼자 추측하고, 상상하고, 지레짐작으로 자책하며 살아남은 자신을 탓하고, 슬픔에 잠기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남겨진 이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이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소박한 위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