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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레터스
헌터 데이비스 지음, 김경주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모리스 블랑쇼는 소통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글로 쓰는 말들은 고유의 목소리와 영혼, 공간, 대기를 갖는다. 말은 말 자체로 존재함과 동시에 그 의미가 가리키는 장소로 독자를 운반해 가는 힘을 지녀야 한다."
비틀즈와 존 레논이라는 엄청난 스타에 대해서는 이미 숱한 평전들이 출간되었었지만, 이번 작품집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단순한 평전이 아니라 존 레논이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엽서와 편지들을 긴 세월에 걸쳐 찾아 모으고 복원해서, 비즐트 공식 전기 작가인 저자의 해석을 곁들여 엮어 낸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존 레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팬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존 레논은 기쁘거나 짜증나거나 증오심이 치밀거나, 유쾌하거나 화가 나는 그 모든 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음악뿐만 아니라 글로도 남겼다고 한다. 그는 영감이 떠오르거나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자연스럽게 펜과 종이를 꺼내 들었다고 한다. 가족, 친구, 팬, 신문사 등에 타자기로 편지와 엽서를 써서 보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위트와 설득력, 지혜로움 뿐만 아니라 분노와 고뇌까지 엿볼 수 있다. 그가 작사한 노랫말과 시집 두 권은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가 남긴 편지들을 출판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라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소설가 E.M.포스터는 편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편지는 좋은 편지로 분류되기 전 두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쓰는 사람의 인간성을 드러내야 하고, 그 다음으로 받는 사람의 인간성을 드러내야 한다."
저자는 존의 친척과 친구, 팬들과 애인, 심지어 세탁소 앞으로 쓴 편지와 엽서까지 무려 300여 점을 추적해서 그것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편지의 사연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편지들이 쓰일 당시에 존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누구에게 썼고 어떤 내용과 맬락의 편지인지를 상세하고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그 편지를 통해서 존의 삶과, 당시 그가 가졌던 고민과 두려움, 열정 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천재적인 뮤지션이 아니라 인간 존 레논의 맨 얼굴을 만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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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니, 얼마 전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씨가 자꾸 생각이 났다. 의료사고일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문제로 아직 시끌시끌하지만, 너무도 젊은 나이에 맞이하게 된 죽음이라 가족들도, 팬들도 쉽게 그를 놓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히나 음악인의 죽음은 그가 떠나도 우리 곁에 그 음악이 항상 있기 때문에 더욱 애잔하고, 그 슬픔이 오래 가는 거 아닐까. 비단 그 뿐만 아니라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존 레논을 비롯해서 여러 유명인들이 젊은 나이에 불꽃처럼 생을 피우다 갔다. 꽉 차지 못한 이른 죽음은 어딘지 황망한 기분을 주변인들에게 떠 남기고 만다. 물론 저 곳으로 가야 하는 그의 발걸음도 그들을 보며 쉽사리 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존 레논 레터스>가 너무도 알차게, 소중한 정보들을 모아 만든 책이라 그런지 신해철씨를 비롯해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이런 책이 또 출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남긴 글들과 생의 자취들을 따라가며, 남겨진 이들이 그를 더욱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