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취록 - 조선 최고의 예언서를 둘러싼 미스터리
조완선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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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올해 내 운수가 어떨지 토정비결을 보곤 한다. 몇 년 전부터는 타로 점까지 가세해서 카페에서 쉽게 운을 점쳐 볼 수 있는 시대이니, 다들 재미로라도 한 번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자신의 미래를 정확히 맞췄던 적이 있을까. 그 누구도 인간의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다. 그저 심리적인 위안을 위해서, 단순한 오락거리로 재미 삼아 보는 거지만, 그래도 내심 마음 한 켠에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불안한 내일이 궁금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게 대체 어떤 책이길래 사사건건 끼어드는 거요? 이게 정말 팔자를 고칠 정도로 값이 나가는 책입니까?”

안기룡의 아내도 그런 소리를 했다. 이 책 한 권이면 팔자를 고칠 것이라고.

“하여튼 귀신이 붙은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소.”

“귀신이 붙은 책이라뇨?”

“이 책과 엮인 자들은 죄다 저 세상으로 갔으니 말이오. 그러니 귀신 들린 책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섬뜩한 소리였다. 명준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성행하였던, 국가운명에 관한 예언서로 '정감록'이라는 것이 있었다. 비록 허무맹랑한 도참설·풍수설에서 비롯된 예언이라 하지만, 당시 오랜 왕정에 시달리며 조정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있던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광해군·인조 이후의 모든 혁명운동에는 거의 빠짐없이 정감록의 예언이 거론되었다고 하니,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취록>은 바로 이 '정감록'에서 모티브로 삼아 시작된 작품으로 19세기의 예언이 21세기의 현실로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조완선 작가의 전작인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 <천년을 훔치다>를 떠올려보자면, 비록 '비취록'이 허구의 예언서이지만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질지 짐작이 될 것이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추리소설의 플롯을 가지고 치밀한 역사 고증을 통해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어 매우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펼쳐지고 있다.

이야기는 고서 감정 전문가이자 역사학자 강명준 교수에게 누군가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고서점을 운영하는 최용만으로 '비취록'이라는 예언서를 들고 나타나 다짜고짜 진품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하는데, 한눈에도 심상치 않은 책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일부 복사본 샘플만 던져주고 사라진 뒤 연락이 없다. 그리고 며칠 뒤 수상한 전화가 걸려와 강교수를 협박하고, 이어 강력계 형사가 찾아와 최용만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그리고 계룡사에 은둔한 사찰 쌍백사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해광스님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유정스님이 도착한다. 쌍백사라는 곳은 여러모로 일반 사찰과는 달랐는데, 해광이 남긴 수첩 속의 문구들은 그런 의심을 더욱 기폭 시켰다. 이렇게 두 가지 이야기가 병행되면서 진행이 되는데, 결국 쌍백사라는 교집합에 의해 이야기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최용만이 죽고, 그를 살해했을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 안기룡마저 살해당하고, 그들 두 사람이 쌍백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 형사가 사찰에 방문하지만 또 다른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 고서에 적힌 대로라면...... 그러니까.....조만간 우리나라에......아주 심각한 일이.....벌어질 것 같단 말이지. 흠흠, 내가.... 예언 글귀를 좀..... 풀 줄 아는디 말이여. 청양지세는 을미년, 바로 올해를 말하는 게 아니유?'

최용만의 목소리였다. 그는 실종되기 전에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 이 같은 소리를 늘어놨었다. 조금씩 꼬인 매듭이 풀어지고 있었다.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보이는 수상한 종교단체부터, 옛 고서의 비밀을 파헤쳐가는 이야기까지 추리 소설로서의 긴장감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어 역사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수월하게 읽혔던 작품이다. 20세기 초반에 한때 각종 예언이 범람했었지만, 시대는 어느덧 21세기에 이르렀다. 과연 예언서는 미래를 보는 눈일까.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언서가 불행에 빠진 당시 사회의 열망을 담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인이 출현하여 혼탁한 이 세상을 뒤엎고 백성을 구제할 것이라는 예언은홍경래의 난이 있던 시절이나, 어쩌면 어지러운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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