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딸들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살인자의 가족에 대해 다루는 영화나 소설은 그 동은 꽤 있어 왔다. 왜냐하면 그 누구라도 살인자의 가족과 관계되고 싶어하는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부모가 살인자라고 해서 그의 자식 또한 살인유전자를 물려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무서워지는 게 사실이니깐. 살인자의 가족이라고 하면 그냥 피하고 싶고, 말 섞고 싶지 않고 그런 게 논리적 이진 않지만,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사실 피해자의 가족만큼은 못하겠지만, 가해자의 가족 또한 살면서 평생 동안 형벌처럼 주홍글씨를 가슴에 박고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살인자의 가족이 평생 괴로워하며 숨어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때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그의 첫 마디는 우리 아들들은 어떻게 살라고.. 였다고 한다. 사실 범죄자의 가족은 자신의 잘못과는 별개로 사회적으로 범죄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곤 하니 말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묻지마 살인사건을 벌였던 범인의 친동생이 사건 이후 6년동안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살인자의 가족은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납득하지도, 견디지도 못했던 것이다. 랜디 수전 마이어스의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남이 아니었기에 조금 다른 입장이 되긴 하지만, 엄마를 우발적으로 죽인 아빠를 둔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평생 동안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야 했던 두 자매의 일생이 놀랍도록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펼쳐진다.

"아빠를 집 안에 들이지 마."

우리 가족이 와해되던 7,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난 곧 열 살이 되었는데, 엄마는 날 쉰 살쯤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아빠는 집을 나가기 전에도 가족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기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겠지만 아빠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했고, 다른 무엇보다도 엄마를 간절히 원했다....달콤하게 꾸민 엄마의 겉모습 때문이었는지, 아빠는 엄마가 온전히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을 때면 언제든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다섯 살 메리와 아홉 살 룰루의 엄마와 아빠는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싸우곤 하던 부부였다. 그러나 아빠는 엄마한테 쫓겨나던 날까지도 저녁에 일을 마치고 오면 반가운 입맞춤과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이런 저런 삶에 대한 불평만 터뜨리기 일쑤였다. 아이들의 식사를 챙겨주는 것도,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 지도 몰랐던 엄마는 아빠를 쫓아내자마자 이런 저런 남자들을 집에 부르곤 했다. 어린 룰루가 도대체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한 걸까. 의아해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낮잠을 자던 시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룰루는 문 앞에 서 있는 아빠에게 엄마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 말한다. 하지만 어린 룰루는 망설이다 아빠에게 문을 열어주고, 술에 취한 아빠는 침실로 가서 엄마와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빠가 칼을 들고 있다는 엄마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룰루는 옆집으로 뛰어가 티니 아주머니를 부르러 간다. 돌아와보니 엄마는 피가 흥건한 바닥에 누워 있었고, 메리도 옷 가운데가 찢어진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발견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징역살이로 인해 갑자기 고아가 되어 버린 메리와 룰루. 친척들은 살인자의 딸을 돌봐주기를 거부하고, 외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친할머니는 당뇨병 때문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보육원에 맡겨지게 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도 역시 녹록할 수가 없었다. 아빠에게서 오는 교도소 소인이 찍힌 편지 덕분에 메리는 숱하게 아이들의 놀림과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메리는 늘 아빠를 만나러 교도소에 가고 싶어 했고, 룰루는 절대 아빠를 보러 가지 않았다.

난 아빠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칼로 사람을 죽이고 문을 뒤흔들던 아빠가 교도소에 있는 한, 난 안전했다. 아빠를 보거나, 아빠의 체취를 맡거나, 아빠와 손이 닿을 일이 없었다. 아빠는 내 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룰루는 자신이 엄마의 말을 어기고 아빠에게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이 모든 비극이 생겼다는 죄책감과 아빠에 대한 증오심으로 아빠를 잊어버리려 한다. 교도소에 면회 한 번 가지 않고, 아빠가 보내온 편지는 읽어보지도 않고 버리면서, 동생과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메리는 자신을 찌른 아빠가 무섭지만, 그럼에도 아빠를 내칠 수는 없어 주기적으로 교도소에 있는 아빠를 찾아가고, 아빠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자매의 선택은 그들의 삶의 방향 또한 다르게 만들고,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하게 펼쳐진다. 그녀들이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삼십이 년이 흐른 뒤에, 아빠가 곧 출소한다는 소식을 편지로 알려오자 두 자매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메리는 무서워하며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룰루는 아빠를 돌보지 말라며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아빠를 버릴 수 있었는데, 네가 자초한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메리는 자신이 아빠의 면회를 가고, 가석방 위원회에 편지를 쓰고 했던 것은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언니는 특별하고 똑똑했으니까 아무도 언니에게 강요할 수 없었겠지만,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돌봐야 했다고 호소한다. 자신이 그렇게 숨 막히며 서서히 익사하고 있는 동안, 언니는 의사도 됐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으며 미래를 가질 수 있었지 않느냐며 말이다.

절대로 철들지 않는 아빠와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두 자매. 살인자의 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 히도 노력해야 했던 그녀들의 삶은 처절하다. 스릴러 소설이었다면 아빠가 출소한 이후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겠지만, 이 작품은 두 자매가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 살아가는 삶 자체에 포인트를 맞춘다. 룰루가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심정과 메리가 아빠의 면회를 갈 때 마다 무서워했고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참아야 했던 그 마음의 깊이가 담백한 어조로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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