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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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무 실망하고 화가 나서 화조차 내지 못하던 사람의 눈빛과 태도를 보았다. 나는 엄마가 평생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걸, 엄마보다 더 아버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걸, 화를 삭이느라 애쓰는 엄마의 등덜미에서 보고 한동안 숙연했다.

그랬다. 엄마는 미움도 사랑이며 어떤 삶이든 한 덩어리의 사랑이라고... 당신의 슬픔과 고독과 소외, 그리고 미움 뒤에 숨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수줍게 알려주었던 게 아닐까. 

                                                                                     -미움 뒤에 숨다

아빠의 장례식을 계기로 딸과 엄마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미움 뒤에 숨다>는 사랑과 미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엄마를 두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엄마를 학대하며 제왕같이 살았던 아빠. 늘 화를 내는 아빠와 매를 맞는 엄마를 보면서 살아왔던 자식들은 엄마의 참혹함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빠의 기분에 따라 종아리를 맞아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엄마의 자식들 사이에서는 독특한 정신적 유대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아빠가 그들에게서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엄마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자식들은 차마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미워했고, 없어지기를 바랬고, 죽기를 바랬었다. 소설가인 화자는 그런 아빠를 오래도록 잊고 살았고, 무려 6년 만에 아빠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의 양면과도 같다고. 그러니 미움과 사랑이라는 개념은 어느 한 쪽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게 아닐까.

소설가 아내의 삶의 방식은 그와 너무도 달랐다. 어린 자식들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새우처럼 잠이 든 모습을 보는 건 다반사였다. 소설가의 관심은 온통 사회와 다른 인생들에 있었다. 그리고 함께 있을 때면 늘 책을 들고 있었다. 책을 읽는다고 면피가 되는 건 아니었다. 생활은 독서의 시간에 있지 않았다.

"엄마가 참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가 정이라도 붙일까봐 늘 긴장해서 사람을 밀어내고. 이해하기 힘든 직업인데..."

아빠가 독백처럼 말했다. 모두들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화가 아빠의 한쪽 어깨에 몸을 기댔다.

"엄마도 참 힘들었을 거다. 사랑해야 할 피붙이를 두고.... 다른 삶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불쌍한 인생을 살았다. 유명할진 몰라도 자신은 늘 춥고 불안하고 슬펐을 거다."

아빠가 느리게 말했다. 정화도 정애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고 사위들은 고개 숙인 채 들었다.

"사람이 죽어야 이해를 하게 되니 참 야속하다만 나도 니들 엄마 많이 괴롭힌 사람이다. 모욕하고.... 모욕했다."

아빠가 무겁게 말했다.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저마다 무심하거나 생각에 잠겼다.

                                                                                         -고독의 해자

 

<고독의 해자> <이별은 나의 것>에서는 소설가인 엄마가 등장한다. 어쩌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수도, 혹은 그저 허구의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여성 소설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고독의 해자>에서 엄마는 쓰던 소설이 끝나면 완전히 딴사람으로 바뀌어 맛있는 것도 해주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지만, 그런 날들보다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를 다니거나, 엄마의 공부방에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상태로 글을 쓰는 일이 더 많았다. 자식들은 어린 날의 그 마음에서 도무지 나이를 먹지 못했다고 당시의 엄마에 대해 서운함을 잔뜩 가지고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소설이라고 외칠 만큼의 상처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다. 어느 덧 두 딸 모두 성인이 되고, 엄마의 일흔 다섯 번째 생일을 위해 따로 적금을 들고 오래 전부터 선물도 준비하고 편지도 쓰면서 자매들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엄마는 일주일 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다. 장례식을 위해 자식들이 모이고, 이미 30년 가까이 다른 가정을 꾸려 살고 있던 아빠도 모인다. 아빠가 소설가인 그녀를 아내로 선택할 때는 소설가라는 게 마음에 들었었다. 문학을 하는 여자는 적어도 속물은 아닐 테고, 여리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여자일 테니 라면서. 하지만 결혼을 한 뒤, 아내는 곁에 있어도, 웃어도 속마음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그 누구와도 사무적이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관계를 맺었고. 10년 쯤 지날 때쯤 그는 아내가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결국 헤어지게 되는 참을 수 없는 원인이 되고 만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죽었다는 부고를 듣고 나서야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미워하고 괴롭히고 경멸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말이다.

대체 소설가란 무엇일까. 자신이 살아내지 않은 타인의 인생을 쓰는 일은 일상적인 생활마저 포기하고, 혼자만의 고독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 어가 벽을 둘러야만 하는 것일까.

사진에는, 어디에도 불행은 없었다. 불가피한 불행, 그러니까 장례식 같은 것 말고는 불행을 사진으로 남기진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사진과 사진 사이에 든 시간들, 생활들, 삶의 갈피를 기억할 수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여자와 남자가 아내와 남편으로 역할이 정해진 뒤에 관습적으로 제도적으로 균형이 흔들리던 것, 그것으로부터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던 것, 제도화된 자아를 잃지 않으려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남성성에 절망하던 것까지. 행복했던 순간을 찍은 사진들에 잡히지 않는 삶에는 그런 것들이 찐득하게 깔려 있었다. 나만 아는 것. 나만 증언할 수 있는 것. 나 혼자만 알고 있어서 법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것들. 그래서 부득불, 이 사진이 소중했다.                                                          -이별은 나의 것

 

이 소설집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저마다 슬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살다보면 한번쯤 가슴에서 바람소리가 들린다거나, 구멍이 뚫린 듯한 허전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공허함을 달래줄 무언가가, 힐링을 하게 도와줄 치유제가 타인이 될 수도, 여행이 될 수도,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작가는 그것을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찾기를 원하는 것 같다. 자기치유를 통해 결국에는 상처와 아픔과 슬픔, 그리움들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구원되기를 말이다. 어쩌면 인생은 일장춘몽 같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못견디게 괴롭던 상황도, 미치도록 아팠던 이별도,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순간도 결국엔 지나가니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모두 슬프거나 아픈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우울하거나 어둡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지금은 아프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언젠가는 결국 이해하게 될 거야. 지금 많이 어두울수록, 나중에는 그만큼 더 환한 날이 올 거야.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중얼거리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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