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전자 전쟁 -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
칼레 라슨 & 애드버스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대학 신입생인 나는 옥스퍼드 대학의 춥고 칙칙한 교실에 앉아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에릭 스빈헤다우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교수가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불쑥 들어서더니 뚜렷한 벨기에 억양으로 물었다. <이 커피 보이나?> 물론 <당연히 보입니다>라고 대답해야 마땅하겠지만 의문이 들었다. <무슨 속셈이지?>

하지만 교수의 다음 말은 경제학 수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커피는 보이지만, 콰테말라 농장도 보이나? 유럽연합 관세는? 커피 노동자들의 급여 명세서는 어디 있지?> 교수의 <속셈>은 분명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람과 법률, 취합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

 

다들 제 앞가림만 하려 들고 이윤이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데, 물론 돈 버는 일 자체가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은 좋지만, 그 돈을 우상으로 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을 착취하지 말고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지 말고 자신을 고립시키지 말고 섬이 되지 말라.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라고 말이다. <문화 유전자 전쟁>이라는 제목 뒤에 붙은 소제목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에서 보여지듯이 이 책은 문화 유전자 전쟁의 최전선인 경제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경제학과 행복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경제학이 다루어야 할 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래서 돈이 곧 전부이자 주인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환경오염과 이상 기후, 끊임없는 소음과 정서적 고문 속에서 하루 3,000개의 광고 메시지가 우리 뇌에 자신도 모르게 주입되고 있는 세상이다. 유명 상업 광고의 패러디 광고로 유명한 '애드버스터스'지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인 칼레 라슨은 이 책에서 경제학을 점령하자고 제안한다. 주류 경제학의 논리에 도전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조지프 스티글리츠, 조지 애컬로프, 만프레드 막스네프, 허먼 데일리, 데이비드 오럴 같은 여러 경제학자들의 글과 어우러진 이 책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주류 경제학의 사상과 개념을 낯설게 드러내며,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생명과 진보,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경제학은 극대화를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한계 안에서 효용을 극대화하고 성장을 극대화하고 소득을 극대화하고 생산을 극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자본가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고삐 풀린 극대화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지금 보시는 대로입니다. 지구는 규제를 벗어난 이 모든 경제 활동을 지탱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우리는 심각한 생태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제는 극대화만을 추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최소한 극대화에 조건을 내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경제학을 처음부터 다시 사고해야 합니다.

인류의 엄청난 소비 문화 덕분에 지구의 환경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문제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도, 누군가는 이렇게 문화 유전자 전쟁을 펼치려고 하고, 누군가는 라떼 거품이나 쪽쪽 빨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지 말이다. 특히나 우리의 소비가 GDP에 기여하는 사례를 매우 놀랍게도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준다.

 막힌 도로에서 휘발유를 허비하고 배기가스에 콜록거리다 결국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교통 체증은 GDP에 기여한 셈이 된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박살 나고 보험료가 인상되고 거기다 사고 때문에 심각한 교통 체증이 일어난다면 GDP는 훨씬 증가할 것이다. 부상을 입어서 몇 주 동안 입원해야 한다면 GDP는 더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날 아침에 값비싼 이혼 수속을 밟고 저녁에 집이 화재로 내려앉아 법률 비용이 발생하고 보험금을 받고 가재도구를 새로 샀다면 GDP 관점에서는 최고의 하루일 것이다.

대기 오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구급차, 감옥, 벌목으로 인한 자연의 유실, 도시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경찰차, 텍사스 저격수의 소총, 연쇄 살인마의 나이프, 폭력을 조장하는 티비 프로그램 모두 GNP에 합산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 시의 아름다움, 공직자의 청렴, 재치와 용기, 공감과 애국심 등은 하나도 GNP에 합산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보다 GNP GDP가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많은 것이 합산되고,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많은 것이 제외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 책은 시종일관 독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말을 걸며 모든 것을 근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페이지를 넘기면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고 있는 흑인 아이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세계 인구 성장그래프가 나오고, 다음 페이지는 오늘 돈 좀 썼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남자의 말에 너무 멋지다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의 캐리커처와 함께 기울기가 급해지는 [종의 소멸] 그래프가 등장하는 식이다. 이는 20년간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표방해 온 [애드버스터스]지가 즐겨 써온 전략이라고 한다. 현란하게 펼쳐지는 도박적인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경제적 사유 방식에 균열을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책이고, 두툼한 분량만큼이나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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