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짜 메이저리그다
제이슨 켄달.리 저지 지음, 이창섭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1회초 1사 만루의 상황에서 중심 타선인 5번타자, 6번타자가 모두 삼진 아웃 당한다. 그렇게 득점을 실패하고 이어진 1회말, 상대팀은 쓰리런 홈런과 더불어 폭풍의 7득점. 스코어 0:7. 경기는 이제 시작인데 7점차라는 점수는 어쩐지 응원하는 기분을 사그라 들게 만들고 만다. 혹시나 기대했던 선발 투수에 대한 역시 나의 실망감. 경기를 관람하는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펼쳐 들고 만다. 간간히 티비에서 들려오는 중계 소리만 들으며 책 속으로 빠져드는데, 3회부터 조금씩 따라붙던 점수가 결국 5회에 이르러서는 역전이 되고 만다. 맙소사. 결국 이날 경기의 스코어는 0:7에서 10:8이 되고 만다. 이런 게 바로 야구의 묘미다. 예를 들어 수비 실책 남발에, 선발 투수의 제구 난조에, 상대팀의 운 좋은 안타까지 이어지면서 경기가 안 풀리더라도 야구는 9회말 끝까지 가보기전에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진짜는 9회말 투아웃부터 라는 얘기처럼, 실제 다 잡은 경기를 9회말 투아웃에서 끝내기로 지는 경우도, 마무리투수가 블론 세이브를 하고 연장으로 넘어갔지만 다시 이기거나, 결국 지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진부한 표현도 야구 경기에 있어서만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감탄사가 되는 것이다.

 

야구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야구장엔 내가 몰랐던 경기 속의 경기가 존재했다. 난 항상 코앞에서 야구를 지켜봤지만 누군가 알려준 후에야 경기장에서 진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됐다. 예전엔 야구가 느리고 때때로 지루한 경기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야구에 대해 배운 이후론 경기장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쉴 새 없이 펼쳐져서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가 됐다. 이젠 주목해야 할 것들이 수십 가지로 늘어났고, 단 한 번의 타격도 여러 개의 줄거리로 이루어진 흥미로운 결투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야구 팬이자 기자인 리 저지가 선수의 관점에서 야구를 기술하고 싶어서 시작되었다. <선수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들에 주목하고, 선수가 하는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고, 감독이 평소보다 이르게 내야수에게 전진 수비를 지시한 이유와 3루 코치가 주자에게 3루를 지나 홈으로 뛰게 한 이유 혹은 볼카운트 3볼인 상황에서 주자가 2루를 훔친 이유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16년 동안 선수로 뛰었던 베테랑 포수인 제이슨 켄달은 메이저리그 경기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선수들이 어떤 경기를 펼쳐야 하는지, 야구와 야구를 하는 선수들을 이해하려면 어디에 주목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그것을 리 저지가 지면에 옮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야구팬들이라면, 꼭 봐야만 하는, 볼 수밖에 없는 책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류현진 선수와 윤석민 선수, 그리고 추신수 선수 덕분에 요즈음은 메이저리그 중계를 정규 방송에서도 편성해서 보여줄 정도이니 책 속 내용들이 더욱 친숙하고, 쉽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야구장 밖에서는 알 수 없는 메이저리그의 생생한 진짜 이야기. 도대체 진짜 메이저리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진짜 프로선수들은 경기를 어떻게 보는 것일까? 홈플레이트에서 포수와 구심은 어떤 대화를 나눌까? 팀원끼리 어떻게 의사 소통하는 걸까? 필드 밖에서 바라보는 야구가 아니라, 필드 안에서 바라보는 진짜 야구 이야기가 그렇게 펼쳐진다. 경기가 시작 되기 전에 어떻게 몸을 풀고, 선수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타자, 주자, 감독으로 나뉘어서 각각의 포지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경기를 잘 풀어가려면 어떤 부분을 공략해야 하는 지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야구는 정말 빨리 진행되지만, 직접 경기해 보지 않으면 - 혹은 필드에서 경기를 관람하거나 - 야구가 얼마나 빠른 스포츠인지 알 수 없다. 타구, 투구, 송구. 필드에서 보면 이 모든 게 완전히 달라 보인다. 야구가 길고, 느리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TV에서 볼 땐 야구는 정말 쉬워 보인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내야수들의 능력은 상상도 안 될 만큼 뛰어나다. 터무니없을 정도다. 훌륭한 내야수는 본능이 남다르다. 투구와 타자의 스윙을 읽을 후에 타구가 날아오기도 전에 몸을 움직인다.

선수들은 "상대하기 가장 힘들었던 투수는 누구죠?"라는 질문에 항상 똑같이 대답한다고 한다.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투수요."라고. 상대 투수가 어떻게 경기하는지, 공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 공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르면 그만큼 불리하다는 얘기다. 야구는 철저하게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진행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야구 만큼 기록도 많고, 경기 규칙도 많은 스포츠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야구는 알면 알 수록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고, 그만큼 더 재미있어지는 신기한 종목이다. 야구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는 만큼 더 보인다'는 것이다. 야구에 흥미가 이제 막 생겼다면, 혹은 야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더 재미있게 즐기고 싶다면 이 책이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야구에 관련된 책들이 야구를 오래 보아온 소위 선수들에게는 다 그렇고 그런 아는 얘기들을 정리해놓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나 야구 좀 봤다. 싶은 이들에게도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우의 수가, 두 세 시간짜리 야구 경기 안에서 전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매번 신기하기도 하고, 색다른 쾌감을 주기도 한다. 야구에서는 벌어지는 매 순간의 선택. 그 사소한 선택 하나가 그날의 경기 결과를 바꾸기도 하고, 한 선수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하는 사소한 고민에서부터 회의 때 이걸 발표해야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야지. 오늘 이걸 입을까. 아니야 저걸 입어야겠어. 이쪽 길이 빠를까. 저쪽 길이 빠를까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벌어지는 우리의 선택.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 뒤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모두 스스로의 책임이다. 아쉬운 건 이미 결정된 선택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거. 하지만 야구에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거나, 오히려 상황을 역전시킬 묘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선택을 통해 배우고, 그걸 활용해서 멋진 드라마를 새로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려면 감독, 코치, 선수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진짜 야구를 만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야구장으로 가보라. 그게 여의치 않다면 시원한 집에서 이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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