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올 여름 가장 기다리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군도>이다. 하정우, 강동원 두 배우의 시너지 효과 뿐만 아니라 기존의 사극과는 달리 백성의 시각에서 그려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스토리적인 재미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달에 개봉하게 될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는 조선 후기,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망할 세상을 통쾌하게 뒤집는 의적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다가 극중 하정우 배우가 맡은 역할이 평범한 인물에서 도적떼에 들어가게 되면서 의적으로 변모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적 메메드>와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겠다. 의적이란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의로운 도적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지배 계층의 핍박을 통해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의 울분과 한이 쌓여 만들어낸 영웅 캐릭터라 하겠다.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핍박하고,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그런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나서는 이들이 의적인 것이고, 우리의 홍길동, 일지매, 장길산, 임꺽정 등이 바로 그런 시대가 만들어낸 히어로였다. 의적 메메드 역시 그런 영웅 캐릭터인데, 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가 초인적인 능력이 있는 특별한 인재가 아니라 빼빼 마르고 평범한 청년이라는 점이다.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라거나, 어떤 거룩한 소명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메메드는 친근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라 하겠다.

메메드는 충격에 휩싸였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갖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밀려왔다. 머릿속엔 온통 이 넓은 세상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도 넓을 수가 있을까? 물방앗간 마을은 이제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다. 그 대단한 지주 압디도 개미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랑과 연민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메메드는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지주 압디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야......"

 

 

매일매일 땀 흘려 일하지만 가난과 배고픔을 면하기 힘들고, 지주 압디의 핍박과 횡포에 시달리는 터키 민중의 삶은 먼 옛날 우리 민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메메드는 고된 노동과 매질에 지쳐 어머니를 두고 옆 마을로 도망을 치지만, 곧 압디의 수하들에 의해 잡혀오고 만다. 그 일로 메메드와 그의 어머니 데네는 농사를 지은 만큼의 곡식을 배당 받지 못하고 며칠을 계속 굶어야 했다. 말라깽이 메메드는 어릴 때부터 얼마나 고생이 심했던지 어깨도 다리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 키가 작았고, 팔과 다리는 삐쩍 마른 나무토막 같고, 얼굴은 까맣게 탄 상태였다. 그는 다른 세상으로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지내던 어느 날, 친구인 무스타파와 함께 시내 구경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도시에는 지주 따위는 없었고, 가게와 땅들은 모두 개인 소유라는 것이다. , 자신이 일을 하는 것만큼의 소득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 자체에 충격을 받게 된 것이다. 지주 압디의 핍박 아래 살았던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어린 그에게는 지주가 없는 마을도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지 못한 탓이다. 재미있는 점은 함께 갔던 친구 무스타파는 너무 고단해서 시내에 갔던 것을 후회하면서 집으로 돌아간 반면에, 메메드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기쁨에 들떠 있었다는 것이다. 별다른 재능 없이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주인공이지만, 역시 사고 방식 하나는 남달랐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말라깽이 메메드라고? 그가 어린 소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용기로 가득한 인물이야.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피가 지주 압디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걸. 그리고 사파베이는 바이바이 마을에서 저질렀던 만행의 대가를 피할 수 없을 거야."

바이바이 마을에서도 메메드와 칼라이즈의 전투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그 소식이 마을에 전해진 것은 저녁때였다.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광장에 나가 환호했다. 마침내 영웅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들은 한층 상기되어 말라깽이 메메드에 대해 믿기 힘든 이야기를 지어내 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의 눈에는 메메드가 전설적인 존재로 비쳤다. 사람들이 지어낸 메메드의 무용담은 너무 과장되어 있어서 메메드가 열 명이라도 불가능할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과장된 상상을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시내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메메드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열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후 연인 핫체가 지주의 조카와 강제로 약혼하게 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지주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핫체와 함께 마을을 탈출하려다 압디의 어깨에 부상을 입히게 되고, 그는 그 길로 산적이 되어 마을 전체의 마음을 대변하여 지주 압디에 대항하는 의적이 되어간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메메드가 자신들의 끔찍한 삶을 바꿔줄 수도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되는 것이다. 메메드는 그렇게 지주에게 대항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고, 연인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영웅이 된 메메드는 점차 마을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하게 된다.

야사르 케말은 <한 개인의 이야기를 전할 때, 그를 하늘에 닿아 있는 사람인 양 몹시 숭고하게 그리면 안 된다. 그는 이 지상에 견고하게 발을 붙인 채 남아 있어야 한다. 그는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의 일부분이며 특수한 사회 질서 속에 살고 있고, 그 지역 문화에 고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개인은 그가 사는 특별한 환경의 소산물이다. 때문에 그의 사고를 해부해 보려면 그를 둘러싼 환경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환경을 거짓으로 묘사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이걸 보면 의적 메메드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평범한 그가 의적으로 마을 전체의 영웅이 되기까지의 서사가 구축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천 명의 지주들을 죽인다 하더라도 또 수천 명의 지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테고, 가난한 자들은 영원히 비극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고 했다. 극중 메메드 또한 자신이 지주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완전히 타파할 수 없거나, 어느 정도는 패배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며 싸우려고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없이 희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라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