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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평점 :
열린책들의 버즈북 시리즈를 좋아한다. 현재까지 출간된 시리즈는 두 권으로 로베르토 볼라뇨와 조르주 심농 편이었다. 버즈북buzzbook은 문이 자자하다는 뜻의 buzz와 book의 합성어로, 중요 작가의 신작이나 저술을 펴내기 전에 '저자나 책에 대해 미리 귀띔해 주는 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볼라뇨 편은 가격이 무려 660원, 심농 편은 750원이었다. 신작이 출간되기 전에 작가의 삶과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흥미롭게 조명하는 시리즈이다. 사실 가격대비 퀄리티가 너무 훌륭해서 이런 시리즈가 작가 별로 모두 다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살짝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은 그런 버즈북의 심화편 같은 격으로 그의 유작인 <2666>을 기려 가격도 2666원이다. 그 동안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이 전 12종 17권으로 4년 만에 완간 된 것을 기념으로 국내외의 작가, 비평가, 번역가, 그의 주변 인물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로베르토 볼라뇨를 주제로 작가론, 작품론 등의 비평과 더불어 그에 대한 에세이와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오마주 작품을 담은 책이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들을 탐독하다가 일정 대목에 이르면, 독자들은 누구나 그 작가 자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진다. 이 충동이 남들보다 일찍 찾아오든 늦게 찾아오든, 이미 너무 늦은 것이 되리라. 볼라뇨는 2003년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전기적인 사실들(기본적으로 필자가 위에 소개한 것들과, 때 이른 죽음에 관한 언급들)은 각각의 책 표지에 인색하나마 조금씩 실려 있다. 때로 출판사가 요약한 연보에는 죽음의 원인이 <간 질환>이라고 밝혀져 있다.
문학은 물론 범죄라는 도덕적 악과 칠레의 정치적 상황 같은 사회적 악, 어둠, 죽음, 역사, 기억, 인간관계, 성, 행복, 광기 등 인간을 둘러싼 실로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독특한 글쓰기 형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볼라뇨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남미 최고의 작가로 추앙 받으며 1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너무 이른 죽음 이후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볼라뇨 열풍’을 불러온 그는 사실 1992년에 치명적인 간 질환을 진단받은 상태였었다. 그의 작품 출간 연보를 보자면, 결국 거의 모든 소설이 죽음의 위협 속에서 쓰였다는 뜻이 된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내기로 결심한다. 이때 그는 필생의 역작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걸작 <2666>을 써 내려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후, 작품 <2666>을 마치기 위해 간 이식 일정을 미룬 건 아닌지 추측이 무성했을 정도이니 볼라뇨가 얼마나 쉼 없는 열정으로 글을 썼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C형 간염으로 인한 간 부전으로 사망할 당시 그의 나이 겨우 쉰이었다. 병은 그의 말년을 시들게 하고 그늘을 드리웠지만, 일찍 죽게 되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볼라뇨의 자각은 문학 에너지의 놀라운 폭발을 일으킨 촉매이기도 하다. 불과 10여년 만에, 그에게 문학적 불멸을 안겨준 10여 편의 소설, 수많은 단편과 100여 편의 비평 에세이를 써냈으니 말이다.
10대 시절은 에드거 앨런 포만 읽으면서 보냈어요. 훌륭한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포. 프랑스에선 보들레르가 포를 번역했고 중남미에선 코르타사르가 포를 번역했죠. 각자 주력 분야는 다르지만, 보들레르와 코르타사르가 프랑스어 권 문학과 스페인어 권 문학에서 각각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상 포는 단편 작가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언제나 이 사실을 생각해야 하죠. 어쨌거나 중요한 건 계속해서 읽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것은 쓰는 것보다 항상 더 중요하니까요.
볼라뇨는 읽는 것이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소설을 쓰기 위해선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자신은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머릿속에 매우 정교한 구조를 짜놓는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 스타일을 떠올려보자면 전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이렇게 인터뷰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작가, 비평가, 번역가, 그의 주변 인물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로베르토 볼라뇨를 주제로 작가론, 작품론 등의 비평과 더불어 그에 대한 에세이와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오마주 작품을 담고 있어, 볼라뇨라는 작가에 대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도 든다. 기존 로베르토 볼라뇨 특집 판으로 구성된 프랑스의 잡지 『시클로코스미아CYCLOCOSMIA』 3호의 내용과 국내 필진의 글을 함께 실어 구성이 되었는데,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는 스페인 작가 에두아르도 라고, 작가 장정일, 서평가 금정연, 그리고 볼라뇨의 작품을 번역한 이경민까지 다양한 필진의 글들은 볼라뇨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도 하지만, 오마주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 연보
1993 |
40세 |
소설 『아이스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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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
41세 |
소설 『코끼리들의 오솔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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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
42세 |
시집 『낭만적인 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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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43세 |
소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먼 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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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
44세 |
단편집 『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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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45세 |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 출간 |
1999년 로물로 가예고스상 수상 |
1999 |
46세 |
소설 『부적』 |
『코끼리들의 오솔길』 개정판인 『팽 선생』 출간 |
2000 |
47세 |
소설 『칠레의 밤』, 시집 『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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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
48세 |
단편집 『살인창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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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49세 |
소설 『안트베르펀』, 『짧은 룸펜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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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
50세 |
단편집 『참을 수 없는 가우초』 사후 출간 |
사망 |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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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 『2666』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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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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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 『제3제국』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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