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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펑크 - 어산지,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다
줄리언 어산지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왔다는 이유로 챙겨봤었던 영화 '제5계급'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던 줄리언 어산지라는 인물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실존 인물인 줄리언 어산지와 그의 동료 다니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일무이한 폭로전문 웹 사이트인 위키리크스를 설립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 보여준다. 그들은 강자들의 비밀을 파헤치는 감시자가 되기로 하고, 정부와 대기업의 비밀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들을 위한 소규모 플랫폼에서 시작해서 위키리크스라는 엄청난 웹사이트로 키워나간다. 어릴 때부터 '윤리적 해커'를 꿈꾸었다고 하는 어산지는 현재 각국 정부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어 현재는 모처에 은신중인 걸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키리크스 편집장인 그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극단적인 걸로 유명하다. 혹자는 그를 반미 정보원이라며 미국의 적이라 하고, 누군가는 그를 인터넷 시대의 영웅이자 민주주의 권리를 지키는 자라고 추앙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보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하고, 민간인 사찰 논란에 각종 디지털 범죄들까지 판치고 있는 현대에 그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 <사이퍼펑크>는 읽기 전부터 굉장히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일상이 디지털을 통해 낱낱이 생중계되는 것에 우리는 모두 무감각해지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서, 페이스 북을 통해서 결혼 소식을 듣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새로 옷을 사고, 연인이 바뀌는 등등의 일상부터, 개인 신상이 그대로 드러난 게시물들이 넘쳐나니 말이다. 지난달에는 영화 <어벤져스2>의 국내 촬영이 한참 화제였었다. 도로를 통제하고 봉쇄하는 등 보안을 철저히 했으나, 누군가 촬영 현장을 몰래 찍은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조회수 수십만을 넘기자 제작사 측은 당황한다. 촬영에 앞서 초상권과 저작권 문제로 촬영 현장이 유출될 경우 실제 촬영 분이 영화에서 아예 편집될 수도 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출사건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영화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열정이야 벌써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모두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을 하고 있다. 이유는 바로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서 엄청난 속도로 영상이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함이다. 이는 사실 국제적 망신이나 다름없지만, '빠름빠름빠름~'을 지향하는 국민 특성 상 인터넷을 통해서 불법 여부와 상관없이 너무도 당당하게 버젓이 올려지는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 범죄 역시 점점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통해서 흉악해지고 있다. 각종 포털 사이트, 카드사, 금융권 등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뉴스가 너무도 자주 등장해서, 대한민국에 어디 신상 한번 털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현재, 사적인 영역에 대한 보호가 완전히 사라져가고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이버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때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민간인 사찰문제처럼 국가의 기간이 개인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조회하고, 금융 사와 통신회사가 해킹 당해 개인 신용정보가 빠져나가도 속수무책인 이 나라, 2014년의 한국사회에서 줄리언 어산지의 경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선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이 책은 경고다>라고 시작하는 어산지의 서문은 <이제 새로운 세상의 무기를 들고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워야 할 시간이 왔다>라는 비장한 어조로 마무리된다. 사이퍼펑크 운동의 중심인물로 활약해 온 줄리언 어산지는 동료 사이퍼펑크 운동가들과 함께 인터넷이 국가 전체주의의 가장 위험한 조력자가 되어버린 현재에 대해 낱낱이 폭로하며 이에 맞서 싸울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력의 지배라는 차원에서 사이버 공간이 군사화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의사소통을 하거나 휴대 전화로 통화할 때(요즘은 휴대 전화 통화도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죠), 군 정보기관들이 우리의 통화 내용을 엿듣고 있습니다. 침실에 탱크가 들어와 있는 셈이죠. 아내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에도 중간에 군인이 끼어 있는 겁니다. 적어도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우리는 아직도 계엄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눈에 보이진 않지만, 거리에는 분명 탱크가 들어서 있습니다. 시민의 공간이 되어야 할 인터넷이 지금 심각한 수준으로 군사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우리 모두의 공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일상과 지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인터넷을 통해서 하고 있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이 군사화되고 있다는 것은 침대 아래에 군인이 숨어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어산지는 주장한다. 전세계 가장 많은 이들의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구글과 페이스북만 하더라도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데이터에 대해 미국의 첩보 기관들이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실제로 위키리크스 수사에서도 정부가 사용자들의 데이터 제출 요청을 했을 때 구글은 정부의 요청에 따랐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사실 페이스북과 구글 또한 정보기관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규모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인터넷이나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될 것 같지만, 사실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적인 활동 반경이 좁아질 테고, 생활이 엄청나게 불편할 것을 감수해야 하고, 급기야는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약자에게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게 투명성을.” 이것이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하는 사이퍼펑크 운동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모든 의사소통이 감시 당하고, 영구적인 기록으로 남게 되고, 정보들은 끝까지 추적당할 것이며, 사람들은 모든 상호 관계 속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식별 당한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미래의 상황이 아니냐고? 아니다. 이것이 바로 지난 10년간 벌어진 변화이며, 우리는 이미 이런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무섭지 않은가. 줄리언 어산지를 비롯해서 사이퍼펑크 운동가들은 익명성, 표현의 자유와 검열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읽을 권리와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마땅한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세계를 조금 더 넓은 정보의 바다로 확장시키는 인터넷이라는 세상이 독재 권력을 통해서 통제되고, 지배되지 않도록 우리의 의식부터 조금씩 변화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