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인 <눈알수집가>를 읽었던 이들이라면, 충격적이고도 당황스러웠던 마지막 부분을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 직후부터 벌어지는 이야기인 <눈알사냥꾼>이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 중에 유일하게 시리즈로 진행되는 두 작품이라 맹인 물리 치료사 알리나와 범죄 전문 기자 초르바흐 콤비가 다시 등장하는 작품이다. 전작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설계도를 따라 가다 보면, 결국 지나쳐 온 모두가 복선이 되어 만들어내는 무시무시한 반전은 그것에 대한 충격보다도 앞으로 주인공에게 벌어질 일들에 대한 우려로 마음이 아프고 무섭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분명히 사백 여 페이지를 숨쉴 틈 없이 달려왔건만, 범인이 밝혀지고 난 다음에 해결과 해소의 안도가 아니라, 예정된 것에 대한 불안감이 든다면 그건 뭔가 이상한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눈알수집가>를 읽었던 많은 이들이 언급했던 독특한 구성에 기인하고 있다. 맺음말부터 시작하여 서문으로 끝나는 뒤집힌 구성은 실제 진행되는 이야기가 시간순서대로 이지만 시작부터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즉, 모든 사건이 다 끝나고 난 시점에서, 누군가(독자)에게 처음 그 사건의 시작부터 과정을 설명하면서 결론이 이르는 구성이라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을 처음부터 함께 가져가는 것이다.
<눈알수집가>와 <눈알사냥꾼>을 관통하는 감정은 바로 '회환'이다. 이미 나쁜 결말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내가 그때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갔더라면 이라는 선택에 대한 후회, 그때 나를 기다리고 있을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한 행동으로 인한 파급효과들은 어쩔 수 없이 비극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다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한번 시간의 끝을 잡고 돌아가고 싶은 회한의 선택들. 하지만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한들,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결국 내가 하는 선택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생에서 하는 수많은 결정들로 인해, 결국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처럼, 미리 조심하지 못하고 물이 엎질러진 다음에야 우리는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늘 그렇지 않은가.
나는 언젠가 집을 아무도 못 들어오는 안전한 곳으로 만들려고 결심한 적이 있었다. 경찰 연줄을 이용해서 창문과 문에 경보기를 달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나라는 바보는 수년 동안 그것을 미뤄왔다. 악은 다른 사람들한테만 일어나는, 복권 당첨 같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착각을 하는 걸까.
이 세상의 그 어떤 경보기도 내 가족의 파멸을 막을 수는 없었을 거라는 사실도 위로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범죄 소설에서 피해자의 가족, 친구, 주변인물들은 항상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머릿속에서 '만약'이라는 단어를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때 그와 같이 갔더라면.
만약 내가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더라면.
만약 내가 그냥 넘기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그녀를 혼자 두지 않았다면.
만약....
하지만 '만약' 타령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단지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과거를 바꾸거나 고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평생 동안 이런 연쇄살인마를 만나게 될 확률, 혹은 그자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었다거나, 그의 범죄 대상이 내 가족이나 친구가 될 일은 극도로 드문 경우이다. 그러나 그 드문 경우의 수에 해당되는 소수의 사람이, 바로 내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삶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를 따라가면서도, 등장인물들이 체감하는 공포와 회환, 슬픔과 후회의 감정을 고스란히 체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작에서 초르바흐는 눈알수집가에 의해 가족을 잃었고, 알리나는 자신에 대한 참담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악인에 의해 파괴되는 이야기인 <눈알수집가>에 비해, 사건 이후 남겨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인 <눈알사냥꾼>은 속도감은 조금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악인의 등장으로 눈알수집가 외의 다른 이의 더 악랄한 범죄 행각은 이야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출간년도 |
원서제목 |
한글판 |
국내출간 |
2006 |
Die Therapie |
테라피 |
2007년 06월 |
2007 |
Amokspiel |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
2011년 08월 |
2008 |
Das Kind |
아이 |
미출간 |
2008 |
Der Seelenbrecher |
영혼의 파괴자 |
미출간 |
2009 |
Splitter |
파편 |
2010년 08월 |
2010 |
Der Augensammle |
눈알수집가 |
2013년 06월 |
2011 |
Der Augenjäger |
눈알사냥꾼 |
2014년 03월 |
2012 |
Abgeschnitten |
갈기갈기 찟긴 |
출간예정 |
2013 |
Der Nachtwandler |
몽유병자 |
출간예정 |
2013 |
Noah |
노아 |
출간예정 |
자, 이번 사건의 범인은 세계적인 안과의사인 차린 주커 박사이다. 여자들을 납치해 납치 해 눈꺼풀을 도려내고 강간한 후 버린 여자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자살을 택하고 만다. 그가 살인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 경찰에겐 증거도, 증인도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경찰은 알리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녀는 주커를 만나 그를 마사지 하면서 환영 속에서 주커의 다음 희생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차린 주커와 눈알수집가 사이의 어떤 연관을 발견하게 되고, 스토리는 걷잡을 수 없이 달려가기 시작하는데.. 이번 작품의 후반부 역시 전작만큼이나 강렬하다. 어떤 것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누가 동료이고, 적인지에 대한 혼란과 현실과 환상의 기묘한 구분에 이르기까지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더니, 결국 전작의 결말 자체를 부정하는 반전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당신이 이 책을 읽으려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할 것이다.
피체크의 독보적인 구성은 시작부터 독자들의 머리를 정신 없게 만든다.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번 작품의 서두에서 초르바흐의 아들 율리안을 납치한 눈알수집가는 율리안을 살려주는 대가로 그의 죽음을 요구하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초르바흐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쏜다. 시작하자마자 시리즈의 두 주인공 중에 한 명이 자살을 하다니, 이 무슨 당황스런 서두란 말인가. 싶을 정도의 충격으로 작품이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반부의 대부분은 맹인 물리 치료사인 알리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전작에서는 주체가 아니었던 인물이라 더욱 그녀의 감정과 생각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범죄에 직면한, 혹은 피해를 보고 남겨진 이들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뛰어난 혜안은 어느 순간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든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대목들.
친구들과 앉아서 맥주를 마실 때나 아내와 함께 아침 식탁에서 일요일 신문의 머리기사에 대해 토론할 때, 그런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쉽다. 지하철에서 젊은 패거리에게 강도를 당할 대는 저항하지 말았어야지. 조종사는 비상 착륙을 할 대 당연히 비행기 연료를 먼저 흘렸어야지. 연료 탱크가 가득 찬 상태로 착륙을 시도하면 안 되지.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당연히 살 만큼 산 늙은이보다는 아이를 구해내야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저울질은 늘 나중에야 분명하고 또렷해진다. 거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생긴 다음에야. 전장 한복판에 서 있을 때 우리 뇌는 작동을 멈춘다. 우리는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저 행동할 뿐이다.
어떤 사실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그런 인식에 따라 실제 행동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이런 예외적인 상황, 극단적인 상황에 처할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타깝게도 언젠가 후회하게 될 그 순간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하곤 한다. 누군가의 죽음에 직면해서야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 가슴 아픈 회한의 순간으로 피체크는 우리를 초대한다. 그 어떤 스릴러가 이런 슬픔을 줄 수 있었던가. 그것이 피체크의 스릴러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