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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우르줄라 포츠난스키 지음, 안상임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에 흥미로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소풍 가서 즐겼던 보물찾기가 ‘어른들의 놀이’로 진화한 '지오 캐싱'이라는 이색레포츠가 인기라는 기사였다. 지오 캐싱은 지구를 뜻하는 지오(geo)와 은닉처·귀중품을 뜻하는 캐시(cache)의 합성어라고 한다. 휴대용 GPS를 활용해 누군가가 숨겨놓은 물건을 찾는 일종의 ‘첨단 보물찾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에 미국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현재는 전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500만 명 이상이 지오 캐싱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 지오캐셔도 300여 명이 있다고 하니, 아직 우리에게 낯선 분야이지만 그래도 몇 년째 꾸준히 즐기고 있는 이들도 있는 것 보면 마니아적인 레포츠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지오 캐셔 들이 숨겨놓은 보물은 금전적 가치가 높은 것이 아니라, 보물 자체보다는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어릴 적 소풍을 가서 보물찾기를 했던 추억도 되살릴 수 있고,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한다. 자신이 쓰던 물건부터 기념품 등 소소한 물건을 밀폐된 작은 통에 넣어 자신만의 장소에 감춰놓고, 보물과 관련된 힌트와 좌표(위도와 경도)를 통해서 낯선 이들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행위는 꽤나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보물을 습득한 후에는 자신이 가져간 보물과 교환해야 하므로, 보물의 종류는 매 번 바뀌지만 보물상자와 장소는 항상 그 자리에 남게 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GPS만 있으면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귀가 솔깃한 레포츠가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낯선 이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점과 보물로 무엇이든 숨길 수 있다는 점이 추리, 스릴러 소설에의 매우 훌륭한 소재가 된다.
잘츠부르크 근교 방목장에서 한 여자가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시체 발바닥에는 알 수 없는 숫자와 문자 조합이 문신되어 있다.
N47˚46.605
E013˚21.718
수사를 맡은 베아트리체와 플로린은 그것이 특정 지점을 가리키는 좌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좌표 지점에 숨겨진 살인범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그들이 발견한 메세지는 아래와 같다.
이름이 크리스토프인 남자 성가대원을 찾아. 그의 왼쪽 손등에는 점이 있어. 대략 오륙 년 전쯤에 잘츠부르크 성가대 소속이었고, 거기서 슈베르트 미사곡 내림가장조를 불렀다는 데 매우 자부심이 강해. 그의 출생 연도 마지막 두 자리 숫자를 A 라고 하고 이 A를 제곱해서 37을 더하고, 당신이 가진 북쪽 좌표에 이 숫자를 더해.
A 에 10을 곱하고 그 각 자릿수의 합을 구해. 그런 후 A를 이 숫자와 곱해. 229를 빼고 당신의 동쪽 좌표에서 나온 숫자를 빼. 스테이지 2에 온 걸 환영해. 거기서 다시 봐.
별다른 단서가 없었던 베아트리체와 플로린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범인이 초대한 게임에 응할 수밖에 없다. 범인이 지목한 신원이 불분명한 인물을 찾아내고, 그 인물과 관련된 정보를 조합해서 문제를 풀어내면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또 다른 좌표이다. 바로 범인은 GPS를 활용한 일종의 보물찾기인 ‘지오 캐싱’ 게임으로 두 형사를 초대한 것이다. 그들이 풀어낸 좌표가 가리키는 곳에는 신체의 일부가 숨겨져 있고, 스테이지가 거듭되면서 그들이 찾아내는 인물들은 늘어나지만 대체 그 사람들이 범죄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궁인 상태이다. 수수께끼를 풀어나고, 게임의 다름 라운지를 쫒아 가다 보면 이 책의 가독성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꽤 두툼한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가 넘어간다. 다음 장이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과정이 전체 내용의 대부분이다 보니, 대체 경찰들은 왜 항상 뒷북만 치고 있나. 범인도 사람인데 어쩌면 지문을 포함해서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을 수 있나. 속이 터지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과 범인에 대해서 알고 나면, 과연 그가 유능한 형사들과 두뇌 대결을 펼칠만한 잔혹한 살인범일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범행수법과 동기를 알게 되면, 그 동안 애매했던 부분들이 일시에 줄을 맞춰 정리가 된다는 쾌감도 있다. 무엇보다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주인공 캐릭터도 기존 스릴러의 주인공에 비해서 인간적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베아트리체는 이혼한 전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고, 두 아이를 돌보면서 살인 사건 수사를 하느라, 어머니에게 맡기거나,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전남편은 아이에게 시간을 많이 쏟지 못하는 그녀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어 틈만 나면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하고, 상사인 호프만 국장은 동료인 플로린은 인정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인정하지 않아 늘 못마땅해 한다. 게다가 그녀는 모델 같은 여자친구를 가지고 있는 동료 플로린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기도 한다. 물론 그에게 들키지는 않지만, 그녀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우리는 실제 있을 법한 여자의 감정을 느끼면서 그녀에게 감정적으로 이입된다.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범인이 베아트리체에게 의문의 문자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하고, 그것이 곧 그녀의 악몽과도 같았던 슬픈 과거와 연결되면서 플롯은 더욱 풍부해진다. 범인이 그녀에게 있었던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냈었던 이유 또한 범행동기와 이어지면서 완벽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저자인 우르줄라 포츠난스키는 청소년 스릴러로 유명한 작가인데, 이 작품이 처음으로 쓴 성인 스릴러라고 한다. 앞으로 펼쳐질 베아트리체와 플로린 형사의 다음 시리즈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