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의 죽음 니나보르 케이스 (NINA BORG Case) 3
레네 코베르뵐.아그네테 프리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에서 커다랗게 진행되는 플롯과 별개로 이 작품의 스토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두 자매 사이의 질투에서 비롯된 파국이다. 작품의 초반에 오디오 파일로 보여지는 짧은 동화가 전체 이야기의 핵심인 셈이다. 스탈린 치하에서 구전되던 스탈린 동화이다. 나이팅게일도 노래를 멈추게 만들 만큼, 굉장히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던 두 자매가 있었다. 자매 중 하나가 황제를 위해 노래를 불렀고, 그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킨다. 그러자 화가 난 다른 자매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황제가 그 노래를 듣고 자신의 나이팅게일이 되어달라고 애원한다. 그녀는 그 대가로 사악한 자매의 머리를 얹어 오라고 요구하고, 황제는 아름다운 노래 뒤에 사악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자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전체를 다 죽이고 만다. 그리고는 그것이 바로 네 질투의 대가라고 말하며, 남은 자매를 쫓아낸다. 오이디푸스 상황에 기인한 질투라는 감정은 일차적 대상과 독점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소망이 다른 대상에게로 옮겨진 것이다. 욕구 충족이나 관심만이 아니라 대상의 사랑을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며, 또한 경쟁자를 제거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소망도 포함된 무서운 감정이다. 그래서 질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항상 비극으로 진행되어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슈트케이스 속의 소년', '보이지 않는 이웃의 살인자'에 이어 〈니나 보르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덴마크 적십자 소속 간호사 니나 보르가 주인공인 시리즈이지만, 주인공이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는데 그 특별한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형사나 경찰이 아닌 주인공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시의성 강한 소재에 관심이 많은 작가들의 특성상 인물보다는 스토리 자체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도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현재의 덴마크와 1934년 우크라이나의 이야기가 병렬식으로 교차 진행된다. 우크라이나에서 망명한 나타샤가 덴마크인 약혼자의 폭력에 시달리다 딸을 지키기 위해 그를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교도소에 구류되어 있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의 심문 요청 때문에 경찰청으로 이송되던 중 여덟 살 난 딸 리나를 데려오기 위해 탈주를 하고, 덴마크 경찰과 보안정보부, 우크라이나 특수 경찰, 그리고 마녀라 불리는 제3의 인물이 그 뒤를 쫓는다. 그녀의 딸 리나를 돌보고 있던 덴마크 적십자 소속 간호사 니나는 보안정보부의 쇠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긴박감 넘치는 추격전이 현재 벌어지는 스토리의 대부분이다.

 

올가는 이제 겁이 났다. 아버지가 하르키우의 집 밖 베란다에 함께 앉아서 올가를 '높으신 공주님'이라고 부르고 어머니를 '뜰에서 가장 예쁜 꽃'이라고 했던 것은 옛날 옛적의 일 같았다.

지금 아버지는 올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오늘 보니 아버지의 진짜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미소를 지으며 사랑을 주던 사람이 이튿날에는 증오를 퍼붓기도 한다. 잠깐만 등을 돌리면 감정이 바뀌고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1934년의 우크라이나는 스탈린 치하에서 기근에 시달리는 올가와 옥사나, 두 자매와 그들의 가족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회 기반시설의 붕괴 또는 전쟁으로 인한 기존의 기근과 달리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대기근은 스탈린 치하의 정치적, 행정상의 경정으로 비롯된 기근이었다. 대기근으로 250만 에서 350만 명 사이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이것을 홀로도모르라고 한다. 농산물 수출로 급속한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하려던 스탈린의 농장 집단화 정책 때문인데, 정부는 반발을 불러 일으키는 농장을 습격, 곡물들을 모조리 가져간다. 극중에도 올가의 할아버지가 소를 도살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당시 농민들은 집단농장에 농사일에 필요한 소들을 내놓느니 차라리 도살했고, 그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은 급격히 줄어들고, 결국 참담한 결과인 대기근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올가와 옥사나의 사투는 당시의 처참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것은 혹독한 기근과 밀고, 추방으로 이어지는 스탈린 체제에서 가족을 포함해서 이웃마저 피로 물들이고 만다. 질투와 증오로 점철되는 두 자매의 관계는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과거보다 더 많은 분량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스토리보다도 훨씬 더 몰입 감이 뛰어날 정도로 말이다.

 

사실 나타샤가 탈주를 감행한 이유와 그녀를 쫓는 마녀의 정체, 그리고 마녀가 왜 그녀와 딸을 노리는 것인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경찰은 나타샤가 그녀의 전 남편과 약혼자를 죽였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지만, 그녀의 사정 또한 그다지 보여지지 않고, 그녀의 심리 상태도 그다지 친절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아, 독자로서 캐릭터에게 감정 이입도 어렵다. 니나가 불법체류자를 비롯해서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들에게 의료, 거주할 곳 등을 지원해주는 간호사이긴 하지만, 나타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녀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도 행동에 대한 동기가 설명되지 않아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많은 부분 물음표를 던지는 스토리의 대부분은 나타샤의 이야기와 교차되어 진행되는 과거 올가와 옥사나의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실마리가 풀리지만, 그건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퍼즐처럼 짜맞춰진다.

 

1930년대에 있었던 우크라이나의 끔찍한 역사가 그저 과거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게 되는 후반부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한동안 뉴스 화제였던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과거의 일들이 현재 정치가, 언론인, 재벌 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스탈린 치하의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도시와 농촌의 빈부 격차가 현재에 어떻게 반영이 되었는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한 여성의 삶을 궁지로 몰아갔는지, 이런 사회적 부조리 속에서 어린 싱글 맘이 딸을 지키며 살아남는 과정은 그야말로 섬뜩하고, 슬프고, 장대한 한 편의 서사로 펼쳐진다. 여타의 스릴러 장르 소설들에 비하자면, 주인공 캐릭터가 전반에 드러나지 않아 다소 미약해 보이고, 긴장감과 스릴감이 조금 떨어져서 루스 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 과거의 굴레 속에서 아직도 살아가는 인물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사회파 미스터리의 색다른 경지가 아닐까 싶다. 니나 보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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