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킬러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36
제프 린제이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영화 <방황하는 칼날>을 보았다. 긴박감 넘치는 구성에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내내 분통이 터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실제 청소년 범죄가 일어나면 법의 보호를 받는 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는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며 가벼운 보호 처분으로 적당히 마무리되고, 가해자들은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당당하게 생활한다. 하지만 피해자는 평생을 아픈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곤 한다. 왜 피해가족이 죄인처럼 숨어 살아야 할까? 우리가 만약 피해자의 부모라면 극중 딸을 잃은 그처럼, 범인에게 복수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숱한 영화나 소설에서 미성년자 처벌의 맹점과 개인의 사적인 복수에 대해서 다루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한 가지이다. 비단 미성년자 처벌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범죄에서건 사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건 솔직히 피해자가 아닌 경우가 다반사이다. 법률에도 명기되어 있다고 한다. 사법은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러니 가해자는 벌을 주기 위해 정중히 보호하지만, 피해자는 언론에 두 번 세 번 죽임을 당하든 말든 그냥 방치되고, 수사 상황은 고사하고 사건에 관한 정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가해자가 지은 죄라는 게, 피해자한테 해를 가한 게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법을 위반한 것,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것이라 처벌을 하는 거라나. 이러니 안타깝지만 빽 없고, 힘없는 피해자들은 억울하고 분해도 그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영웅이다. 법이 처벌해주지 않는 범죄자들을 응징해서 직접 처벌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법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개인의 사적인 복수를 허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처럼 평범한 독자들은 극중에서라도 법의 테두리를 무시하고, 범죄자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줄 수 있는 우리 만의 영웅을 꿈꿀 수밖에 없다. 우리가 허구의 이야기에 열광하고, 위안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 않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하고 싶어서.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 속의 안티 히어로들처럼, 우리를 열광케 하는 그, 덱스터가 돌아왔다. 그의 직업은 경찰 소속 혈흔 분석가이지만, 그는 세상의 '연쇄 살인범'을 대상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캐릭터이다. 살인을 저지르지만, 사회의 악을 숙청한다는 의미에서는 '안티 히어로'로서의 최고의 영웅이라 하겠다. '달콤한 킬러 덱스터' 2004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로 시작해서,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 '어둠 속의 덱스터', 그리고 '친절한 킬러 덱스터'에 이어 다섯 번째 시리즈이다. 소설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TV드라마 덱스터는 무려 시즌 8까지 나오면서 선풍적인 열풍을 일으켰었다. 특히나 이번 다섯 번째 작품에서는 잔혹한 킬러인 덱스터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가 딸 바보 아빠가 되면서 시작한다. 극악한 살인을 저지르는 킬러가 딸 아이에게 하트 섞인 눈빛을 보내는 달콤한 캐릭터가 되다니, 초반에는 적응하기가 어려워 다소 어리둥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시리즈를 찬찬히 돌이켜본다면, 그가 뜬금없이 딸 바보가 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리즈이므로, 그 동안의 시리즈를 전혀 보지 않았다고 해도 이번 작품을 읽는데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전작을 읽었었더라면 그 재미는 당연히 몇 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전작들을 다시 다 읽어볼 수는 없기에, 첫번째 시리즈인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를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다. 국내에 2006년에 출간되었던 책이라, 꽤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그제야 덱스터가 이런 인물이었지, 하고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이번 신작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 덱스터가 어떤 캐릭터였는지 잠깐 정리해보자.

 

 

덱스터의 현재 직업은 마이애미 경찰 과학수사팀의 혈흔분석가이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경찰 소속 혈흔분석가이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연쇄살인마들만 골라서 처단하는 또 다른 연쇄살인마이다. 그는 왜 살인을 즐기게 되었으며, 또 왜 무고한 사람들은 죽이지 않고, 연쇄살인마들만 찾아내어 죽이게 되었을까? 대답은 어린 시절에 있다. 무려 세 살 때 엄마가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고스란히 지켜본 트라우마가 살인충동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전기 톱, 날아다니는 시체 토막들.. 그리고 피 속에서 덱스터와 그의 형 브라이언은 그 모든 걸 보면서 이틀하고도 반나절을 보내야 했다. 그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무사히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아직 어리니 곧 정상으로 회복될 거라고 했지만, 둘 다 그 사건으로 인해 괴물이 되어버린다. 스스로 내면에서부터 올라오는 살인 충동을 제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자든 아이든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브라이언과 달리 덱스터는 양아버지 해리의 가르침 덕분에 조금 다른 살인마로 자라난다. 어린 그가 외상성 사건의 피해자로 살인 충동을 가지고 있는 걸 알게 된 해리는 어린 덱스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좋은 아이란다. 넌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분이야. 아마 제어가 되지 않았을 거다.

그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 테니, 순순히 끌려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넌 너를 제어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 누구를 죽여야 할지 선택하는 것.

 

살인충동을 제어할 수 없다면, 그 충동을 좀더 좋은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다고 알려준 것이다. 세상엔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많다고, 그렇게 덱스터는 양아버지를 통해서 적절한 목표물을 고르는 법을 배우고, 완벽한 일 처리와 깔끔한 뒷정리에 대해서도 배운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고, 상대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까지 말이다. 그렇게 덱스터는 양아버지 해리의 엄격한 가르침에 의해긍정적인 살인마로 살아서 지금에 이르렀다. 어릴 적 겪은 입에 담기도 끔찍한 공포로 인한 트라우마로 살인 충동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을 세상의 어둠을 숙청하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형 브라이언은 해리의 방식과 같은 통제 없이 어른이 되었기에, 덱스터와는 다른 살인범이 되어 가끔 덱스터 앞에 나타날 때마다 문제를 일으킨다.

 

물론 긍정적인 살인마이긴 하지만 덱스터가 평범한 영웅은 아니다. 그에겐 양심이나 수치심, 죄책감이 없고, 사람들을 사귀고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동물들조차 그를 싫어해서 애완동물도 기를 수가 없다고 하니 뭐 말 다했지 않은가. 그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 무엇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 자신조차 절대 사랑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사실 또한 말이다. 하지만 그는 리타라는 활동적이고 생기가 넘치는 여자를 만났고, 그녀의 두 아이 애스터와 코디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다섯 번째 시리즈에 이르러 그들 두 사람의 아이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그가, 자신의 아이라고 해서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마음이 따뜻하고, 자상한 아빠로 변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가는 사람들이라면, 첫 번째 시리즈를 다시 떠올려보아야 한다. 덱스터라는 캐릭터가 우리에게 당도한 첫 번째 장면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한 신부를 찾아가 응징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니야. 어떻게 애들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적어도 너처럼 아이들을 죽이진 않아. 그저 너 같은 놈을 찾아 제거할 뿐이지" 라는 그의 말은 그가 평범한 사람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이들에 대해서만은 꽤 관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리타의 두 아이 애스터와 코디를 만났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 그는 아이들을 좋아했고, 아이들 또한 덱스터를 믿고 따랐다. 세상에서 자신에게 애정을 보내는 존재를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존재가 애완동물과 아기들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이 사람이 자신을 진짜 좋아하는지, 아니면 그런 척 하는지 그 누구보다 빨리 캐치한다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이 한 순간에 죽어버린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한 냉혈한 킬러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아이들만은 상처 주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자신과 닮은 아이라니, 얼마나 감회가 새롭겠는가.

 

릴리 앤이 태어났다. 나는 달라지고 싶다.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를 지키고 싶다. 무릎에 앉히고, 아이에게 크리스토퍼 로빈이나 닥터 수스의 책을 읽어주고 싶다.... 그렇게 키운 내 아이가 불치병도 고칠 만한 아름답고 경이적인 교향곡을 쓰는 어른이 되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과 다른 내가 되어야만 한다. 그럴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으니까.

더는 어둠 속의 덱스터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그의 딸이 시작하면서부터 그에게는 세상이 갑자기 황홀해진다. 모든 것이 새롭고 경이로워지고, 인생 자체가 변하게 된 것이다. 그는 릴리 앤을 보면서 과거의 끔찍한 덱스터는 이제 사라지고, 그 동안의 어둡고 끔찍한 기쁨들은 모두 그 순간으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그렇게 세상이 만만하던가. 이제 살인을 그만두고 예쁜 딸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아빠로만 살고 싶었지만, 음험한 어둠 속의 속삭임은 끊임없이 살인을 부추기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 속에 식인 뱀파이어들의 등장, 그리고 골치덩어리 형 브라이언까지 나타난다. 그는 과연 살인의 희열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날이 발전하는 살인마들의 만행을 그저 모른 척 두고 볼 수 있을까? 그가 어떻게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아빠로서의 결심을 지키는지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가 이번 <달콤한 킬러 덱스터>의 주요 내용이다. 덱스터 시리즈가 탄생한지 10년이 되었지만, 역시 덱스터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2014년에 가장 어울릴만한 안티 히어로가 아닐까? 실제 이런 캐릭터가 있어 사회의 지저분한 무리들을 치워낸다면, 세상이 좀더 깨끗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은 행복한 기대감이 잠을 설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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