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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자격 - 내가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가
최효찬.이미미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2월
평점 :
표지로 쓰인 이수동 화백의 행복나무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목적이 바로 행복 아닌가. 사실 공부를 잘 하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의 학부모들이 행복하려면 공부를 잘 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자식과 부모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이란 무엇일까.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왜
점점 부모(父母)가 학부모(學父母)가 되어 가는 걸까. 멀리
보고, 꿈을 꾸라고 하지 않고 앞만 보라 하며,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은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이다.
교육 업체에서 몇 년간 일을 하다 보니, 대부분의 부모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식을 믿지 못해 무턱대고 의심부터 하거나, 반대로 자식을 맹목적으로 감싸는 경우이다. 전자는 자식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부모라서 문제이고, 후자는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도 무턱대고
덮어두려고만 해서 문제이다. 요즘 하도 비행 청소년, 가출
청소년 문제가 많다 보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우스갯 소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청소년들의 집안 사정을 조사해보면 항상 원인은 부모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 무조건 낙태를
금지하고, 출산만 권장할 게 아니라, 부모도 그럴만한
인성과 자격이 있는 지를 평가하고 나서 부모의 자격을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농담처럼 하는
말들이었지만, 어딘지 씁쓸했다. 세상이 점점 부모라는
존재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현대 소비사회의 가장 큰 불행은 서로 비교하게 만드는 '차이의 욕구'에 있다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바 있다.
현대인들은 미디어 등의 영향에 따라 '비교당하기'에 노출되어 있다. '비교하기'는 끝없이 경쟁하는 사회가 안고 있는 숙명과도 같은 덫이다. 따라서
학교와 학부모, 학생 등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은 바로
'서로 비교하지 않기'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옆집 아이는 몇 등 했던데,
너는 왜 성적이 이 모양이니>, < 저기 저 아이는 저렇게 얌전한데, 너는 왜 그리 정신이 없니> 어른들이 별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다. <누구네 아빠는 생일날 이런거 사주던데, 왜
우리 아빠는 겨우 이거 사줘?>, <재네 엄마는 이렇게 해줬다던데, 우리는 안 해?> 아이들도 자연스레 친구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한다. 비단 가족의
문제만은 아니다. 연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툼 중 가장 많인 원인도,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스스로의 아쉬움도, 타인의 행복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뭐든 그냥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지? 가 아니라 우리 아이는 대신 그림을 잘
그리잖아. 로. 친구네 아빠가 생일날 비싼 장난감을
사줬다고 하지만, 대신 우리 아빠는 나랑 하루 종일 놀아줬잖아.
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훨씬 좋지 않을까.

최근에 방영되었던 sbs 스페셜
[부모vs학부모] 라는 다큐는 아직 부모가
되어 보지 못한 내가 보기에도 사태가 심각해 보였다. 이 방송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성적으로 인해
자살로 내몰리고, 크고 작은 정신과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현주소를 보여주고, 그 원인에 대해 짚어주었다. 사실 부모들이 자녀를 입시 경쟁에
몰게 된 것은 사회가 부모의 불안을 조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학력에 의한 소득 격차, 대학서열에 의한 빈부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청년실업 삼백만
시대가 되고 보니.. 아이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걱정부터 드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행복하게 사려면 무조건 좋은 성적으로 명문 대학에 가야한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그게 부모의 의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총
3부로 진행된 이 방송에서는 그 외에도 부모에게는 아이에 대한 확신을 주고, 아이들에겐
자기주도 멘토링이 진행되기도 하고, 외국의 경우와의 차이점을 짚어보는 등 다각적인 시선으로 현 상황의
문제점을 짚어 주었다. 결론은 문제 아이 뒤에는 언제나 문제 부모가 있고, 궁극적으로 문제 부모 뒤에는 문제 사회가 있다는 것이다.
해결방안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부분은 약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알아야 할 부분들에
대해 심각성을 상기시켜주어 흥미로웠다.
방송을 봤던 탓인지, 이번
<부모의 자격>이란 책이 더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느껴졌다. 단순히 부모와 아이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었다. 흔히들 사교육은 공교육을 붕괴시키는 암적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교육은 부실한 공교육이 키웠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학부모들이 공교육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는 건
그것의 부실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버젓이 인강을 틀어주는 걸로
대체하는 교사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안이한 태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학교에선
성적순으로 좌석을 배치하고, 방과후 자율학습도 전교 석차를 기준으로 시설 좋은 독서실 제공 등 인간
가치의 평등을 교육해야 할 현장에서 입시라는 미명하에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말이다.
대신에 사교육 기관인 학원에서는 학원은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똑같은 학원비를 내고 다니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게다가 경쟁력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는 강사들이 교사들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로 증명되고 있으니 마냥 사교육을 규제할 것만도 아니란 말이다.
사실 부모의 자격을 따진다는 발상 자체가 현재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만 하더라도 부모님은 높이 우러러 봐야 하는 어려운 존재였는데, 언제부턴가 자녀가
부모를 무시하거나, 반대로 부모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귀한 자식일수록 독립적으로
키우라고 말한다. 부모로서의 욕심을 조금만 버린다면,
아이를 조금 더 믿어준다면 더 좋을 거라고. 과잉사랑이 결국 아이를 사회적 무능력자로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이다.
시작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자. 바로 우리의 아이들을
믿어주고, 기다려주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