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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 이상용 1 - 승리를 책임지는 마지막 선수
최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폴 오스터의
'선셋 파크'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야구는 삶 자체만큼이나 큰 우주이니까 좋든 나쁘든, 비극적이든
희극적이든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야구의 영역 안에 있다>라고.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두 세시 간짜리 야구 경기 안에서
모두 일어난다는 것이 키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수백만 가지의 이유 중에
말이다. 야구에선 매 순간이 '선택'이다. 사소한 선택 하나가 그날의 경기 결과를 바꾸기도
하고, 한 선수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실제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우리네 삶과 닮은 야구가 너무 좋다.
시즌 권을 구매해서 경기장에 가고, 전국 곳곳으로 원정경기 관람을 갈 정도로 야구라는
스포츠에 푹 빠져 있다. 그래서 야구에 관련된 책도 참 많이 읽었고,
가지고 있는 편인데 집에 있는 종류만 대충 어림잡아도 스무 권은 족히 되어 보였다. 그
속에 한 권 추가하게 된 것이 바로 이번에 출간된 최훈의 <클로저 이상용>이다. 스포츠 동아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인데, 평소 신문이나 웹을 통해 만화를 잘 보지 않는 나 같은 독자라면 이렇게 단행본으로 보는 것이 최고다. 무엇보다 야구팬들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이름, 최훈 작가의
카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클로저, 즉 마무리 투수이다. 대표적인 이미지로 올해 일본으로 진출한 삼성의 오승환 선수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선발 투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기는 하지만, 야구 경기를
조금만 지켜본 적이 있다면, 그 선발만큼이나 중요한 보직이 바로 마무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선발이 8이닝을 호투해도,
마지막 1이닝을 막지 못해 역전패 당하는 경기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무리 투수는 오승환 선수의 별명인 돌부처만큼이나 감정 변화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흔들리지 않아야 뒷 문을 튼튼히 사수할 수가 있다. 극중 10년차 베테랑 선수인 이상용은 느린 구석 덕분에 제대로 된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여전히 2군에서만 뛰는 선수이다. 프로선수의 세계는 냉정해서 사실 1군 선수가 부상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잠깐 2군에 내려와
있기는 하지만, 실제 2군에만 있던 선수가 1군에 올라와 뛰어난 능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다.
거기다 신입도 아니고, 10년차 선수라면 뭐.
그의 선수 생활은 아마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그렇게
2군 선수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라면.
그런데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능력이 있다. 선수 개개인의 스탯을 마치 컴퓨터처럼 기억하고
있고, 그에 따라 게임의 흐름을 보는 눈이 있는 것이다.
감독이든 선수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의 이런 능력을 알아봐 주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그 2군 투수코치가 1군으로 올라가면서 드디어
그에게도 인생 역전의 기회가 온다.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는 그 기회를 살려
1군에서도 가치가 있는 선수가 될 것인가? 앞으로 출간될 시리즈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그곳은 바로 관중들로 꽉 찬 야구장이다.
폴 오스터도 그렇지만, 또 야구 광 팬인 작가 중에 오쿠다 히데오가
있다. 그는 야구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전국을 돌며
야구장을 다니는 걸로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었다. '야구장 습격사건'과 '야구를 부탁해'인데, 이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만큼이나 흥미롭다. <내게 필요한 건 야구장,
CP컴퍼니 옷 그리고 여행. 승패 따윈 아무래도 좋아.
온 힘을 다해 뛰는 선수가 있고 그들을 마음으로 응원하는 팬이 있다면.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선수가 되어야지. 누가 다시 한번 나를 낳아줘>라는 그의 멘트를 보고 있노라면, 큭큭
웃음부터 나오지만, 아마도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것이다. 응원하는 팀이 있고, 그 팀이 승리하면 정말 기쁘지만, 사실 승패보다는 경기를 하는 그 순간의 희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야구장 특유의 공기, 선선한 바람,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머리 싸움하는 프런트, 응원가와
응원단장을 따라 하는 그 동작들.. 지금처럼 야구 시즌이 아닐 때는 손꼽아 3월의 시범경기 일정만 기다릴 정도로.. 야구 팬들은 경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열기를 기억할 것이다. 티비 중계로 보는 야구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진짜는 경기장에서 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야구를 계속 보면서 규칙들이 눈에 들어보고, 선수들의 포지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는 경기의 흐름 같은 것이 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러면서 정말 아름다운 것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의 포지션이 '유격수'인
것도 물론 영향이 있겠지만 말이다. 엄청난 투수의 제구력도 팀 내 동료들의 '수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실점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날려서 팀의 실점을 막아내는 순간,
그럴 때 그들의 아낌없는 수비 동작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 때가 있다.
마무리 투수도 어떤 의미에서는 공격보다는 방어이다. 더 이상 실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뒷문을 잘 틀어 막아서 승리를 유지하거나, 혹은
연장전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거니까 말이다. 그들의 공 하나로 다 이긴 시합이
역전패로 끝날 수도,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시합이 연장전을 넘어 역전승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클로저 이상용>이라는 이 작품이 더욱 재미있는 것이고, 최훈 특유의 유머
감각과 심플한 캐릭터들이 그 몰입 도를 더해준다. 작년
10월 시즌이 끝나고 나서 이제 언제 야구 보나.. 암담했었는데, 벌써 다음달이 3월이다.
야구가 그리운 이들이라면, 3월초 시범경기를 앞두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뜨거운 야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