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라지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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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마는, 엄밀히 말해 대부분의 추리, 스릴러 작품들이 구축하고 있는 서사는 그것 자체로 생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는 사실과 그것을 생동감 있는 이야기로 재구축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범주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 이것이 바로 할런 코벤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이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영원히 사라지다>가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물론 이 작품이 코벤의 최고 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이 최고의 페이지 터너 임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음 장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하는, 일명 히치콕 스타일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돋보인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의 글 솜씨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어. "

"앞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뒤를 돌아봐야 한다."

 

'반전의 제왕'이라는 호칭답게 전체 58장의 챕터가 진행되는 내내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반전과 폭로는 한마디로 아찔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반전 자체가 이 작품을 이루는 서사의 핵심은 아니다. 이미 <식스 센스>급의 반전에 단련되어 있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실상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평범한 우리의 주인공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숱한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의 문제. 배신과 질투와 거짓말과 진실 사이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가족 간의 믿음과 비밀, 연인 간의 신뢰와 사랑에 대한 팽팽한 긴장과 싸늘한 관계의 반복에 대한 것이다. 영웅이 아닌, 잘난 것도 없이 지극히 평범한 인물에게 닥친 말도 안되게 복잡한 상황은 자연스레 독자들로 하여금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반전은 이야기 자체로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어준다. 이 배반의 재미는 이야기 전개의 가능성이 독자에게도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지금까지 전혀 나오지 않던 설정이 등장한다면 그것에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뜬금없지 않나, 생뚱 맞은 것 같은데. 라는 느낌부터 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 얘기는 반전이 깜짝 쇼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 서사가 탄탄히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코벤의 작품이야말로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밤은 흐릿한 회색으로 덮여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곳곳에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없애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둔다. 적지 않은 이들이 새 인생을 선물 받는다. 하지만 이곳, 활기 넘치는 밤의 소굴은 그들의 마음을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손상된 상태이다. 극복하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그렇게 견디며 평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입은 상처는 영구적인 것이다.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의 균열이 깨지면서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하신 말씀 때문에 갑자기 윌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11년 동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형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이 죽었을 거라고 추측하며 살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11년 전 그가 한 때 좋아했던 이웃집 여자 친구 줄리 밀러가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무고한 여자를 살해한 범인으로 바로 그의 형인 켄이 지목되고, 언론보도와 대대적인 경찰수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체포되지 않았다. 무려 11년 동안. 만약 형이 살아 있다면 가족에게 연락을 했을 거라고 믿었던 그는, 자연스레 형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죽어가는 어머니가 네 형이 살아있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현재 그의 여자친구가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그를 사랑한다는 쪽지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그저 바람처럼 말이다. 당황한 그는 친구인 스퀘어즈와 함께 그녀를 찾아 나서고, FBI가 찾아와서 살인사건 현장에서 그녀의 지문이 발견됐다고 말한다. 이게 다 무슨 소리 인 걸까? 그리고 이어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들은, 자신이 그 동안 믿어왔던 모든 것을 부정해야만 하는 사실들이다. 과거의 진실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워낙 롤러 코스터처럼 달려가는 스토리라서, 구구절절 상세한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치밀하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을 만큼, 완벽하게 재미있다는 것.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지루한 대목도, 슬쩍 건너뛰고 싶은 부분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으로 향해 달려간다. 따라서 인물들 간의 관계와 구성은 모두 꼼꼼히 얽혀 있다. 곁다리로 이야기가 새는 대목이 전혀 없다. 물론 수많은 반전을 설득력 있게 전개 하기 위한 복선들이 지나치게 간단한 플롯에 비해 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스퀘어즈의 존재는 지나치게 만능이라 너무 이지 고잉이고, FBI의 존재나, 마피아, 유령의 존재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고 있지는 못해 중반보다는 갈등이 해소되었을 때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끝내주게 재미있다는 것.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다가 모든 설명이 이치에 닿는다는 생각이 들 때쯤 갑자기 무의미할 것만 같은, 하찮은 뭔가를 우연히 깨닫는 것. 누구라도 그냥 지나쳐버릴 만한 작은 사실들. 모든 것이 굉장히 잘못됐다는 깨달음이 찾아드는 섬뜩한 순간.

 

할런 코벤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따지고 들자면 법을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그 실수 때문에, 혹은 과거의 어느 순간이 발목을 잡아, 스스로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범죄에 연루될 수 있기도 하다. 물론 그런 비밀을 남보다 잘 감추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싶은 진실이 과연 사실인가.에 있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게 마련이니까. 개인적으로 코벤의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 20년 전, 여름캠프에 참가했던 네 명의 아이들이 숲으로 들어간다.그 중 두 명은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나머지 두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주인공은 2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라진 자신의 여동생을 찾기 위해, 사건을 다시 재조사하기 시작한다. , 20년전 여름캠프에서 네 명의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이 숨기려고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크고 작은 인물들 각자의 비밀이 쌓이고, 욕망이 얽혀 엄청난 진실이 드러난다.

이렇듯 비밀과 배신, 반전과 폭로가 코벤 작품의 키워드라면, 그는 대체 왜 이런 플롯에 유독 관심이 많은 걸까? 이유는 바로 그가 인간을 읽을 줄 아는 작가라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끝까지 읽고 나서 지루하다, 재미없다고 느끼는 소설의 경우를 한번 떠올려보자. 문장이 평범하다던가 이렇다 할 매력이나 흡인력이 부족하다던가 아니면 캐릭터가 생생하지 않다던가 등등. 하지만 근거를 제시하려 할 수록 이유를 분석하려 할 수록 결국 문제는 인물에 대한 공감 부족이 아니었던가. 우리를 만족시키는 작품이 되려면, 극적인 재미라는 장치 외에 삶에 대한 진실과 가치를 담고 있어서, 정서적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코벤의 작품은 거의 언제나 완벽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하나 할까? 아마도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누구나 자기 옆에 있는 누군가의 진심에 대해 한 번쯤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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