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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스
어빈 웰시 지음, 김지선 옮김 / 단숨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화제작은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이었다. 내가 아직도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그 해가 제 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던 순간이었고, 그때 설레 이는 마음으로 영화제에 참여하느라 내가 부산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가장 궁금했던 영화 중의 하나가 <트레인스포팅>이었는데, 다소 얌전한 취향이던 내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서, 결국 최초로 극장에서 혼자 본 영화가 되고 말았다는 기억도 남겨준 작품이다. 대니 보일의 감각적인 연출, 이완 맥그리거라는 배우의 발견, 그리고 루 리드의 음악까지.. 마약과 환각, 절망으로 얼룩진 세기말의 청년문화를 그린 내용 자체도 충격적이었기에 원작 자인 어빈 웰시에 대한 관심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데뷔작인 <트레인스포팅>을 영국에서만 백만 부 이상 팔았고 이후 출간된 <포르노>와 <필스>도 모두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98년에 출간된 필스를 이제야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2013년에 이 작품이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으로 영화화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어찌되었든 그의 작품은 영상화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안 그런 척 하면서도 사실은 이런 걸 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 대놓고 그러니까, 완전히 노골적으로 저속함을 드러내면 우리는 그걸 비웃으며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욕망의 배출구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악이 없으면 선도 없는 것처럼, 저속함이 있어야 그 반대인 청순, 고결함도 존재할 수 있는 거라고 하면 좀 아이러니 할래 나. 아뭏튼 빛과 그림자처럼 어쩔 수 없이 극단의 양면이 모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이란 얘기다.
어빈 웰시는 사람들이 모른 척 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끄집어내는 데 기막힌 재주를 가진 작가이다. 일명 타탄 느와르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어둡고, 익살스럽고, 매우 폭력적이다. 배경만 스코틀랜드일 뿐, 문학적으로는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같은 부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마약은 기본이고, 도덕적 가치의 혼란과 죽음, 섹스가 난무해서 아주 극단적으로 치솟는 속수무책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혐오스럽고, 음탕하고, 저속한 묘사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래서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트레인스포팅>은 관객들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스코틀랜드를 보여주었었다. 영화를 통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하고 역겨운 장면들을 초현실적 느낌으로 바꿔놓은 장면들이었던 터라 조금 받아들이기 나았을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에 영화를 보면서 내내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작품 <필스>에서는 크리스마스 무렵의 에든버러를 배경으로, 타락한 경찰이 서서히 파국을 향해 몰락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의 영화도 꽤나 인상적이다. 역시 배우의 비주얼이란 인물들이 끊임없이 바닥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수긍내지는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모양이다.
에든버러 경찰서의 브루스 로버트슨 경사는 인종 차별, 권력 남용, 살인, 절도, 협박, 강간, 거짓말, 마약, 불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저지르며 거리를 누비는, 말 그대로 갈 때까지 간, 타락한 경찰이다. 경사에서 경위로의 승진을 꿈꾸는 그는 살인 사건을 맡지만, 정작 사건 수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자신이 승진하는데 라이벌이 될만한 동료들에 대한 중상모략과 이간질, 동료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상관과 친구를 궁지에 몰아넣고, 처제와 섹스를 즐긴다. '막장'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는 처절하게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코스를 달려가는데, 그 속에 있는 당사자만 모른다는 그런 얘기다. 온 세상에 사랑과 축복이 가득한 크리스마스에 그는 결국 파국에 이른다. 그러나 그 누구를 탓하랴. 그렇게 막 되는대로,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 버린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이니, 책임을 질 사람도 자신밖에 없는 것을.
<게임은 우리가 일을 버텨낼 유일한 방법이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보잘것없는 허영과, 나름대로 보잘것없는 자부심이 있다>는 그의 자부심은 세상 만사 모든 것을 다 게임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어떤 새끼나 다 아킬레스건이 있고, 나는 내 지인들의 아킬레스건을 으레 기억해둔다. 그들의 자아상을 허섭쓰레기로 뭉개버리는 무언가. 그렇다, 그것들은 모두 언젠가 이용할 수 있도록 저장된다>고 생각하는 그는 언제나 누군가의 약점을 기억했다가 그걸 적시에 이용하고 써먹는다. 그는 <경찰봉과 방패를 들고, 국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찢어진 주둥이와 돼먹지 못한 태도로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버릇없는 쓰레기들을 두들겨 패서 납작하게 만드는 생각에 기분>으로 한껏 달아오른다. 그는 이런 세상을 '멋지다'고 여긴다.
구토와 배설물로 가득한 세계. 마치 더럽혀진 육체와 부패한 영혼을 묘사하듯 이 작품은 시종일관 '지저분함'을 표출한다. 브루스는 끊임없이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데, 어쩌면 그도 은연중에 그곳이 자신이 머물고 싶어하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망각이란 떨어질 데까지 떨어지고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어쩌면 브루스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모두 그냥 갈 데까지 가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우리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을 증오한다. 더 나은 누군가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분노를 지킨다> 페이지 중간을 가로지르는 촌충의 목소리와 브루스의 비정상적인 정신세계는 가끔은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또 가끔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도 가끔은 불량식품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나. 나쁜 것을 통해서 야만 볼 수 있는 진실도 있는 법이니까. 우리는 이 머리 아픈 페이지들 속에서 브루스에 대한 여러 가지 비밀을 엿볼 수 있다. 동생의 죽음과 아버지의 학대, 자신을 버린 아내, 조울증과 편집증... 지독하게 쓰레기 같은 놈이지만 끝내 연민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로 만들어버리는 어빈 웰시의 솜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모든 파멸은 재미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누구나 가끔은 나쁜 짓이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어빈 웰시의 작품을 만나보자. 아마 당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그곳으로 데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