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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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챙겨야 할 부분도 많고, 계획을 세우고 새로 진행해야 하는 일도 많고 해서 너무 몰입해 읽어야 하는 무거운 책들은 좀 미루고 있다. 이런 저런 일들로 피곤해진 나의 머리를 쉬게 하기 위해 가벼운 작품들을 주로 읽고 있는데, 그래서 꺼내든 책이 바로 이 책, 닉 페어웰의 <GO>였다. 시간은 밤 열 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고, 하루 종일 누적된 피로와 지친 머리로 인해 나는 살짝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머리 쓰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어 든 것이었으므로, 책을 읽기에는 가장 나쁜 자세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히고, 발은 반쯤 다른 의자에 걸쳐 올리고, 고개를 비스듬히 튼 자세 말이다. 책을 대하는 가장 성의 없는 자세로,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별한 직업도 없고,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지도 않은 29살 젊은이의 독백이 정돈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졌고, 나는 설렁설렁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문제의 페이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쩌자고 이런 장면이, 이런 작품에 등장한단 말인가. 하면서 나도 모르게 흐트러져 있던 자세를 바로 고쳐 잡기 시작했다.

 

문제의 그 장면은 바로 이것이다. '독서와 작문 교실'에서 시 외곽에 사는 아이들에게 독서를 가르치기 시작한 두 번째 시간에, 그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하나 보여준다.

 

"이건 SF영화야. 영화 제목은 <화씨 451>"

나는 다시 트뤼포에 의지한다. "이 미래의 소방수들은 불을 끄지 않아. 책을 불태우지. 왜냐하면 책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다고 여기거든. 화씨가 무엇인지는 아니?.... 영화 제목 화씨 451은 책이 타기 시작하는 온도야."

 

무슨 영화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사랑영화'라고 대답하는 그 대목을 보면서, 나는 그가 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한 순간 알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나를 감..시켰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으며, 그의 삶을 이..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의 <화씨 451>이라는 영화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쓴 동명의 SF소설을 바탕으로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이 1963년에 만든 영화로 책이 금지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 것이 금지된 미래, 그러니까 책을 보려면 몰래 벽에 숨겨서 봐야 하고, 누군가에게 발각되면 방화수가 출동해 책들을 모두 불에 태워버리는 그런 시대이다. 원작에 비해 영화가 엄청나게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짠하고, 울컥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참 오래 남았던 작품이었다. <GO>에서도 언급되는 시람 들이 좋아하는 책을 외우면서 호수 주변을 걸어 다니는 장면뿐아니라, 수많은 책들이 발각되어 거실에 잔뜩 쌓여 불태워지는 것을 보다 결국 그 불꽃 속으로 몸을 던졌던 노부인도 기억에 오래 남아 있던 영화의 장면이었다. 아무런 감정 없이 책들을 소각시키는 방화수들에게 "이 책들은 살아 있어. 내게 말을 한다고."라고 말하던 노부인의 눈빛을 나는 너무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그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남아 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책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고백"이라고 해석하는 <GO>의 주인공이 그 순간부터 다르게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너무도 대충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살짝 미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전형적인 루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별 생각 없는 방황하는 젊은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야 문득 든 것이다.

 

"이게 바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야. 이걸 위해 싸워야 하는 거야.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정말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여러분을 숨 쉬게 만들고, 쓰고 싶게 만드는 걸 기억하는 거야.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는 불을 가져야 해.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거기에 삶이 거칠게 섞여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해. 자신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을 느껴야 해.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물을 불태울 수 있어야 해. 그게 바로 우리의 생존에 관한 것이거든,"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을 나가면서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본다. 이 작품을 '사랑 영화'라고 소개하는 선생님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이 자신을 이해할 거라고, 앞으로 책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거라고 확신한다. 잠깐씩 이렇게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 외에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바에서 디제잉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젊은이가 이런 가치관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나는 놀라움과 희망을 보았다. 그는 극 중에서 매일 같이 소설을 쓴다. 밤을 세워 수십 페이지를 쓰기도 하고, 자신이 대체 뭘 쓰는지, 출판이 될 수나 있을지 기약도 없고, 방향도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매일, 꾸준히 하는 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대한 내 유일한 충고.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 글자. 넌 이미 알고 있지, 모든 게 엉망일 때 두 글자로 된 이 단어를 기억해. GO. 글을 써, 그림도 그려, 사진 찍어, 춤춰, 연기해, 노래해. 그렇지만 모든 게, 모든 게 잘못될 때는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만 기억해. GO. , 앞으로 가. 한 번 해보는 거야.

 

‘GO’라는 심플하고도, 직설적인 제목의 의미가 바로 이런 거였다. 포기라는 건 삶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형태의 죽음이니까. 현재에 안주하고, 실패에 낙담하는 건 쉽지만,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건 어려운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한번 부딪혀보자.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가만히 멈춰 있는 것보다는 앞으로 가보는 게 진정한 삶을 누리는 거라는 걸 이 작품은 알려준다. 가장 평범하고, 쉬운 방식으로. 삶이란 누구에게나 좋은 순간도 있고, 나쁜 순간도 주어진다. 최악의 상황만 계속 이어지더라도,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만 떠올려보자.GO. , 앞으로 가.” 까짓 것 그냥 해보는 거다. 어차피 한번뿐인 내 인생 아닌가.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은 바로 내가 앞으로 나아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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