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망아지.불만의 겨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존 스타인벡 지음, 이진.이성은 옮김, 김욱동 해설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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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난 비채의 모던&클래식 세 번째 작품은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으로 잘 알려진 존 스타인 벡의 마지막 작품인 <불만의 겨울> 그리고 그의 초기작인 <붉은 망아지>가 함께 수록된 책이다. 특히나 <불만의 겨울>20여 년 만에 현대적인 한국어로 새롭게 완역된 거라 존 스타인 벡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선물이 될 것 같다. <분노의 포도>가 대놓고 미국 자본주의를 비판했다면 <불만의 겨울>에선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조금 더 은연중에 비판적인 내용을 풍긴다. 아무래도 경제대공황기를 배경으로 했던 <분노의 포도>에 비해 이 작품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인 비판 외에도 인간이 내면에 대한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마련인 '불만'이라는 감정에 대한 보편적인 갈등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고전을 어려워하거나 재미없어하는 그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만하다는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천했다는 걸로 잠깐 화제가 되었던 스타인 벡의 <붉은 망아지>부터 살펴보자면, 열살 소년이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붉은 망아지의 죽음을 통해서 나름의 인생을 배워가는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4부작으로 구성된 중편이지만, 분량이 짧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 같은 느낌이다. 특히나 이 작품은 스타인 벡 특유의 유머 감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더 유쾌하고 재미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망아지를 사주는 것도, 총에 실탄을 넣고 쏠 수 있게 되는 것도 모두 나이와 조건을 두어 제한을 두는 아버지에 대한 어린 조디의 마음이 이렇게 표현되고. <이 년은 기다리기에 너무 긴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주는 모든 선물에는 그 선물의 가치를 떨어 트리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달렸다. 아주 훌륭한 통제 방식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망아지가 죽고 나서 두 번째 망아지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 걱정하는 조디에게 위로라고 던지는 빌리의 마음은 이렇게 표현된다. <조디가 호흡곤란으로 죽어버린 빨간 망아지 가빌란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빌리도 알고 있었다. 빨간 망아지가 죽기 전에 빌리는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사실이 빌리에게서 예전의 자신감을 빼앗아갔다> 라고. 그래서 그는 괜히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면서 망아지를 돌보겠지만, 자신이라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라고 말이다. <그는 잃어버린 자신의 특권을 생각하며 기분이 언짢아졌다. 빌리는 궁색하게 덧붙였다> 라는 대목을 잃으면서 심각한 표정의 조디와 그를 걱정하지만 겉으로는 퉁명스런 빌리의 얼굴이 그려지는 것 같아 큭큭 웃고 말았다. 혹시라도 고전이 따분하고 지루할 거라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완... 오해다. 이런 대목들을 보고 있자면 두꺼운 분량의 페이지도 재미있어 하며 쓱쓱 그냥 넘어가고 말 테니 말이다.

 

저녁식사는 통닭구이가 훌륭하다며 외치는 감탄사와 그저 먹을 만할 뿐이라고 부인하는 감탄사의 연속이었다. 엘런이 모든 것을 다 기록할 듯한 눈초리로 우리의 손님을 살펴보았다. 머리와 화장의 세부적인 것에서 하나하나까지. 그 모습에 나는 여자들이 정말 어렸을 때부터 세밀한 관찰을 통해 자신들이 직감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초를 쌓는다는 것을 알았다. 엘런은 내 눈을 피했다. 자신이 결정타를 날린 것을 알고 있었고 나의 복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좋다, 나의 잔인한 딸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를 해주마. 나는 잊어버리겠다.

 

스타인 벡의 마지막 작품인 <불만의 겨울>은 조금 더 재미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에 나오는 첫 번째 대사에서 비롯된 불만의 겨울이라는 매력적인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은 중편이다. 한때는 내노라 하는 가문이었지만 아버지 대부터 탕진하기 시작한 재산은 주인공 이선 대에 내려와서는 집안 형편이 말도 안 되게 나빠진다. 덕분에 이선은 좋은 대학을 졸업해놓고도 식료품 가게에서 점원 노릇을 하는 위치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아내인 메리는 그의 무능과 가난을 탓하고, 아들 또한 아버지가 잘 나가는 직업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안팎의 압력으로 그는 가장으로서 체면도 살리고,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기로 결심을 하고 물질적인 성공을 거두겠다고 다짐한다. 여기서부터 도덕적인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선은 물질적인 성공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어차피 결과만 좋으면 그만 아닌가. 다른 부자들도 깨끗한 방법을 통해서만 부를 이룩한 건 아니지 않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결과만 좋다면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나?

 

몰락한 가문의 후손인 이 남자의 도덕적인 갈등을 따라가는 내면 묘사는, 지금 현대에 가져와도 고스란히 감정 이입이 될 만큼 공감대를 형성한다. 기존 집안의 내력을 아는 이들은 옛 영광을 되찾으라고 부추기고, 가족들은 돈이 없는 가장의 무능력을 비난하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만 도덕적이고, 정정당당하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겠는가 말이다. 스스로를 합리화시킨 그는 자신이 일하던 가게의 주인을 불법 이민자라고 고발해서 가게를 인수하고, 술주정뱅이인 친한 친구를 속여서 땅을 빼앗는다. 원하는 것만 얻으면 그만이다.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이렇게 물질 만능 주의에 대한 맹신은 자본주의의 기본 가치와도 부합하기에, 사실 그를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도덕적 양심만 지킨다고 가문이 부활할 수 있는 것도,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도, 그에게 일자리와 양식을 주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분명 예년과는 다른 해가 있는 법이다. 하루가 다른 날과 다를 수 있듯이 기후와 동향 그리고 분위기가 다른 해 말이다. 올해 1960년은 변화의 해였다. 비밀스러운 두려움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잠재되어 있던 불만이 서서히 두려움으로 변하는 해. 내게만 아니 뉴베이타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 지명을 곧 앞둔 데다가 불만이 분노로 변하는 분위기였는데 분노는 흥분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불만이 분노로 변하면서 어떤 행동이든 폭력적일 수만 있다면 그 행동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고자 전세계가 동요와 불안으로 들썩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선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나쁜 행동에 대해 처벌을 받아서가 아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자신의 십대 아들을 보면서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듯이 그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아들 앨런은 유명 연설을 짜집기해서 글짓기 콘테스트에 입상하지만, 표절 행위가 밝혀졌을 때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아쉽게 사실이 발각된 것을 억울해할 뿐이다. 나쁜 행동을 해놓고도 자각은 커녕 타인을 속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로서 절망감에 빠진 것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 있는데, 어찌 아들을 비난할 수 있겠냐 말이다. 도덕적 기준을 벗어난 수단과 방법이 성공이라는 목적을 정당화해줄 수는 없다. 그 어떤 경우에라도. 물론 현대 사회에서는 떳떳하지 못한, 이름 뿐인 영광을 성공이라 부르는 사회 고위층이 허다하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성에 대한 부패, 도덕적인 타락, 성공에 대한 위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부도덕은 비단 작품이 쓰여진 미국 사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특성상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맹신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겨울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봄이 오듯이, 춥고 어두운 계절이 있으면 따뜻하고 밝은 희망의 계절도 언젠가는 온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스타인 벡의 이런 주제 의식도 참 좋지만, 독특한 묘사와 은근한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 <불만의 겨울>에서는 이런 대목들이 기억에 남는다. <월요일이 되자 배반의 봄이 겨울을 향해 홱 되돌아서더니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나무들의 연한 잎사귀를 차갑게 내리는 비와 으스스한 돌풍으로 갈가리 찢어버렸다> 라던가 <이 친구들은 두려움이나 거리낌 없이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에게는 그녀가 바로 잘 받아주고 판단하지 않으며 침묵을 지키는..... 일종의 안데르센의 우물이었던 까닭이다> 이런 대목들. 고전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장들이 페이지마다 넘쳐나서 머릿속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아마도 고전이 따분하다고 많은 이들이 여기는 이유는 두툼한 분량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반짝이는 문장들과 행간에서 넘쳐나는 보석 같은 깨달음은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만한 가치를 한다. 아마도 현대 소설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그러니까 밑줄 긋거나 베껴 써보고 싶은 페이지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될 거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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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1-1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인벡은 아무래도 현대작가라서 문장이 간결하니 영어교재에도 많이 인용되더군요.저는 장편에 부담을 가지는 이들에게 스타인벡의 중단편을 권하고 있어요.<붉은 망아지> 외에 <진주>,<생쥐와 인간>은 재미도 있고 기분좋은 뒷맛이 있더군요.

피오나 2013-11-13 14:1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영어교재에도 자주 인용되는 작가인줄은 몰랐어요. ㅎㅎ '진주'와 '생쥐와 인간'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기분좋은 뒷맛이 있다고 하시니 궁금해집니다.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