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고 차가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타일 바닥을 밟는 소리가 아작, 하고 단호하게 들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들어온 구멍으로 다시 나갈 수 없음을, 모든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어쩔 수 없지, 악을 없앨 방법은 악밖에 없는걸. 죽느냐 죽이느냐, 둘 중 하나라고.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 <짚의 방패>에도 이와 유사한 윤리적 질문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손녀딸을 살인자에게 빼앗긴 재계의 거물이 그를 죽이면 100억 원을 주겠다고 현상금을 내건다. 엄청난 현상금 덕분에 범인은 전 국민의 타겟이 되어 버리고, 목숨의 위협을 느낀 범인은 경찰서에 자수를 한다. 문제는 그를 검찰에 송치하기 위해서 경시청으로 이동을 시켜야 하는데, 과연 그들은 무사히 범인을 호송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법적인 교육을 받은 경찰관부터 간호사, 정비사 등.. 그러니까 범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100억이라는 돈 때문에 그를 죽이려고 달려든다. 경찰에서는 범인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서, 범인을 안전하게 지키며 호송을 해야 한다. 그를 경호하는 과정에서 경찰, 일반일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악을 없앨 방법은 악밖에 없을까?"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과연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경호를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 대상이 누구든 경호 대상을 지키면 된다는 직업적인 소명감이 이런 경우에도 과연 옳은 일인가? 살인교사는 분명히 나쁜 죄이지만, 아무 죄 없는 어린 여자 아이를 학대하고 죽인 죄에 비할까? 이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면, 누구라도 범인을 죽이고 싶은 분노가 생기지 않을까? 게다가 범인은 동종의 범죄로 복역하다 가석방 중이었다. 법적인 처벌을 받았지만, 결국 또 사회에 나와서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결국 법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 아닐까? 끔찍한 악이 팽배한 부조리한 세상에서, 법이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 직접적인 응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물론 무분별한 개인적 복수로 사회가 무법천지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란 무엇인지,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다들 지옥에 있다고 하지. 모두 너 때문에 내가 지옥에 있다고 욕하는데, 너 역시 지옥에 있다고 아우성을 쳐. 그러면 이게 다 누구 책임일까."
오현종 작가의 <달고 차가운>이라는 작품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 것으로 도덕적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 어린 딸에게 성 매매를 강요하고 가족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악마 같은 사람이라면, 죽어도 상관없다라는 것이다. 그대로 두면 더 나쁜 짓을 저지를 것이고, 또 다시 어린 소녀를 지옥 같은 풍경 속으로 밀어 넣을 테니까, 그런 나쁜 짓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벌어진 살인이니 정당하지 않는가.라고. 악을 없애기 위해서, 또 다른 악으로 대항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니체의 그 유명한 경구를 떠올려보자.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한다고 했다.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그를 들여다보게 되니까 말이다. 따라서 피해자의 절망감과 분노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더라도, 복수를 위한 악마적인 행동에는 보편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악이라는 것은 한번 빠지면 좀처럼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든 구렁 같은 것이니까. 이 작품이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악을 없애기 위해서 악으로 대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악이 아니었다면??
대학 입시에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재수 학원에 다니는 강지용은 학원에서 민신혜를 만난다. 그녀와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지용은 유치원 원장인 어머니와 고시 출신 공무원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평범한 자신이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특별한 아들이 되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어머니의 구속과 기대가 부담스럽고 속물같고 싫다. 그래서 차라리 부모가 없었다면, 고아였다면 좋겠다고 상상했던 적이 있다. 신혜는 술집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성 매매를 강요했다고 한다. 마녀가 사는 집에서 달아나고 싶지만, 지금은 배다른 어린 여동생에게 그녀가 무슨 해를 끼칠지 몰라 달아날 수도 없다고. 진짜 지옥이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난 항상 지옥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고 말한다.
지용은 그녀를 울게 만드는, 그 괴로움으로부터 그녀를 구출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생각했던 자신의 부모가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만, 대신 다른 사람의 부모를 사라지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차피 나에겐 타인이고, 어차피 그녀는 죽어 마땅한 짓을 저지른 악마 같은 여자이니까. 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그러니까 넌 아무것도 하지마. 내가 널 지옥에서 구해줄게. 내가 네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줄게. 악을 없애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어. 죽느냐. 죽이느냐.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으면, 사랑하는 신혜가 죽을 것처럼 괴로우니까. 그래서 그는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나기 전에, 신혜의 엄마인 호프집 여사장을 살해하고 강도의 소행으로 위장하는데 성공한다. 자,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평범하다. 그러나 오현종 작가는 전제를 뒤집어버리는 선택을 한다.
"내가 아니어도 그랬을 거잖아. 넌 누구라도 죽이고 싶었잖아. 그랬잖아."
그는 완전 범죄를 저질렀고, 무사히 미국으로 간다. 하지만 누나와 함께 지내면서 그는 악몽에 시달리고, 결국 중간에 신혜가 보고 싶다고 부모님 몰래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신헤의 핸드폰 번호는 없는 번호라고 확인되고, 그녀가 다닌다던 학교에는 아예 다닌 적도 없고, 그녀의 여동생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고, 교통사고로 죽었다던 새 아버지는 멀쩡히 살아있으며.. 설상가상으로 그 새 아버지라는 사람이 신혜의 애인이었다. 신혜는 그 남자와 살고 싶었고, 그걸 가로막는 존재를 없애고 싶었던 차에 지용이 대신 살인을 저질러 준 것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지용이 저지른 살인에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존재했던 토대 자체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간단하게 이것은 덧셈과 뺄셈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원인이 없어졌는데, 결과만 남았다. 그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그가 지어야 하는 것이다. 신혜를 위한 일이었다는 '선의'가 사라지자, 그가 여자를 살해했다는 '악행'만 남아버린다. 지용은 결국 신혜를 찾아서 진실과 직면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용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싶어했던 그 은밀한 욕망을 대리 충족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는 기적이 자신에게는 일어날 거라고 믿는 어머니를 혐오하던 지용은, 그러나 만약 자신에게 기적이 온다면 거절하고 싶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해서 겪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모두가 기적을 기도한다면 불운은 누구의 몫일까.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 우리는 흔히들 이런 인사를 한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바라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 끔찍하게도 무서운 이야기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일과 살인범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바라는 일, 이윤을 얻기 위해 기업 총수가 바라는 일과 힘없는 샐러리맨들이 바라는 일들이 과연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현실을 견딜 수가 없어 미쳐버릴 것만 같던 신혜가 부러워했던 지용의 일상이, 사실은 부모의 기대와 압박에 질식해버릴 지경이었던 불행한 하루였던 것처럼. 누구나 자기 기준에서의 지옥에 있으며, 내가 이렇게 불행한 이유는 타인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타인조차 스스로 지옥에 있다고 아우성을 친다면, 그렇다면 결국 이 모든 일은 누구의 책임이란 말일까.
강지용에게 달콤하고, 차가운 것과 부드러운 것은 모두 같은 의미이다.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기적처럼 얻을 수 있는 그런 요행 같은 것만 꿈꾸는 것이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불안했지만 그는 낳아 달라고 애원한 기억이 없으므로 미안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사는 속물 같은 인물에겐, 살아가는 일에는 달콤한 초콜릿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