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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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는 기사인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밑바닥까지 이미 기사인 사람이에요. 그는 자기 자신을 의의 병기로 바치겠다는 각오였지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연극'과 돈키호테이 연극 성이 전혀 다른 이유는, 연극은 배우가 자기 아닌 어떤 캐릭터를 그럴 듯하게 연기하는 것이고, 돈키호테는 그럴 듯하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속속들이 기사인 자기 자신을 그대로 나타내 보여주는데 있지요. 그의 자기 확신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대할 대 오히려 연극을 해야 되는 거지요. 타인으로 하여금 연극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돈키호테의 연극 성이라고 할까요?

 

 

충직한 하인 산초를 데리고 다니면서, 풍차를 적군으로, 이발사의 대야를 맘부리노 투구로 여기고 공격하는 돈키호테의 허무한 싸움은, 그가 가진 꿈이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매혹적이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건 허황된 꿈이나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기사가 사라진 시대에 웬 노인이 자신을 방랑기사 돈키호테라 칭하고 여관을 성으로 여기고, 허드렛일을 하며 가끔은 몸을 파는 천한 알돈자를 고귀한 레이디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그녀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여기서 방점은 그가 기사인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밑바닥까지 이미 기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돈키호테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발표한지 무려 400년이 넘었다. 서영은 작가는 이번에 마음껏 부딪히고, 두려움 없이 날아올라라!는 뜻의 멋진 제목으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새롭게 읽어낸다. 바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그 길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지역에 있는 세르반테스의 묘부터 둘시네아의 집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돈키호테와 산초, 둘시네아가 살아있는 듯한 자취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스페인을 찾는 여행객들은 곳곳에서 그림이나 조각, 조형물 등으로 돈키호테와 산초를 만날 수 있다. 두 인물이 작품 속의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마치 실제 현존했던 사람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리 곳곳, 상점 곳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스페인 광장에 가면 세르반테스의 조각상과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이 함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에겐 관심이 없고 돈키호테와 산초 앞에서 주로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작품 자체의 불멸성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는 인물들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시킨다. 이런 것이 바로 글의 힘으로 현실이 달라지는 그런 순간이다. 작품 속의 인물들이 책 속에 있는지, 실제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지점 말이다. 극중 인물이 책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일일 것이다.

 

 

돈키호테의 역설은 철저하게 의미의 세계에 대한 것이에요. 풍차를 악의 상징, 양떼를 군대로, 이발사의 머리에 얹어진 번쩍거리는 대야를 맘부리노 투구로 여기고 공격하는 돈키호테의 모든 싸움의 진실은 사실의 세계를 뒤엎고, 사랑과 순종이 본질인 의미의 세계를 확장해가는 침노적 전투예요. 이 침노는 사실의 세계, 물질의 세계로만 보았을 때 생기는 우리 삶의 왜소함, 덧없음, 속절없음, 비루함을 갈아엎고 위대함, 거룩함, 성스러움에 접목시키려는 존재적 반란인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 인물이 소설 속 주인공이어서 우리하고 상관없는 허구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해 깨닫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광야의 소리 같은 거라고 생각돼요.

 

 

현실에서 돈키호테란, 꿈과 이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다소 무모하게 직진하는 캐릭터에 자주 비유되곤 한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그 유명한 넘버 "The Impossible Dream"의 가사처럼, 그 꿈, 그 싸움 모두 이길 수 없고, 길이 아무리 험해도 나는 정의와 사랑을 위해 싸우겠다. 잡을 수 없는 별처럼 먼 희망이라도, 나는 멈추거나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는 것이 바로 돈키호테의 정신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이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이야기. <사실은 이렇지만> 의 현실을 배제한. 왜냐하면 이상 가득한 우리의 기사 돈키호테와 험난한 모험을 떠나더라도 산초는 여전히 아내에게 구박을 받고, 돈키호테의 충고에 따라 주변 남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보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당하고 마는 알돈자는, 여전히 천한 여종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니 말이다.

 

 

꿈도 열정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현실을 무시하고 공상에 빠진 사람들이나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영은 작가의 말처럼 어느 시대이든지 투혼은 인간에게 자기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힘이 되어준다. 돈키호테가 정의감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행동하는 무모한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최소한 자기 자신을 속이지는 않았다. 기사인 척 연기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기사라고 믿고 그에 맞게 행동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럴 듯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삶을 살아내는 것 말이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태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거리낌이 없다는 그 순수한 마음가짐. 나는 그것에 가치를 두고 싶다. 바로 소설 속 주인공이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실체로 거듭하는 그런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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