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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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바버는 지방검찰청에서 검사장 바로 아래 직책인 차장검사로 유능한 검사이다. 중산층이 모여사는 조용한 도시에서 어느 날 열 네 살 어린 소년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앤디는 수사를 직접 지휘하고 근처에 사는 아동 성추행범인 레너드 패츠를 용의자로 소환하지만, 직접 적인 증거가 없다. 며칠이 지나도 수사의 돌파구는 발견되지 않고, 아들 제이콥이 다니고 있는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면담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아들의 페이스 북에 접속을 했다, 친구 데릭이 작성한 글을 보게 된다.

 

제이크, 네가 그랬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어. 너 칼 가지고 있잖아. 내가 봤어.

 

그리고, 그는 아들의 방에서 검정색 접칼을 발견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하지만 제이컵은 그저 멋있어 보이는 칼이라 샀다고 할 뿐이다. 자신은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그런데 살해현장에서 발견된 잠복 지문과 제이컵의 지문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희생자의 상의 안쪽에서 제이컵의 지문이 나온 것이다. 앤디는 휴직 처리되는 걸로 수사에서 바로 제외가 된다. 열네살 제이컵은 살인죄로 기소되고, 앤디는 그의 아버지이자 변호인으로서 아들의 무죄 입증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기소된 이에게서 어떻게든 숨겨진 나쁜 면을 찾아내던 원고의 입장에서, 반대로 좋은 면을 찾아내어 문죄를 입증해야 하는 피고 측에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속속 밝혀지는 증거들은 모두 제이컵에게 불리하게 전개된다. 살해된 벤은 지속적으로 제이컵을 괴롭혀왔었고, 제이컵은 데릭에게 괴롭힘이 지속되면 칼로 자신을 지키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확실하고 분명한 살해 동기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사건 당일 아침, 오른손에 소량의 핏방울을 묻히고 학교에 왔던 것을 친구인 데릭이 기억하고 있었다. 제이컵이 즐겨 찾는 웹사이트 편집실은 섹스와 폭력을 다루고 있는 곳인데, 그는 그곳에 실명으로 범행 사실과 관련된 허구의 글을 올린다. 모든 증거들이 마치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제이컵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제이컵 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그들 가족은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 혐의를 벗는다고 해도, 비난의 멍에를 벗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배심원단이 제이컵을 '무죄'라고 선언할 수 는 있을지언정, 결코 '무고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그 누구보다 앤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검사로서 다시는 법정에 서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재판이 진행되면서 그들은 이미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변호사의 수임료도 이미 여섯 자리에 이르렀고, 제이컵의 대학 학자금 전부를 소송 비용으로 썼으며, 이제는 노후 자금으로 비축해둔 것을 조금씩 쓰고 있는 형편이었다. 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파산할 것이 뻔하고, 남은 비용을 지불하려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무죄 평결이 내려진다고 해도, 검사로서의 이미 경력도 끝장이 났다. 그제야 앤디는 피고인이 되면 죄의 유무를 떠나서 기소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형벌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하고, 재판 이후 다시는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 입장이 되어봐야 아는 것이다. 다른 법정 스릴러와는 차별성 있는 이 작품의 묘미가 바로 이런 부분에 있다. 실제 지방 검사 출신인 윌리엄 랜데이는 누구보다도 리얼하고, 세세하게 재판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피고 측과 원고 측이 어떤 입장으로, 어떻게 재판에 임하는지를 보여준다. 법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디테일로 탄탄하게 플롯을 구축하고, 사실에 입각한 현실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백이 없으면 사건을 입증할 수 없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는 자백을 받아낼 수가 없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 그 시간에 범인으로 의심되는 그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물적 증거는 없다. 실제로 그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모두가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만약에 우리가 틀렸으면 어쩌지? 제이컵이 정말 유죄면 어쩌지?

 

이 작품이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재미있어지는 부분은 바로 이 질문이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 작가는 시종일관 독자들에게 말한다. ,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당신은 자신의 부모, 혹은 형제 혹은 자식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다.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는, 유일한 존재라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내 아들이 누군가를 죽인 살인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럴 리가 없으니 나는 당연히 나의 아들이 무죄라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과 증거들은 모두 아들이 살인자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믿음과 의심 사이의 그 조그만 간격은 사실 종이의 앞 뒷면과 같다. 사소한 행동, 말투들이 쌓여 오해를 만들고, 견고하게 쌓인 세월을 넘어 믿음을 깨트린다. 그리고 부모와 닮은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낯선 타인처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로 변해간다. 외모는 점점 부모를 닮아가더라도, 어느 순간 아이는 친근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진짜일까?

 

앤디는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 깨닫게 된다. 제이컵은 운동을 잘하는 것도,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두드러진 특징이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았고, 친구가 별로 없었던 괴짜였다. 가장 친한 친구인 데릭은 제이컵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야비하고, 차가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살아있는 동물에 대해서도 감정이 놀랍도록 싸늘한 면이 있었다고. 그래서 언젠가 제이컵에서 무슨 일이 생길거라고 생각했었다고. 과연, 살인 유전자라는게 진짜 있는 걸까? 앤디의 아버지대로부터 이어진 그 끔찍한 살인유전자가 자신의 아들, 제이컵에게로 이어진 것인지 앤디와 로리는 두렵기만 하다. 그리고 로리는 우리가 아이를 창조했기 때문에, 만약에 제이컵이 유죄라면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 충격적인 결말을 포함하여 이후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내용은 여기까지만 언급하겠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윌리엄 랜데이가 얼마나 굉장한 작가인지도 새삼 깨달았다. 물론 존 그리샴, 제프리 디버 등 변호사 출신 작가들이 실제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므로, 지방검사 출신인 윌리엄 랜데이의 이력이 독특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작품 속 공판 과정이 실제 법정을 보는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이 있다는 것 외에 이 작품에 장점이 너무 너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꼼꼼한 복선, 다채로운 플롯, 긴장 감있는 구성... 그리고 도덕적인 고민과 딜레마, 스릴러 장르로서의 재미까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냥 이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말이 필요 없다.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

 

올해 최고의 법정 스릴러인 이 작품에 투자하면 비용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별 점이 다섯 개까지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별 점을 곱 배기로 주고 싶은 너무 너무 멋진 작품!!! 책장을 덮자 마자, 이 두꺼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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