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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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소설은 딱 두 종류라고 생각한다. ''의 이야기거나, ''의 이야기거나. 전자는 공감과 위로를 바탕으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끔 만들어준다. 페이지 속에서 잊고 있었던 사람을 만나거나, 과거에 묻어두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아주 오래 전 일인데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각이 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후자는 인물의 행동을 구경하고 푹 빠져서 지켜보게 만들어준다. 인물은 멋지고, 스토리는 흥미진진하지만 내가 현실에서 직접 겪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그런 스토리 말이다. 어차피 소설은 허구의 서사이므로 대부분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후자의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책 속에서 과거의 나를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몇 페이지 읽다가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건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쓰쿠루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짐을 챙겨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의 집으로 돌아가, 자연스레 네 명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그 누구하고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며칠 뒤 통화가 된 친구는 아무런 설명 없이 쓰쿠루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지만 이제 더는 누구의 집에도 전화를 걸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마음이 덜컹거리는 걸 느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잊고 있었던 누군가가 저 멀리 기억 속에서 생각이 났다. 쓰쿠루는 알았다며 그냥 전화를 끊는다. 특별히 항의도 하지 않고, 따지고 들지도 않고. 나 역시 과거에 그런 기억과 상황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동안 시간의 무게에 묻혀서 잊고 있었다고 생각한 그것이 이 문장을 계기로 다시 생각이 나고 말았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그리고 그 여름을 경계로 다자키 쓰쿠루의 인생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날카롭게 솟은 능선이 양쪽의 식물 생태를 다르게 갈라놓듯이.

 

7년 전, 당시에 나는 어떤 취미 생활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것과 관련된 동호회 소모임이 있었다. 10여명으로 이루어진 그 모임에서 나는 동갑내기 친구 A, 한 살 위 언니 B, 한 살 아래 동생 C와 각별히 친하게 지냈었다. 모임 외에도 자주 통화하고, 따로 만나서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고, 일상의 거의 대부분을 그들과 함께 보냈던 몇 년 간이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C를 통해서 그가 B와 몰래 사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모임의 그 누구도 알면 안 되는 비밀이었는데, 왜냐하면 당시 B에게는 공식적인 남자 친구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B언니가 바람이 난 건지, C때문에 두 사람이 헤어진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연애를 하던 중이었고, 제일 가까웠던 나에게만 털어놓았던 것이다. 나는 그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가장 친했던 A를 비롯해서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들의 데이트에 나도 자주 같이 있었고, 나는 그들의 비밀 연애를 알았지만, 이전과 똑같이 B C를 대했다. B는 내가 좋아하는 언니였고, C 또한 내가 아끼는 동생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C와 당시 공부하던 자료에 대해서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아마 여름이었고, 지하철 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갑자기 나에게, "우리 앞으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을 했다. 당시에 내가 무슨 소리냐고 했었는지,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었던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고, 거의 상처받아서 알았다고 대답하고 그냥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이유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깊이 따지고 들지도 않았고, 특별히 항의를 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극중에서 쓰쿠루가 네 명의 친구들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난 뒤 했던 행동처럼 말이다. 그의 말처럼 정말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으면, 말 같은 건 나오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모임에서 자연스레 빠지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A B를 만났지만 대체 내가 C에게 뭘 잘못한 건지,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몇 년 흐른 뒤에 B C도 더 이상 커플이 아닐 때, 그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지만 서로 그 일에 대해서는 묻지도, 해명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와 예전처럼 각별한 누나, 동생 사이로는 되돌아 갈 수 없었다.

 

다자키 쓰쿠루는 고등학교 시절 네 명의 친구와 각별히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들은 5명의 그룹으로 항상 시간을 함께 보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쓰쿠루 혼자 멀리 도쿄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방학 때마다 네 명의 친구들을 만나러 나고야로 가며 그들의 우정은 지속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는데. 이제 우리들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그렇게 친구들의 그룹에서 추방당한 뒤 그는 여러 달 동안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보낸다. 물론 다섯 달 뒤에 그 심연의 밑바닥을 치고 올라왔지만, 그러고 나니 기존의 얼굴과 체형, 분위기까지 모두 바뀌어버린다. 거울을 보았을 때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스스로가 채워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성인이 된 쓰쿠루는 어떤 친한 친구도 만들지 않고, 여자를 만나더라도 깊이 있게 만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면서 어느새 서른 여섯이 된다. 16년 전의 상처는 극복하지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의문 가득한 채로 묻어두고 말이다.

 

"분명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고, 그것이 나한테 일어났다는 것은 아마도 좋은 일이었을 거야.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랬던 만큼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아니 거부당했을 때의 충격은 너무 컸어. 상실감, 고독감.... 그런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어."

"그렇지만 벌써 16년이란 세월이 흘렀잖아. 당신, 지금 30대 후반의 어른이야. 그때의 아픔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이제 슬슬 넘어설 때도 되지 않았을까?"

 

2살 연상의 여자친구 사라는 쓰쿠루에게 친구들에게 거부당해야만 했는지 이유를 밝혀보라고 말한다. 이제는 상처 입기 쉬운 순진한 소년이 아니니까,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 해야 한다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봐야만 하는 걸 보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그 무거운 짐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해> 라고 말이다. 문제를 얼렁뚱땅 내버려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그녀 덕분에, 쓰쿠루는 무려 16년 만에 헤어졌던 네 명의 친구들을 한 명씩 찾아가서 만나보기로 결정한다. 기억을 덮어 둘 수는 있지만, 역사를 숨길 수는 없는 거니 말이다. 나고야에 남아 있는 친구도 있고, 멀리 핀란드에 거주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쓰쿠루는 그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그룹에서 추방되어야만 했던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서, 당시 친구들의 비밀에 대해서 알게 된다. 당시에 그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쓰쿠루에게 벌어진 일의 실체에 대해서는 직접 책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가 과연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은 피해자인지,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던 가해자였는지..는 이 책의 끝까지 다다르면 알게 될 것이다.

 

네 명의 친구들에겐 사소하고 우연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에 색깔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카마쓰 게이는 레드, 오우미 요시오는 블루, 시라네 유즈키는 화이트, 구로노 에리는 블랙이다. 다자키만이 색깔과 인연이 없었고, 그는 자신을 색채도 없고 개성도 없는 텅 빈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제목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는 그런 의미이다. 네 명은 서로를 당연한 것처럼 색깔로 불렀다. 아카, 아오, 시로, 구로라고. 그들의 이름의 색깔 만큼이나 개성 있고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룹 중에 유일하게 쓰크루 만이 이렇다 할 특징이나 개성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재미있게도 대학 시절에 만난 두살 아래 동생 하이다의 이름에도 그레이라는 색깔이, 그가 들려주던 이야기에 등장하는 피아니스트 미도리카오도 녹색이라는 색깔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쓰쿠루는 자신만 색깔이 없는, 아무런 특징도 없고, 고유의 개성도 없는 존재라고 여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모두다 고유의 색깔이 있다. 그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람도 있을 테고, 희미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루키의 작품에는 자주 특정 음악이 언급된다. 1Q84에서 아오마메가 택시 안에서 듣던,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와 덴고가 좋아한다고 했던,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번 작품에는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라는 소곡집에 수록된 [르 말 뒤 페이] 가 언급된다. 학창시절 시로가 곧잘 연주했던, 그리고 하이다가 가져온 레코드를 통해서. 박스에 든 세 장짜리 레코드는 그가 소식이 끊어진 뒤에도 여전히 쓰쿠루의 방에 있다. 그리고 그는 과거와 마주할 때마다 그 음악을 떠올린다. 나는 예약판매 기간에 책을 구입한 덕분에 해당 음원을 받았는데, 단음으로 천천히 조용하게 이어지는 선율이 위로를 품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과거에 덮어둔 그 기억이 결국에는 따뜻한 낙관으로 연결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치유되지 않은 채 내버려져 있던 나의 상처에 위안을 주는 것 같이 말이다.

 

쓰쿠루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서기 위해서,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서 순례를 떠난다. 도쿄에서 나고야로, 또 핀란드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여행을 말이다. 역에서 근무하는 그는 매일같이 떠나고, 도착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역이란 공간은 멈춰있는 것 같으면서도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쿠루가 색채가 없다고 느끼지만, 친구들은 그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던 것처럼, 모든 의미부여는 상대적이니 말이다. 문득 나는 지금 어느 역에 서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1년의 절반이 지난 지금, 나는 과연 2013년이라는 길에서 어디 쯤에 와 있는 걸까? 올 초에 내가 생각했던 그 길로 올바르게 가고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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